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단맛은 쓴맛에서 온다
사람은 죽기 전에 엄청난 쾌락을 느낀다. 죽음의 고통을 줄여주는 쾌감 물질을 뇌에서 미친듯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무조건 한번은 뇌에서 만든 천연마약(?)을 경험하는 것이다.
운동을 할 때도 우리는 자연스러운 쾌락을 느낀다. 일반인은 5분만 전력으로 달려도 숨이 차 그만두고 싶어한다. 10분을 달리면 쓰러지려고 한다. 30분을 달리게 되면 입안에서 단내가 나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아 진다. 숨이 턱턱 막힐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달리다 보면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고통이 쾌락을 낳는 순간이다.
나는 단 음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얼마 전에 가로수길의 한 카페에서 크로플을 먹었는데 정말 환상의 맛이었다. 빵과 아이스크림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두 디저트를 동시에 먹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디저트가 이토록 발전한 세상에 태어난 걸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달콤한 음식을 먹을 때는 모든 걱정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맛을 음미하는 그 시간만큼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그것도 양반이 아니라 일반 백성이었다면 달콤한 음식은 그림의 떡일 것이다. 성균관 유생들도 팥빙수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다. 단 음식은 남녀노소, 세대 구분 없이 모두가 즐겨 먹는 음식이다. 그렇다면 우린 언제부터 이런 달콤한 음식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 걸까?
답은 사탕수수의 대규모 재배에 있다. 과거 유럽에서 삼각무역이 시행되면서 노예들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한 상품재배가 활발해졌다. 상품들 안에는 사탕수수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백인들은 엄청난 수의 아프리카 노예들을 남미로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했다. 농업 기술의 발달, 노예 수의 증가를 통해 사탕수수를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탕수수의 대규모 재배를 통해 우리는 단 음식에 훨씬 익숙해질 수 있었다. 미국의 대표 디저트 파이부터 프랑스의 럭셔리한 디저트인 마카롱까지, 모두 노예를 기반으로 한 삼각무역의 수혜였다. 어떻게 보면 달콤한 맛은 세상에서 가장 쓴 맛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의 피와 눈물이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설탕물인 것이다. 전교 1등이라는 달콤한 타이틀은 전교 2등에게는 쓰디쓴 상처이다. 1등의 승리감, 성취감은 2등의 패배감과 함께 발생한다. 본인의 온전한 노력으로 본인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게 누리는 것들,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은 사실 누군가의 피나는 희생과 고통의 산 위에서 이루어진다.
배우 이병헌이 나오는 영화 <달콤한 인생>의 영어 제목은 bittersweet life이다. bitter는 '쓴'이라는 뜻이고 sweet의 뜻은 '달콤한'이다. 한국 제목에는 달콤한 밖에 없는데 영어 제목에 '달콤한'과 '쓴'이 함께 붙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인생에 달콤한 맛이 있기 위해서는 쓴 맛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