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만은 날씨가 좋은 날을 좋아한다. 그런 날에는 꼭 가방을 메고 카페로 향했다. 가방에는 한 가득 짐이 들어있다. 노트북 하나. 키보드 하나. 책 한 권. 이북리더기도 하나. 잡다한 기록을 하는 노트도 한 권. 일기도 한 권. 필기구와 잡다한 걸로 가득한 묵직한 필통도 하나.
그 모든 것들이 든 가방은 제법 묵직하다. 아니 이걸 제법이라고 퉁쳐도 될지 모르겠다. 많이 묵직한 편이다. 어릴 때부터 이 정도 무게의 가방에 익숙했다. 그래서 키가 안 컸나? 라는 의심이 늘 합리적이란 생각을 할 정도로.
여름보다는 가을을 좋아했다. 가을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 많았다. 하늘이 높고, 적당히 찬 바람에, 가을이 익으면 집 앞의 길들은 노란 은행나무 덕분에 제법 괜찮은 코스가 되어주곤 하니까.
괜찮은 코스를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걷는다. 그렇다고 어깨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딱 10분. 내 어깨가 버텨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그 정도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자주 가는 스타벅스가 있다.
2층의 바 좌석에 앉아서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폰으로 마실 음료를 주문했다. 대부분 아이스 아메리카노였지만, 이렇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스타벅스에는 언제나 토피넛 라떼가 나오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면 토피넛 라떼지. 휘핑크림 많이, 라는 옵션까지 선택한 후에 앉아서 기다리면 곧 커피가 나온다.
그 후에는 뭘 할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냥 책을 읽기도 하고. 끄적대며 의미없는 낙서를 하기도 하고. 정말 어쩌다 한 번씩은 다꾸도 하고. 그러다가 작업을 시작한다.
사실 예전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여유였다. 전 직장에서 누리는 여유란 일이 없어서 노는 중, 이라는 의미였고. 그 여유가 언제나 나는 낯설었다. 그래서 항상 직장에 묶여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나중에는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깨닫긴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하지만 요즘은 종종 그때가 나았나 싶기도 하고.
최근의 나는 감당하지 못할 여유가 넘치는 편이다. 매일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휴대폰을 본다. 작업은 남의 일 같다. 의도적으로 웹소설 장르는 보지도 않는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보고 싶지가 않다. 내내 읽지만, 웹소설은 읽지도 않고. 그러다 보니 내 글은 나오지 않고. 무한반복이다.
나는 쓰는 사람이다. 예전의 직업도 그랬지만 지금의 직업도 그렇다. 나는 항상 쓰는 사람이었다. 다행인 점은 나는 쓴다는 행위를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웹소설 작가가 된 지금은, 종종 내 글에 질리는 날이 있다. 그러면 나는 다른 글을 쓴다. 가령 지금처럼 에세이를 쓴다거나 혹은 아예 다른 장르의 글을 쓴다. 각 잡고 마음 먹고 쓰는 게 아니다보니까, 조금 쓰고 닫기 일쑤다.
그래도 그 글이 끝까지 이어지는 건, 내가 내 글에 질리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직업적으로 해야 할 웹소설을 쓰다 질리면 다시 닫고 전에 쓴 글을 열어본다. 그리고 또 찔끔. 찔끔.
내가 좋아하는 날씨 좋은 날 스타벅스의 창가에 앉아서 좋아하는 토피넛라떼를 마시며 나는 오늘도 찔끔찔끔 쓰는 중이다. 그렇게 찔끔 써내려간 글이 지금 네 편 정도 있다. 그걸 매일 보면서도 헷갈린다.
사실 나도 내가 어떤 글을 쓸지 잘 모르겠다. 가끔 내가 쓴 것들을 확인할 때면 이걸 내가 썼다고? 싶어서 놀라운 글이 있고. 이거 진짜 내가 썼다고? 싶을만큼 엉망진창인 글이 있다. 이 글은 어떤 글이 될지. 나는 아직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냥 이런저런 얘기를 횡설수설 떠들고 싶은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