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담 Mar 01. 2024

K-장녀 대물림 막기

"엄마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

언젠가 7살짜리 딸이 내게 한 말이다.


"뭐라고?"

순간 헛웃음이 나와 되물었다.


"손도 씻으라고 하고, 옷도 걸으라고 하고, 옷도 갈아입으라고 하고 바라는 게 너무 많잖아! 하기 싫단 말이야!"


"oo아, 그건 네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시키는 거지 엄마가 너한테 그 이상을 바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누구나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을 씻고, 자기 옷도 정리하고, 집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는 거야. 너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니까. 이제부터 네가 할 수 있는 일들은 하도록 해."


너무나 진지하게 토로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이도 없어서 한동안 빤히 바라보기만 했더랬다. 아이는 씩씩대다가 더 이상 징징거려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는지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것뿐인데도 '엄마가 본인에게 바라는 게 많다'라고 따져 들다니 당당하게 쏘아붙이는 말투에서 미운 7살 특유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면모가 묻어나 우스웠다. 뻔뻔한 아이다움이 퍽 기특하기도 했다.




"엄마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 바라는 게 많아?"라는 말은 사실 내가 자라오면서 친정엄마를 떠올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기도 했다. 진짜 내게 바라는 게 많았던 사람은 나의 엄마였다.


엄마는 딸한테 정서적 학대를 가하면서도 본인에겐 살갑길 바랐고, 언제나 순종하길 바랐고, 남동생에겐 다정하길 바랐으며, 공부를 잘하길 바랐다. 용돈은 벌어쓰길 바랐고, 학비도 벌어서 다니거나 빚을 지길 바랐다. 딸이 예뻤으면 좋겠지만, 본인보다는 예쁘지 않길 바랐고,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길 바랐으나 본인보다 행복하지는 않기를 바랐고, 본인만큼은 시집살이를 하길 바랐다. 딸이 건강하길 바랐고, 만일 아프더라도 자신에게 기대지 않기를 바랐고, 그러면서도 엄마로서의 예의는 지키기를 바랐다. 자신이 어떤 모순을 저질러도 딸은 본인을 가여워하길 바랐다.


내 우주의 주인이 엄마였을 때는 헉헉대며 그 기대에 부응하느라 긴 세월을 소진했다. 불안에 동동거리며 내 에너지의 90% 이상을 쏟아부어도 엄마에겐 가 닿지 못했다. 늘 부족하다고 야단쳤고, 비난했으며, 절벽 끝으로 밀어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바랐다. 엄마가 나를 이해해 주기를, 가여워해 주기를, 내 불행한 성장환경에서의 고충을 알아주기를, 가슴 깊은 곳에선 미안함을 품고 있기를, 자신의 모순을 부끄러워하기를, 내게 용서를 구하기를...


어느 것 하나 내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었다. 늘 실망하고, 넘어졌지만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는 일은 언제나 죄책감을 불러왔기에 마치 종교처럼 엄마가 나를 이렇게 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이 모든 과정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될 때마다 놀란다. 몇 번이고 가슴이 아려온다.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같은 전개와 비슷한 에피소드는 '어째서?'라는 물음표를 가져다준다.


세상은 나와 같은 성장환경 속에서 자란 이들을 'K-장녀'라 일컫는다. 'K'자가 붙을 만큼 서러운 과거를 삭이고 사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이건 누군가의 한탄이나 푸념이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K-장녀'라는 단어에 숨겨진 근원적인 고름을 이제는 짜내야 하지 않을까.




하룻강아지마냥 철없는 나의 딸은 고작 제 손 하나 씻고, 옷을 옷걸이에 거는 것 따위의 소소한 생활습관을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양 떠들어대는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다가 생각이 생각을 불러왔다.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해내야 해. 어린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만 너한테 시킬 테니까."

단호히 말하고 나서 얌체둥이 사랑스러운 딸을 보며 생각했다.


네 몫의 일만 충분히 해내도 나는 너를 기특하게 여겨줄 테다.
아니 네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기다려주리라.
 내가 걸어왔던 K-장녀의 길을 너에게 터주진 않을 테니
걱정 말고, 맘껏 철 없이 자라라.

애써 일찍 철들지 않아도 된다.

네 나이에 맞는 속도로 성장해도 좋은 사람 되기엔 충분하다.

딸이 성인이 될 무렵이면 'K-장녀'라는 서러운 뜻의 단어는 고리타분한 옛말로 기억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