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둘이 처음 보았던 그 날,
너와 처음 전화를 할 때,
처음으로 그 차가운 손을 잡을 때, 여름이었는데도 오돌오돌 떨며 처음 고백했던 그 날.
한 손으론 너의 머리를, 한 손으로는 네 등을 감싸 안아주었던 어느 늦은 저녁 버스정류장,
처음으로 함께 인도식 카레를 먹으러 갔던 때,
겨울바다로 함께 당일치기 여행을 갔던 그 날, 우리 둘 밖에 없던 그 바다.
심야영화를 보고 집에 데려다 주어서 처음으로 함께 하루를 넘겨본 날,
그리고 처음으로 다투었던 날,
우리가 서로에게 처음으로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던 날,
너의 부모님을 처음으로 뵈었던 긴장됐던 시간,
처음으로 네 얼굴을 캔버스에 그려본 며칠,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너를 소개해주었던 날.
서로에게 처음으로 소리쳤던 새벽,
듣고도 믿을 수 없었던 그 말,
그 말들로 인해 처음으로 생각해 본 나의 진짜 모습,
처음으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었던 그 나날의 시작.
참 많은 처음이 생각나지만 그래도 난 유독 그 모든 것들의 처음, 그 처음이 생각난다.
자, 다시.
단 둘이 처음 보았던 그 날, 그 장소의 보도블록 모양, 그 공기와 구름, 내가 입었던 체크 남방과 목에 걸었던 사진기, 너의 원피스, 머리 모양, 그 웃음, 팔목에 처음 스쳤던 네 팔의 촉감, 함께 들고 읽었던 책, 널 찍었던 사진기 소리, 네 촉촉했던 검은 머리의 샴푸 냄새, 햇빛의 온도, 우리가 함께 비웠던 음식, 탔던 버스, 앉았던 자리, 너의 발이 놓여있던 위치, 보았던 영화, 헤어질 때 손 흔들던 정류장, 혼자 집에 돌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번졌던 미소까지.
참 생각이 난다.
돌아갈 수 없는 그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