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래 Feb 21. 2017

'라라랜드'를 보고

너를 영원히 사랑할거야




 

 영화 '라라랜드'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경탄과 놀라움, 웃음과 감동 사이를 오갔다. 다양한 감정들과 주제들이 한 영화에 이렇게 탁월하게 들어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굳이 감독의 나이나 경력 따위를 거론하지 않고서도 그의 천재성을 짐작할 수 있다. 


 라라랜드에는 사랑의 시작과 종말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그것을 초월한 영원과도 같은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열정과 욕망과 포기와 성공에 대한 이야기들이 뮤지컬 영화의 형식을 빌려 탁월한 연출과 촬영으로 거의 완벽하게 그려져 있다. 음악이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각 음악들이 진행될 때에 자연스럽게 롱테이크로 흘러가는 화면은 그 촬영에 자연스럽게 감탄하게 된다. 기술적으로 연결한 부분들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절대 아니다. 


 음악들 역시 뛰어나다. 기본적으로 재즈, 그리고 스윙을 빌려 들려주는 음악들은 자세히 들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내가 느끼기에, 각 음악들 중 몇 인상적인 것들은 장조와 단조를 미세하게 넘나드는 스케일을 사용하고 있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메인테마도 그렇고, City of stars도 그렇다. 이런 음악들은 가사로 영화의 내용들은 전달할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영화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짧고 강렬한 연출로 빠르게 달려온 전반부가 지나고 나면 계절이 바뀐 뒤의 나른한 날들과 다시 추운 우리의 시간이 찾아온다. 거짓말 같은 사랑의 시간들이 지나고 난 뒤, 서로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고 자위하지만 결국 서로를 위해 한 일이 오해되고 심지어 서로를 소외시킬 때 사랑은 자연스레 종언된다. 그 종지부를 찍는 문장이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 라는 것은 퍽 아름답고도 쓸쓸했다. 


 나는 어떤 만화의 좋아하는 장면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서로의 시작(그 사랑은 그들의 메인테마로 온전히 치환된다)으로 돌아가 그 수많은 시간들을 다시 보낸 뒤 현재로 돌아오는 그 경이로운 지점에서 어떤 만화를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 장면은 이런 것이다. 


(기억이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두 남녀가 기차역 플랫폼에서 떠나는 한 명과 전송하는 한 명으로 그려져 있다. 그곳에서 떠나는 남자는 열차 안에, 보내는 여자는 열차 밖에서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 있다. 떠나는 남자가 손에 쥔 작은 물건을 여자에게 건네준다. 보내는 여자가 받아 들고는, 이 병뚜껑은 뭐냐고 묻는다. 떠나는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다시 지금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스위치다, 만일 네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내 생각을 하고, 다시 이때로 돌아와 내게 다른 행동을 할 의향이 있다면 그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나를 만나겠지, 하지만 돌아오기 전의 기억은 없을 거야.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자, 지금 너는 그 버튼을 눌러 다시 이곳에 왔어. 보내는 여자가 말한다. 잘 가.


 어쩌면 우리에게 기회는 영원히 있을지도 모른다. 만화 속의 여자는 수 없이 버튼을 눌러 그 자리에 수백 번 수천번을 다녀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하고, 똑같이 후회하겠지.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그렇기에 환상적이며, 따듯하게 아름답고 섬뜩하게 현실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꿈같은 장면 뒤에 다시 서로를 떠나며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넘어서 그 어떤 곳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국은 눈빛으로 말하는 것, 잘 가, 라고. 



+ 라이언 고슬링은 여전히 이러한 장르에 가장 매력적인 얼굴을 하고 그런 연기를 하지만 엠마 스톤은 정말 대단했다. 사랑스럽다고 내내 생각했다.

++ 다미엔 차젤레의 다음 장편을 어쩔 수 없이 기대한다. 이 영화까지 성공하고 나면 그는 아마 꽤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번외)'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