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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Nov 14. 2016

'제이슨 본'을 보고

어벤저스가 아니기에 더욱 매력적인 그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쉽사리 답하지 못하는 윤리 명제가 몇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대의를 위해 소의를 저버릴 수 있는가', 혹은 '다수의 구원을 위해 소수를 희생할 수 있는가' 정도가 있다. 이 윤리문제들은 꽤 많은 영화에서 주된 주제로 사용되어왔다. 보통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자는 쪽이 악역으로 그려지고, 그들의 희생자나 그들의 의견에 대립하는 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도 그런 얘기였고, 꾸준히 보고 있는 웹툰 '블랙 베히모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윤리문제에 봉착한 주인공들이 자신의 신념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모습은 꽤나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런 이야기들처럼, 이 문제가 쉽사리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일까?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저마다 당연히 소수를 희생해서 다수의 생존을 확보해선 안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 닥친 현실 사건 중엔 그와 정 반대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에섹스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다수의 생존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인물이 치유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혹은 소수의 자발적인 희생으로 다수가 구원받는 이야기들도 많다. 대부분의 영웅담들이 그러하다. 구명보트의 정원보다 많은 인원들이 살아남고자 보트에 올라탔을 때, 우리는 다 같이 죽을 것인가, 정원 외의 소수를 납득 가능한 방법을 통해 추방할 것인가. 이 윤리적 명제의 답에 가 닿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다시 돌아온 제이슨 본은 여전히 같은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힘든 싸움을 벌인다. 전작까지의 이야기인 '블랙 브라이어'를 넘어 새로운 CIA의 프로젝트인 '아이언 핸드'에 대한 문제가 주가 된다. 미국의 방어라는 대의를 우선시하는 국가정보기관과 그에 오래도록 대항해온 희생자이며 폭로자인 본이 대립한다. CIA는 '아이언 핸드'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의 불특정 다수를 감시하는 계획을 세운다. 이는 최근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던 프리즘 폭로 사건이나, 국내의 테러방지법 논란을 연상케 한다. 여기서 지적되는 윤리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이 옳은가. 국가의 방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불특정 다수의 무차별적인 감시 같은 소의는 희생되어도 괜찮은가.


 제이슨 본은 이것을 윤리문제로 가져가서 고민하거나 국가적 차원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그가 겪은 일들과 사적인 동기를 토대로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대전제의 윤리문제에 대한 갈등을 해소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사실 모든 것들을 사소하지만 무한의 영역인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희생당하는 소수나 소의의 입장에서 이타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면 답은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제이슨 본 역시 마찬가지다. 트레드 스톤 프로젝트로 희생당한 그의 삶은 어떤 식으로 구원을 얻을 것인가.


 제이슨 본의 이야기가 영웅적 인물의 서사시라기보다는 희생당한 개인의 고군분투기로 읽힐 수 있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그는 세계를 구하는 사명을 지닌 어벤저스가 아니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이 이야기의 탁월한 몰입도나 현실성, 핍진성 같은 것들도 이 지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야기는 이번으로 네 번째다(본이 없는 본 시리즈는 제외하기로 하자).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만족하는 이유는 연출의 탁월함이나 격투신, 추격전 등의 영화적 볼거리 외에도 이러한 이야기의 순수한 재미에 있다. 사회 현안을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가 더 쓰여지길 기대한다.


 

+ 격투신이나 추격전 등의 장면들은 이미 본 시리즈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지 오래이지만, 이번 제이슨 본의 자동차 추격전은 정말 인상적이다. 

++ 맷 데이먼은 이제 이 시리즈의 상징이자 기호가 된 듯하다. 그가 없는 이 시리즈를 상상할 수 없다. 

+++ '해더 리'역을 맡은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어쩐지 낯이 익더라니, '맨 프롬 엉클'의 주인공이었구나. 이 영화에서는 '맨 프롬 엉클'에서와는 다른 진한 여운이 담긴 연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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