염탐 18
35.
동현은 아침부터 원룸을 나와 차를 탄다. 날씨가 맑다. 내비게이션으로 위치를 찍는다. 20분 거리다. 항상 평일에 회사와 집만 오가다가 새로운 곳으로 가려니 낯설다. 당분간 죄인으로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난 죄를 씻고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여 재기해야 한다.
최근 탈의실을 훔쳐본 죄로 회사에서 퇴사 처리되고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단순 훔쳐본 경범죄로 해당되어 범칙금 10만 원과 성범죄 치료 프로그램 10시간 교육 이수 명령을 받았다. 오늘과 내일 두 번 교육 이수를 받아야 한다. 이런 범죄를 처음 저질러봐서 감옥 가는 거 아닌가 무서웠는데 다행히 처벌을 적게 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잘못된 본능에 싸워 이겼어야 했는데 한 번의 실수로 직장과 사람, 그리고 사랑을 잃어야 했다. 들킨 이후로 계속해서 후회 중인 동현이다.
심리상담센터에 도착한 후 입구로 들어가니 안내문이 붙어있다. 성범죄 치료 프로그램 수강생은 1층 A호실로 가면 된다. A호실에 들어가니 직원분이 출석 체크를 한다. 동현은 뒷자리에 앉고 싶었으나 이미 먼저 온 사람들이 앉아있다. 다들 멀쩡하게 생겼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한 번의 실수로 범죄를 저지르는구나 생각하는 동현이다. 동현도 마찬가지다. 멀쩡하게 생기고 직장 잘 다니다가 실수를 한 거다.
동현은 뒤에서 2번째 줄 벽 쪽으로 최대한 들어가서 앉는다. 시작까지 10분가량 남았다. 동현은 핸드폰으로 뉴스를 켜본다. 메인 뉴스에 A 여성 연예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뉴스가 떠있다. 결혼 3년 되었는데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질러서 남편이 소송을 진행 중이란다. 뉴스를 읽다 보니 준혁 팀장이 생각난다. 전에 술 취해서 준혁 팀장을 집에 데려다줄 때 낯선 남자가 그 집에서 나왔다. 퇴사 전 준혁팀장과 잘못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사실 확인 및 면담을 하고 마지막에 따로 얘기하긴 했다. ‘전에 낯선 남자가 팀장님 집에서 나왔다고.’ 준혁팀장은 알겠다고 고맙다고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남 걱정 할 때가 아니라 본인 걱정을 해야 함을 다시 깨닫고는 뉴스를 끄고 정면의 칠판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5분 정도 지나자 강사가 들어온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여자 강사분이시다. 안경을 끼고 짧은 단발에 펌을 하고 체구는 꽤 좋으시다. 어두운 재킷을 입으시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진지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강사가 꽤 매서워 보인다. 저 강사에게 10시간가량 프로그램을 듣는 거구나 생각하는 동현이다.
강사가 강의실 앞 단상에 있는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마우스로 클릭을 한다. 이제 곧 있으면 시작한다. 근데 뒤에서 누가 들어왔나 보다. 남자 직원이 ‘여기 이름에 체크해 주세요’ 하며 안내한다. 동현은 뒤돌아 보고는 깜짝 놀란다. 큰 덩치에 80%는 대머리로 까진 머리. 포동포동한 얼굴. 동그란 눈. 공장장이다. 공장장이 여길 왜 왔지. 갈색 재킷과 회색 셔츠를 입은 공장장은 출석 체크를 하고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걸어 들어온다. 이제 자리는 맨 앞자리 밖에 없다. 공장장은 결국 맨 앞자리에 앉는다. 동현을 발견하진 못한 거 같다. 동현은 3줄 앞 대각선에 위치한 공장장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공장장은 모범생처럼 바르게 앉아 칠판과 강사님을 번갈아 보며 앉아있다. ‘공장장이 왜 왔을까. 공장장도 무슨 죄를 저질렀나.’ 동현은 의아하다. 그러던 중 강사가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한다. 이제 프로그램을 시작하겠다고 한다. 동현은 안경너머 작은 눈 위의 눈썹을 잔뜩 찌푸려 집중한다. 안경을 낀 매서운 인상의 강사와 80% 정도 까진 머리의 공장장 뒷모습 번갈아본다. 둘의 체격이 비슷하다.
36.
