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때때로 스스로를 괴롭히게도 되는 법이죠
1970년대부터 미국 CIA에서 초능력자들을 모아 연구했다는 기밀문서가 공개됐다.
미국 정부는 염력, 투시력 같은 초능력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고
이를 첩보활동에까지 활용하고자 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내가 초능력 보유자라는 사실을 안 건 꽤 나이를 먹어서다.
온 힘을 모아 숟가락 쪼가리나 구부리던 사기꾼 유리겔라와는 달랐다.
내 초능력은 훨씬 강한 종류의 힘이었다.
인체의 물성을 변화시켜 잠시 동안 빛이 투과할 수 있도록 하여 몸을 숨기는 투명화할 수 있는 능력.
신기하게도 결혼 직후 내가 얻게 된 능력이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했지만, 원하지 않을 때도 발휘되어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투명인간으로서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관심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외로움은 부부라 해도 비켜가지 않는다.
사랑의 깊이와는 무관하다.
마치 행성 주위로 타원궤도를 도는 위성처럼 둘은 가까웠다 멀어졌다 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궤도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이탈하고, 가까워지면 충돌한다.
거리가 역치를 넘었을 때 비로소 균형은 깨어진다.
결코 좁힐 수 없는 그 진공의 공간을 우리는 외로움이라 부른다.
각기 다른 두 사람 사이의 이격 속에서 너무 멀어지지도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가진 문제는 두 인간이 만나서 이룰 수 없는 하나 됨 이상으로 훨씬 심각했다.
심할 때는 한 달에 서로의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시간은 대략 20여 분 남짓인 적도 있었다.
거진 서로를 없는 사람인 채 취급했다고 해야 맞을까.
그를 방 밖으로 나와 나와 시간을 보내게 하기 위해 많은 애원을 했다.
매주 수요일은 무비데이야, 집에서 함께 영화보자!
일주일에 두 번은 퇴근 후에 나랑 티타임하며 이야기를 하자!
내 야심찬 계획도 모두 한두 번의 이벤트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그의 취미생활이라도 맞춰보려고 보지도 않는 장르의 영화를 억지로 보고,
스타크래프트를 배워 PC방도 따라갔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건 내가 꿈꾸던 결혼 생활이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일주일에 우리가 몇 시간 정도쯤 이야기하는 것 같아?" 물었다.
그가 "30분" 또는 "1시간 정도" 라고 대답했더라면,
"그건 너무 부족한 것 같은데 이만큼 늘려볼까?" 말하려 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그는 나에게 "많이"라고 답했다.
많이......
그 허망한 대답들 속에서 나는 오랜 시간 허우적 댔다.
수백 번의 대화에도 우리의 상황은 일보도 전진하지 않았다.
나는 지쳐갔고, 자주 분노했다.
결혼 전에 우리는 분명 이렇지 않았다.
결혼은 상대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많은 불편한 의무와 책임을 기꺼이 지겠다는 약속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 나에겐 오로지 고된 결혼의 의무와 책임만 남았을 뿐이다.
내가 빨래, 청소, 요리를 하려 고용된 것처럼.
결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늘 어둡고 비어있는 집, 돌아누운 상대의 등이었다.
진공의 우주에 오로지 나 혼자 동동 떠 있는 듯한 느낌.
그 적막이 이렇게 외로울지 진작 알았다면 결코 결혼 같은 건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도 물론 힘들지만, 둘일 때 느끼는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건 유기고 존재 부정이니까.
존재를 부정당한 인간은 설 곳이 없다.
별거와 이혼을 거치는 동안, 나는 미치지 않으면 창문으로 뛰어내릴 것 같았다.
고독은 나를 오래 곪게 했고, 경험해보지 않은 미래는 불안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던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를 학대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소설가 사강의 말처럼, 자멸이 나의 유일한 자유 같았다.
가슴에 진물이 가득 차 숨을 헐떡 거렸음에도 뱉어내는 방법을 몰랐다.
남들이 금연을 고민하는 나이에 나는 담배를 배웠다.
시원한 맨솔 향이 폐 깊숙이 들어갈 때면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술은 입에도 대지 못했던 나는 술을 마시고 정신없이 밖으로 나돌았다.
남들이 청소년기에 끝내는 방황과 일탈을 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혔다.
친한 친구 중, 수없이 많은 남자를 가볍게 갈아 치우듯 만나던 연애 고수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상처라곤 전혀 없이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을 보며 저렇게 쿨한 사람도 있구나 감탄했다.
그녀에겐 안정된 관계와 진실된 사랑이 굳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시간이 한참 흘러 이제 엄마가 된 그 친구가 어느 날 고백하기를
자신은 자존감이 너무 낮아 늘 사랑이 고팠다 했다.
이성이 자신을 육체적으로 원할 때만큼이라도 자신이 필요한 존재이고 사랑받는구나 느꼈으므로
그 공허를 육체적 관계로 채우려 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가벼운 관계는 공허함만 남겼다고 했다.
나는 지난 나를 생각하며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에게 결혼과 이혼은 사랑받지 못하고 아팠던 상처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혔던 방황의 시간들이었다.
상처 받았던 기억들이 너무 아프면, 사람들은 때때로 스스로를 괴롭히게도 되는 법이다.
고통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하는 것이다.
너무 아파 그것이 약인지 독인지도 모른 채 허겁지겁 집어먹어 버린 것뿐, 그들이 나쁜 것이 아니다.
상처 받은 영혼일 뿐이다. 가슴이 꽂힌 칼을 뽑아 상대를 찌르지도 못하고,
오로지 찌를 수 있는 건 약해져 버린 자신밖에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지난 방황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을 함부로 방치한 후 찾아온 것은
안식이 아니라 불행과 더 큰 자괴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담배도 술도 노는 것도 다 끝냈다.
다시 나 자신을 아껴주기로 했다.
나는 결단코 단 한 번도 내가 불행하길 바란 적 없다.
오로지 지금보다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조금만 더 행복해지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늘 실패에 치이고 잘난 친구 앞에선 들러리일 뿐인 주인공이 고백한다.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기를 바라요, 여전히…"
난 내가 너무나 애틋하고, 행복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이제 이만하면 됐다. 이제 그만 상대를 미워하고 상대에게 그만 미안해하자.
나 역시 그만 용서하고 그만 괴로워하자. 더 이상 앙상한 기억에 매여 남은 삶을 낭비하지 말자.
그때 나는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청소년기의 방황을 통해 우리가 성장해왔듯, 성장을 위한 한 시절의 성장통이었다고 생각하자.
이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