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
마침표로 끝나는 이 문장 앞에 떳떳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자신없었고 두려웠다. 엄마를 미워하는 일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에 터닝포인트는 찾아오는 법.
수술로 인해 배에 새겨진 한 뼘만큼의 메스자국은 내게 소스라치는 고통을 주었지만 동시에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의 크기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딱 죽을만큼 아프고 나서야 엄마를 향한 나의 미움이 정당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었던거다.
가슴 안에 미움이 차고 넘쳐 글을 썼다. 식구들이 잠든 밤 주방에 간접등을 하나 켜두고 키보드를 꾹꾹 눌러가면서 써내려간 건 내 고통의 증거들이었다. 기억의 한 톨이라도 놓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고 또 더듬었다. 설움이 가득해 눈물이 앞을 가려도 손의 움직임만은 멈출 수 없었다.
엉엉 울면서도 엄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그럼에도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순간들만은 다 끌어앉은 채 주저앉아지냈다.
그렇게 쓴 글을 그러모은 책이 인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은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 지금의 나는 이 문장 앞에 당당할 수 있다. 살짝만 스쳐도 피가 철철나던 자리에 딱지가 앉듯 나는 미움에 의한 통증도 무뎌진듯 하다. 그리고 글 쓰던 시간의 나를 마치 제3자처럼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내가 처절하게 아프지 않았다면 엄마를 그토록 미워할 수 있었을까. 최선을 다해 엄마를 미워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평온해질 수 있었을까. 괴로웠던 지난 시간의 궤적 중 어느 하나라도 틀어졌다면 지금의 순간은 없었을거라는 걸 이젠 안다.
엄마를 미워하던 그 시간이 결국 내 영혼을 갉아먹을만큼 괴로운 시간이었다는 것도, 그럼에도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미움의 증거를 나열하느라 스스로를 더 옭죄었다는 것도. 그러나 그런 과정도 모두 필요했다는 것도. 그 눈물의 결정이 모여 하나의 책을 이뤘다.
내게는 어떤 보석보다도 더 값진 한 권의 존재다.
그 시작에 브런치스토리가 있었다. 누구의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익명의 게시판에 가감없이 내 속을 드러냈다. 그 밑에 달린 소중하고 슬픈 사연들이 내게 용기를 일깨워줬다. 더이상 나만의 아픔이 아니라는 안도감은 비로소 내 통증에 당당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난한 나의 시간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짜릿하고 벅찬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젠 내가 앞장서서 말할 용기마저도 생겼다.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라고..
왜냐면 지금의 나는 정말로 괜찮기 때문에.. 그토록 미워하던 엄마를 향한 감정마저도 다 휘발되었기에..
이 모든 과정 끝에 나는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나와 엄마는 너무 똑같다는 것' 온갖 이유를 들어서 엄마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증거를 찾아 적던 내가 왜 이런 결론에 이른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우린 너무 약한 존재이다. 서로 자신의 아픔만 들여다보길 요구한다. 그러니 가까이 있으면 서로의 논리를 확인하느라 자꾸 싸우게 되고, 결국 마음을 다치고 마는 것이다. 둘의 논리에 따르면 누구도 틀린 사람이 없다. 이 지독한 아이러니의 고리는 절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 다 너무 애썼기 때문이다. 이 본질을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기에 우리 두 사람은 더 이상 가까이 지낼 수 없다는 것도, 또한 행복하기 위해선 그래선 안된다는 것마저도 이젠 마음으로 머리로 온전히 이해한다.
그것을 알기 전과 후 내 주변의 모든 것은 다 그대로이고, 오로지 마음만 고쳐먹었을 뿐인데 내 세상이 달라진 기분이다. 아마 더 이상 쏟아낼 것이 없을만큼 쏟아냈기에 그런 것이리라.
엄마를 많이 사랑했고, 미워했기에 이젠 엄마에 대해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정말로 마음이 가볍다.
이제서야 나는 다시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
안녕하세요. 김윤담입니다.
그동안 '담담하게'로 활동했던 작가명을 김윤담으로 바꿨습니다.
저의 지난 시간을 기록한 책 [엄마를 미워해도 괜찮아]가 10월 초 출간되어요.
긴 시간 저만의 대나무숲이었던 브런치스토리의 글이 엮여 책으로 나온다니 설레면서도 먹먹한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읽어주시고, 마음으로 달아주신 댓글 덕이라 생각해요.
정확한 일정이 생기면 또 알릴게요.
기쁜 소식 함께해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