공장장 준수는 아침 알람에 힘겹게 깬다. 어제도 집에서 잠이 안 와 TV를 보며 맥주를 몇 캔 마시다 잤다. 그랬더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 오늘은 성범죄 치료 프로그램을 가야 한다. 오늘과 내일 2일 진행한다. 회사에는 아내가 몸이 안 좋아서 간호해야 한다고 하며 2일 연차를 냈다. 이사님이 꼬치꼬치 캐묻는 거에 핑계 대느라 애썼다. 아침 식사는 패스하고 대충 씻고 밖으로 나온다. 차를 탄다.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찍는다. 20분 정도 걸린다. 시간이 얼추 맞다. 공장장은 액셀을 밟는다.
한 달 전에 단체 회식 때의 일이다. 자주 가는 파전 단골집인데 그날따라 술이 아주 잘 들어갔다. 직원들도 기분 좋아 보였고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공장장은 신나게 술을 마셔댔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없고, 회사 직원들만 있었다. 공장장은 자주 오는 단골집이라 올 때마다 여사장이 바쁘지 않으면 술도 한잔 주고받고 했더랬다. 여사장은 공장장과 나이 또래가 비슷했고 편안함을 주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여사장을 불러서 안 바쁘면 술 한잔 어떠냐 했다. 여사장도 ‘자주 오시는 단골이니 당연히 한잔 해야죠’ 하며 술을 받더랬다. 그렇게 몇 잔 주고받고 했다. 그리고 여사장도 회사 직원들과의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그날따라 공장장은 파전 집에서 술을 많이 마셨다. 여사장이 술잔을 자주 채워줬던 거 같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공장장은 저도 모르게 여사장에게 은근히 스킨십을 했다. 어깨에 손을 얹기도 하고 팔을 잡기도 했다. 물론 여사장도 웃고 있고 싫어하는 느낌이 없어서 그랬다. 그리고 단골이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했다. 그러다 은근히 음담패설도 했다. 본인 딴에는 개그라며 약간의 농도 짙은 야한 얘기들을 했는데 여사장은 불편한 기색 없이 웃으며 잘 받아줬다. 그게 공장장의 기억이었다.
근데 1주일이 지나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서로 방문 한번 해달라는 거다. 왜 그러냐 하니 신고가 들어왔단다. ‘자신은 잘못한 거도 없는데 무슨 일이냐’ 하니 성추행 신고란다. 무슨 성추행이냐고 여자를 만난 적도 없다고 했더니 ‘파전집 가신 적 없냐’고 한다. 그때 공장장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뭔가가 스쳐 지나간다. 회식 때 여사장에게 스킨십과 음담패설을 한 것이 떠오른 것이다. 공장장은 알겠다고 경찰서로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날 일찍 퇴근을 하고 경찰서로 갔다. 알고 보니 파전집 여사장의 아들이 신고를 한 거였다. 아들이 주방에서 일했는데 주방에서 여사장과 공장장을 유심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공장장의 행동이 선을 넘은 거 같아서 여사장에게 얘기하고는 신고했다는 거다. 공장장은 경찰서에서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며 용서를 구했다. 결국 피해자 측에서도 용서를 해줘서 벌금 100만 원과 성범죄 프로그램 이수 10시간 수강의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일부러 집에도 안 가고 기숙사에서만 지냈다. 괜히 집에 갔다가 벌금 낸 거나, 수상한 흔적이라도 보일까 봐. 그리고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때문이다. 한동안 유배한다 생각하고 기숙사에 있었다.
심리 상담 센터에 도착하니 시간이 벌써 촉박하게 다가와있었다. 준수 공장장은 얼른 차에서 내려 헐레벌떡 수강실로 들어간다. 출석 체크를 하고 자리를 보니 맨 앞자리 가운데만 남아있다. 강사가 강습 시작을 하려고 해서 얼른 맨 앞자리 가운데 앉았다.
심각한 성범죄에 대한 영상과 치료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쉬는 시간이 되었다. 어제의 숙취가 남아있어서 ‘바람 좀 쐬고 물이나 마시자’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강의실을 나가려는데 앞에 안경 낀 시커먼 남자가 바라보고 있다. 동현이다.
“어 동현아 너도 오늘이냐.”
준수는 동현에게 인사한다.
“예 안녕하세요 공장장님이 이곳에 왜 오신 건가요?”
동현은 준수에게 의아해하며 물어보고 준수는 동현에게 손짓하며 바깥으로 나가면서 전에 파전집에서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일러준다. 그러면서 ‘너 왜 탈의실 엿보는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그러면 안 된다고 훈계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 나도 그러면 안 되지. 누가 누구를 훈계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준수는 정수기 앞에서 물을 마시고는 동현과 함께 건물 밖으로 잠깐 나가 햇빛을 쐬며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앞으로의 계획, 벌금은 얼마냐’ 등 얘기를 하며 맑은 하늘 속 구름들을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는 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