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적응기 (2)
스웨덴 이민을 준비할 시기에 우리는 가장 큰 스웨덴 이민자 커뮤니티라는 한 카페에 가입해서 이것저것 정보를 얻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말은 바로 '퍼스널 넘버(personal number)'였다.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입을 모아 "퍼스널 넘버를 받아야만 이 나라에게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빨리 신청하고 받아라"라든지 "신청한 지 몇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말 답답하다"라든지 "어떻게 하면 빨리 받을 수 있는지 정보 좀 공유해 달라"라든지, 아무튼 퍼스널 넘버는 큰 이슈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남편의 이직으로 스웨덴에 들어온 우리는 남편 회사의 많은 도움으로 해외 이사부터 시작해 이곳으로 이주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절차를 모두 도움 받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이주 과정에는 큰 문제는 없었다. 그 퍼스널 넘버 또한 이주를 도와주는 회사가 도맡아 일을 처리해 주었고, 우리는 퍼스널 넘버가 잘 신청되어 나오기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이 퍼스널 넘버는 쉽게 말해 한국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으로, 스웨덴에 장기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 번호가 있어야만 스웨덴 생활에서 필요한 각종 은행 계좌며 신용 카드며 병원 등 모든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퍼스널 넘버를 받기 전까지 우리는 스웨덴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마트에 장을 볼 때에도 여권을 가지고 다니며 신용 카드를 쓸 때마다 신분 검사를 받았고, 나는 어서 빨리 어학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이 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스웨덴 정부에서 제공하고 있는 여러 어학 시설을 신청할 수가 없었다. 병원이나 약국 등도 이 번호가 있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그동안은 크게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며 지내야만 했다.
그러기를 3개월.
드디어 우리도 퍼스널 넘버를 부여받게 되었다. 참, 이 열 두 자리 숫자가 무엇이라고.
'내 나라에서 태어나, 당연히 주어지는 자국민이라는 자격으로 아무런 제재 없이 35년 동안 참 편하게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그럴 기회도 없었던 타국에서의 삶, 이방인으로써의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동시에, 많은 이유로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과, 또 여러 이유로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외국인 분들의 삶이 참 녹록지만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녹록지 않은 과정 속에 나도 한 발을 내디뎠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삶이 펼쳐질까? 설렘과 두려움과 기대감이 모두 함께 몰려오는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모든 어려움을 각오하고 왔음에도 분명히 내가 상상도 못 한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또 생겨날 것을 안다. 그리고 이제 그 어려움들은 우리 둘이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 아마 한국에 계속 살고 있었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소한 것들 일 수도 있다. 언젠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잠깐 후회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약속했다. 지금 첫 느낌, 우리가 왜 이 선택을 했는지 기억하자고. 그리고 잘 함께 이겨나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