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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Sep 15. 2015

여행의 시작, 비자도 없이 베트남으로

150515-19 : 서울-베트남, 한강 뚝섬공원부터 노이바이공항

 여행이 시작됐다. 집을 나와 서울에서 사박오일을 있었고, 그 중 이박을 야외텐트에서 보냈다. 한강에서의 야영은 즐거웠다. 생각보다 춥지 않았고, 텐트는 튼튼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지퍼를 뜯고 밖을 보니, 푸르스름한 공기 속에 까만 한강이 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뚝섬유원지에서 그 시간에 잠을 자는 사람은 나와 내 뒤쪽에서 주무시는 노숙자 한 분이 전부였다. 일곱 시 즈음이 되자 산책하는 중년과 노년의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광장에서는 청년의 에어로빅 댄스에 맞춰 군대처럼 도열한 중년의 황혼들이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고, 놀이터 한켠에서는 한 아저씨가 경이로울 정도의 실력으로 평행봉을 하고 있었다. 다시 텐트로 돌아와 휴식을 하려 할 때 쯤 보았던, 한강을 배경으로 다리 밑에서 펼쳐진 한 할머니의 태극권이 가장 인상깊었다. 깨어난 지 얼마 안된 낮은 태양이 눈부시게 할머니의 등을 비추고 있어 할머니의 모습은 그 실루엣만이 까맣게 보일 뿐이었는데, 천천히 호흡하며 움직이는 그 모습은 마치 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도인의 몸동작같았다. 


 비행기를 타기 전 날에는 액션캠관련 부속품을 직거래하러 나가 뜻밖의 영화(매드맥스)를 보고, 황의 선물로 화장품을 사서 들어왔다. 짐을 싸고 일찍 잠들려했지만 우린 쉽게 잠들지 못했고, 득은 네시반이 되어서야 잠들었다고 했다. 


 여행 당일, 일찍 일어나 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신도림에서 우동과 핫바를 먹은 것이 늑장이 되었는지 공항에서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뛰어야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더 앞서, 한국 공항에서부터 우리의 편도 베트남행은 제지당했다. 베트남은 한국과 비자협정을 맺은 나라기에 15일간의 무비자 여행이 가능한 나라지만, 입국 후 15일 이후 출국한다는 증명이 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우리는 그 사실을 티켓팅 후에 알았지만, 베트남 이후의 일정은 정확하지 않았기에 일부 블로거의 '종종 있는 예외' 들만을 믿고 무작정 출발하려 한 것이다.


  항공사 사람들은 우리에게 심각한 우려를 전하며 본인들은 책임질 수 없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라면 베트남 도착 후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는 미리 발급받아 온 미얀마 비자를 내밀며, 이것이 베트남을 떠난다는 증명이 되지는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갸우뚱한 여자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상황을 물어보러 자리를 비웠다. 여러 직원들의 회의를 거쳐 마지막에 보고받은 한 남자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현지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미얀마비자로는 확신할 수 없으며, 원칙은 베트남을 15일 이내에 벗어나는 항공편이나 버스편을 제시해야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린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일단 보내달라고 말했고, 그 직원은 책임을 회피하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은 뒤에 우리를 보내주기로 했다. 


 우리는 서약서를 쓴 뒤 온갖 망상에 시달렸다. 환전을 한 뒤, 여행자보험에 90일로 가입하고 방법을 모색했다. 이미 시간은 많이 흘러있었다. 모바일로 베트남발 항공권을 결재하려 했지만 폰으로는 결재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촉박한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급하게 출국심사를 받은 우리는 비행기 탑승시간까지도 빠듯하여 게이트까지의 마라톤을 시작해야만 했다. 우리의 게이트 132번은 가장 끝에 위치한 곳이었고, 무빙워크 세번, 에스컬레이터 세번, 전동차 한번, 다시 에스컬레이터 세번, 무빙워크 세번을 지날 즈음에는 탑승시간 이분 전이었다. 그 즈음 항공사 직원을 마주쳤고, 직원은 급하게 하노이가세요? 하고 물어봤다. 맞다는 대답에 그녀는 무전기에 16 알파, 베타 손님 컨텍했습니다!! 라고 전파했다. 우리는 남은 이분을 전력으로 질주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끊임없이 망상에 시달렸다. 기내식을 먹으며 ‘이게 우리가 먹는 인생에서 가장 비싼 식사가 될지도 몰라(비행기값포함)’ 라고 떠들었고, 생각나는 사자성어대기에서는 ‘풍전등화’, ‘구사일생’등이 언급됐다. 마음 속 한켠은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다른 한켠에는 설렘과 기대가 놓여 있었고, 그 두 팀은 서로 지지 않겠다는 듯 비행 내내 시끄럽게 싸워댔다.


 다섯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하노이는 의외로 깨끗하고 넓고 도시적이고 현대적이었다. 우린 공항 입국심사대 앞에 설때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우린 수많은 시나리오를 짜고 연습했다. 우리의 미얀마 비자만을 믿고, 혹시라도 리턴 티켓을 요구한다면 그것을 내밀며 설득할 셈이었다. 이 비자를 보라고, 우린 이곳을 곧 떠날 생각으로 온 사람들이라고. 그러다 말이 안통하면 돈을 줘야하나? 어떡하지? 제발 입국 거부만은 면해야 할텐데.. 수 많은 생각을 안고 입국 심사대 앞에 선 득은 별다른 말도 꺼내지 않고 입국에 성공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옘병.

 겁낸것이 무색하게도 우린 너무 쉽게 베트남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한강의 아침, 자벌레가 낮게 보여 깜짝 놀랐다.
해가 어느정도 오르니 곧 따듯해졌다.
생각하기 싫은 밤..
꽤나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을 가는구나.
생각보다 아름다웠던 하노이의 공항.
깨끗함이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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