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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래 Feb 22. 2017

(번외)'쇼코의 미소'를 읽고

평면적이고 직설적이지만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 있어서 시내에 갔는데, 매번 볼일이 있던 장소에서 주차비를 해결해주던 CGV에 주차를 했는데, CGV 주차시스템이 개편되어서 이제는 주차권을 발급해주질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그렇다면 CGV건물 내에 있는 서점에서 책이라도 사야겠다 싶어서 책을 두권 샀다. 하나는 소설리스트에서 본 듯한 '너무 시끄러운 고독',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 책, '쇼코의 미소'. 정작 사고 보니 주차비는 30분밖에 해결이 되질 않았지만, 그리고 나는 36분을 주차해서 초과 6분에 대해 30분 치의 주차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어쨌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닥 후회 되질 않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쇼코의 미소는 총 7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제목과 같은 이름의 중편이 가장 먼저 등장하고, 그와 유사한 서사를 갖는 다른 중단편 6개가 연이어 이어진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거만하게도 '꽤 평이하군'이었다. 음, 그러니까, 끝까지 읽는다면 이 말에 동의할 사람이 좀 있기도 할 텐데, 결국 이 책에 해설을 덧붙여준 서영채 선생의 말처럼, 이것은 이 책에 던지는 혹평이 아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 등장하는 소설들은 거의 모두가 평면적인 서사구조를 갖고 있고, 인물들의 생각과 감정이 너무 직설적이며, 결국엔 어떤 다른 감상을 꺼내기도 전에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아, 좋았다- 정도밖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평면적인 이야기 속에는 직진하는 진정성과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고, 직설적인 감정 묘사 뒤에는 다분히 감각적이고 읽는 이의 속을 깊숙이 찌르는 아름다운 묘사들이 숨겨져 있다. 감각적이라는 표현은, 이른바 예술계에서 일컫는 '감각 있다'같은 실체 없는, 그저 세련되었다 정도의 의미를 포함하는 어휘가 아니라, 문장마다 감각, 그러니까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등의 구체적인 현실세계의 감각들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문장들이 이 책의 직설적이고 평면적인 이야기들을 아름답다고 느끼며 읽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종내에 해결되지 않은 채로 끝나지만, 그 이야기들 속에서 결국엔 서로 소통하게 되는 이야기의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한지와 영주의 경우에는 나 역시 끝내 그들의 자연재해와도 같은 단절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 분의 서평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영주의 단순함, 그러니까 한지의 섬세와 예민과 반대되는 영주의 다른 속성이 그들을 어떤 단절의 고랑 속으로 내몰았을 것이라는 그분의 이야기에 나중에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야기들은 저마다 자신의 상실과 세계의 붕괴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읽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다. 각자의 세계에서 읽힐만한 이야기들이 그 세계에서 읽힐 뿐이다. 개인적으로 내 세계에서 읽히는 이야기들은, 굳이 이야기하자면, (김연수의 표현에서) 플롯이 이끄는 이야기보다는 인물의 내면이 이끄는 이야기들이다. 이름을 거론하자면 나는 기욤 뮈소가 싫고 더글러스 케네디의 '빅픽쳐'같은 작품이 싫다. 딱히 더 읽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최은영의 이 힘 있고 감각적인 문장들로 구성된 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사실 김연수의 추천사 때문에 책을 고르긴 했지만, 앞으로도 최은영의 이야기들을 찾아 읽고 응원하게 될 것 같다.


+ 좋아서 메모장에 옮겨 적어둔 문장들

...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내가 얼마나 그 시간에 집착하고 있는지 알았다. 그 시간은 영원해야 했다. 다른 시간들처럼 함부로 흘러가버려서 과거 속에 폐기되어서는 안됐다.
... 그런데도 이 이야기들은 모두 없었던 일처럼 빛을 잃는다. 한지와 보낸 시간의 세부를 낱낱이 기억하면서도 실감은 점점 흐려진다.
... 실수로 꼬리 칸을 자르고 앞으로 달려가는 기차처럼, 예전에 내가 나라고 알던 사람을 나는 잃어버렸다. 스물의 나는 스물넷의 나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되어 내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두운 레일 위에 우두커니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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