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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5. 2015

왜 나는 여행을 선택했는가

내게 결핍된 무언가

 득이 있는 천안에, 개인적인 이유로 갈 일이 있어 잠깐 만났다. 득은 이른 아침 예의 없고 황당한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급하게 씻고 나와야 했다. 뿐만 아니라 나와 동행해서 내 일정이 끝날 때 까지 근처에서 기다려주는 호의까지 베풀어주기도.. 어마어마하게 좋은 친구.. 진짜 친구.. 고맙다. 

 사실 우리는 이렇게 특별한 일 없이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급작스럽게 내가 '부여  올래?'라고 해서 오게 되는 일도 있고, 다른 친구가 서울에서 호출하거나 어딘가를 경유할 때 등, 여러 상황에서 만남을 갖는다. 그래도 이런 만남이 소중하고, 뜻밖이라 더 즐겁다. 

 이번 만남에서는 인도음식을 먹으며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에 대해 서로 물었다. 탄두리 치킨과 샐러드, 버터난과 카레는 맛있었다. 


 득이 내게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가고 싶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정확한 대답은 될 수 없었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나기로 했을까? 오타루에서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사는 게  꿈이야'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 이상으로 다른 목표가 생겼고, 그 이유에 대해 줄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무언가 결핍되어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내게 결핍된 무엇인가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내게는 도덕적인 부분이라던지, 지적인 능력이라던지 하는 것들이 결핍되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인 공감하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듯하다. 누구나 타인에 대해 무관심하다. 다만 그 정도와,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는 진심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에는, 타인과의 거리감이 상당 부분 공감의 정도와 비례한다. 아주 남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정말이지 내 손가락에 주는 애정만큼도 주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있던 당일, 나는 그 시각에 늦잠을 자고 있었다.  엉겨 붙은 눈꺼풀을 떼내고 핸드폰을 뒤적일 때 그 사건의 소식을 접했었다. 아이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는 속보에 나는 배가 침몰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다시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해가 기울 무렵 다시 일어나 본 뉴스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 담겨있었다. 수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갇혀있고, 아직도 구조작업 중이라는.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의 다음 날도, 같은 뉴스만 반복되며 아이들의 꽃 같은 생명은 계속 꺼져만 갔다. 어째서 나는 다시 잠이 들 수 있었는가? 그 뒤의 뉴스들을 보며, 아이들의 숨이 말라 가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그에 합당한 슬픔을 품을 수 없었는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아이들이 등장하는 일련의 꿈도 꿨다. 차가운 물 속에서 나는 이를 딱딱이며 홀로 추워하고 고통스러워했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어두운 물 속에서 내 발목을 잡고 날 응시했다. 나는 너무나 무섭고 아프고 황망하여 꿈에서 깨곤 했다. 그럼에도 진정으로 타인의 아픔, 그들의 감정을 똑바로 응시할 수 없었다. 나의 공감하는 능력은 도대체 어디까지 결여되어 있는 것일까. 


 길게 돌아와 이야기했지만, 결국 내게 세계를 눈으로 보겠다는 결심은 결핍된 무언가를 되찾기 위한 목적이다. 분명 나는 어릴 적에 이런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들풀이 아플까 봐 닦이지 않은 길로는 다니지 않았고, 키우던 토끼의 죽음에 눈물 흘리던 여린 아이였다. 자라면서 어떤 일들로 이렇게 변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장소에 가서 많은 것들을 보며 세상과 나의 연결되는 접점을 찾고 싶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 이상의 목적이 생겼다.


커리와 탄두리는 맛있었다
새로 생긴듯한 식당은 깨끗했지만 손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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