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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Nov 08. 2016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보고

자신의 안온한 영역을 벗어나 달려가는 소년

 고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팀 버튼의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이라는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독특한 그림과 매력적인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 뒤로 팀 버튼의 영화들도 찾아봤다. '가위손'과 '빅피쉬'를 보고 이 감독이 하고픈 이야기가 뭔지 알았다. 팀 버튼은 항상 소외된 개인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소외된 인물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이상한 게 아니야, 넌 특별해'라고.


 팀 버튼의 영화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이 영화에도 존재한다. 이상하고 괴상한 누군가들에게 보내는 따듯하고 애정 어린 시선, 그것이 영화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방식은 약간 달라졌다. 그의 비틀린 유머들이 약간 비켜준 자리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가 와 앉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의 플롯은 지금까지의 팀 버튼의 판타지 월드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귀엽거나 따스하거나 키득거릴만한 요소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주인공 제이크가 자기에게 숨겨진 정체성의 비밀이나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다른 세계를 찾아가려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고 긴박하게 진행된다.


 평범한 제이크의 인생에 자신도 몰랐던 특별한 존재들이 개입하면서 점차 그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시간을 조종하는 임브린이 왜곡된 시간의 순환고리 속에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설정 속에, 주인공 제이크는 자신의 평범함에 좌절한다. 자신은 너무나 평범하고 초라하므로 이곳에 있을 수 없다고, 그리고 내게는 돌아가야 할 다른 곳이 있다고. 하지만 제이크의 비범함은 이 세계를 구할 능력과 연관되어 있었고, 평범했던 한 소년은 자신의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누군가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 세계를 위협하는 적을 이겨낸 뒤에, 제이크는 다시 돌아온 자신의 안온한 영역을 벗어나 약속한 장소로, 그 시간으로 달려간다. 이 단순한 이야기의 마지막 은유가 조금 아름다워서 이 영화가 약간 더 좋아졌다. (달려가는 젊음의 모습, 나는 그런 것에 약한가 보다)


 특별한 아이들의 능력이 모두 적재적소에 쓰이는 것은 아니다. 팀 버튼만의 상상력으로 영화 속에 구현된 원작의 캐릭터들은 저마다 사랑스럽지만, 그들이 소모되는 방식은 조금 안타까웠다.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빛나는 것은 공기보다 가벼운 소녀, 불을 만드는 손을 가진 소녀, 그리고 그녀를 이상한 방식으로 좋아하는 소년, 이렇게 셋 정도가 아닐까. 게다가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 역시 초라하다.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는 악당들이 그만큼의 경험치와 역량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무너져가는 모습은 엉성한 면이 없지 않다. 동화로서 바라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 주인공 제이크 역의 아사 버터필드의 연기는 별로.. 에바 그린은 매력적이지만 그가 맡은 역은 자기희생하는 장면 외에 그다지 활약하지 않는다. 

++ 특별한 아이들의 감정선이 평범한 그 나이대의 소년 소녀들과 다르지 않게 묘사된 것들이 참 좋았다. 아이들은 질투하고, 좋아하고, 떠나갈까 염려하고, 쑥스러워한다. 그리고 그 감정 표현에 저마다 서투른 점들이 귀여운 포인트.

+++ 공기보다 가벼운 소녀 엠마 역을 맡은 엘라 퍼넬에 반했다. 매력이 넘친다.

++++ 사실 나는 아이들이 마지막 즈음에 루프를 벗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벗어난 건 아이들이 아니라 제이크였다. 그것도 그닥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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