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리조트에서 일어난 일

치앙라이에서 알게 된 나의 전생

by Gorae


방콕에서만 코로나에 두 번 걸린 후 후각이상이 왔다. 몇 년 동안 아무 냄새도 맡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맡게 된 향은 바로 ‘핀핀’의 몸에서 나는 레몬그라스 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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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핀핀’을 처음 만난 것은 한 호텔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해 치앙라이에 처음 갔을 때였다. 새벽에 방콕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치앙라이로 가 온종일 바쁜 일정을 소화했음에도 잠이 오지 않던 첫날밤에 넓은 호텔 정원을 거닐다 ‘핀핀’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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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의 매끈한 피부에 큰 눈을 가진 ‘핀핀’은 태국전통의상인 ‘쑤타이’를 입고 정원을 거닐고 있었는데 나는 ‘핀핀’을 마주치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사실은 눈이 번쩍 뜨인 것이 아니라 다시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핀핀’의 몸에서 나는 달짝지근하고 향긋한 레몬그라스향을 맡았을 때 나는 마치 잊고 있던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사람처럼 모든 감각이 열리는 기분을 느꼈다.


나를 보며 빙긋이 눈인사를 건네고 있던 ‘핀핀’에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눈인사를 건네자 ‘핀핀’은 마치 나를 그곳에서 만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나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했다.


“저는 당신의 전생을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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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아름다운 이의 당혹스러운 말에 무어라 대꾸할 수 없고 수줍은 마음도 들어 ‘굿나잇’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 호텔 방 안으로 들어와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정이 될 때까지 뒤척이다가 결국 ‘핀핀’이 알려준 그녀의 룸넘버를 떠올리고 그 방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여니 문 앞에 ‘핀핀’이 서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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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핀’의 안내를 따라 호텔 8층의 제일 끝에 있는 그녀의 넓은 스위트룸으로 가 발코니에 앉았다.


밝은 달빛을 가득 머금은 ‘콕’강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의 풍경은 아름다웠으나 ‘핀핀’의 얼굴이 가진 신비한 아름다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치앙라이에서 만든 와인이에요.”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며 ‘핀핀’이 따라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핀핀’은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 지금은 방콕에 있는 에메랄드 불상이 치앙라이에 있을 때부터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고 말했다. ‘핀핀’이 나 또한 몇 번의 윤회를 반복하는 동안 ‘치앙라이’에서 태어난 적이 있다고 말하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일생동안 채울 수 없었던 상실감을 가지고 살아온 까닭을.


‘핀핀’은 자신이 치앙라이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 여전히 흉포한 힘으로부터 이곳을 지켜야만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밤새 ‘핀핀’의 레몬그라스 향안에서 깊이 머물렀고 그 향은 결국 단단한 유리구슬처럼 내 몸 깊숙이 박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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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나는 내 호텔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커튼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더니 우기 같지 않게 쾌청한 하늘이었다. 잠시 발코니에 멍하니 서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함께 치앙라이에 간 에이전시 대표의 전화였다. 조식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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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식당에 가서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차를 타고 치앙라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원을 향해 가던 중 차 안에 있던 일행 모두가 잠들어있는 틈을 타 항상 낮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답을 하는 호텔 매니저 ‘피툭’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핀핀’이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그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피툭’은 놀란 듯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피피’님께서는 만나셨군요, ‘핀핀’님을.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지만 만나기 힘든 분입니다. 저희 호텔에는 8층이 없거든요.”


*


방콕으로 돌아오자 금방 다시 후각이상 증상이 도졌다. 다만 지금까지도 레몬그라스 향만은 또렷하게 맡을 수 있게 되었다. 방콕에서의 바쁜 생활 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상실감이 있다. ‘핀핀’과 함께 보낸 그날 밤, 내 몸과 마음의 절반은 영원히 ‘치앙라이’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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