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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구름 Sep 24. 2016

함께 걷는 길

어머니께로부터 온 편지_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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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키 큰 미루나무 곁에서
저녁노을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저 구름 너머엔 누가 있을까...

하얀 뭉게구름 속에

토끼랑 사자랑 친구하고 사이좋게 흘러 흘러 가누나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낳아 예뻐 예뻐 키우며
울고 웃고 신랑이랑 함께한 세월, 어언 35년

난 과연 사랑하며 산건가?


이제 새신랑 새색시는 하얀 모자를 쓰고
주름진 옷을 걸치고 절뚝이는 걸음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토끼 구름 사자 구름처럼
사이좋게 흘러 흘러 그곳,
시리도록 아름다운 곳으로 가려하네

여보세요 사자 구름씨
좀 천천히, 세상 구경 여기저기

그분이 가라 명 한 그곳들을

들러 들러 가시지요

좀 더 천천히...





 나 어릴 적엔 방에서 예쁜 글씨로 편지를 쓰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편지를 내가 받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면 항상 모든 이야기에 앞서,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봄에는 작은 꽃들의 소리를 녹이셨고, 가을에는 바스락거리는 낙엽의 이야기를 주워 편지에 담으셨다. 나는 어머니께서 습관처럼 적으시던 편지의 첫 소절을 읽으면 그렇게 웃음이 났다. 한 때의 문학소녀가 써 내려간 시구를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꼭지를 꺾어 곧게 써 내려간 어머니의 글씨를 흉내 내보려, 어머니 옆에 엎드려 그렇게도 많이 따라 했는데...

나의 펜글씨는 여전히 지렁이 기어가는 모양새다. 오랜 시간 동안 까맣게 잊어버려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의아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시구를 닮으려 그렇게도 자주 글을 썼나 보다.


 이제 어머니께로부터 온 편지는 받아본 지 오래되었지만, 얼마 전부터 가끔씩 문학소녀로부터 장문의 메시지가 온다. 그 속에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재밌게 들었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녹아있다. 그리고 모나미 볼펜 대신 휴대폰으로 한참을 써내려 문득 보내주시는 이 글들이 난 참 좋다. 앞으로 더 자주 행복한 글들을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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