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담 Feb 13. 2024

내가 사주를 볼 수 없는 이유

신년이 되면 토정비결이나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요즘은 사는 게 워낙 팍팍해 사주나 점집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들 하는데 나는 사주를 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사주를 갖고 있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태어난 '시'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엔 알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기억이 희미해 확신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난 시간대를 알아내려면 엄마를 통해 알아내야 하는데, 이젠 연락하고 지내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내 탄생시간은 영원히 묘연할 예정이다.


내 친구 역시 남자친구와 헤어졌거나 이직을 앞둔 때 등등 인생의 큰 고민이 생기면 사주집을 찾아가곤 한다.

나도 한 번 같이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태어난 시를 몰라 생일까지만 이야기했고,

친구는 사주를 그렇게 보러 다녀도 자기 탄생시간은 늘 헷갈린다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응. 엄마 나 몇 시에 태어났더라?"라고 용건만 간단히 묻고 친구는 전화를 끊었다.

매번 기억할 필요 없이 엄마한테 물어보면 되니까.. 그 모습이 못내 부러웠던 건 내 콤플렉스 탓이었을까.


한편으론 생각했다. 나는 딸의 탄생시간을 평생 기억하고 알려주어야겠다고.

어느새 다 큰 딸이 친구들이랑 심심풀이로 사주를 보러 가서 내게 전화하는 상상을 해본다.

"엄마, 나 몇 시에 태어났어?"라고 물으면

"아침 9시 57분"이라고 망설임 없이 답해줄 것이다.

딸이 삶이 팍팍하고 답답해서,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혜안을 구하고 싶어 질 때 태어난 시간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 일 없도록. 때로는 몇 만 원짜리 사주풀이에 안심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사실 내게 사주는 큰 의미가 없는지도 모른다.

나를 낳아준 엄마로부터 버림받았고, 기꺼이 상처를 딛고 돌아서서 뚜벅뚜벅 앞만 바라보며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사주를 보지 않고, 얽매지 않는 이유는 태어난 시를 몰라서가 아니라 필요 없기 때문 아닐까.


이미 뒤틀린 근원에서 미래를 찾기보다 행복한 오늘을 사는 것으로 미래를 다져나가 보기로 한다.


그럼에도 나의 딸아, 사주 보고 싶으면 엄마한테 언제든 물어보렴.

엄마가 언제든 기억하고 백 번이라도, 천 번이라도 답해줄 테니까.  

엄마는 그런 엄마가 될 테니까.


이전 11화 오늘도 7살인 네가 나보다 더 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