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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un 12. 2022

후라이팬형 인간의 최후

가스불을 끄면 바로 탈이 나네요

이전에 후라이팬형 인간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혼세 팟캐스트 최근 에피소드에서 들었는데,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가열되는 시간이 길어서 가열되면 여러 개를 돌려서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만, 한번 가스레인지 불이 꺼지면 푸슈슉 기운이 빠져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이번 연초부터 제대로 쉰 적이 없었는데, 프로젝트를 쉬면서 같이 하던 일을 내려놓으니 바로 탈이 났다. 그걸 보면서 내가 새삼 "후라이팬형 인간 맞는구나"싶어 졌다.


연초에 연달아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두 일이 맞물렸던 3월에는 프로젝트 릴리즈하려다 내가 먼저 쓰러지겠다! 정기 배포보다 내가 더 먼저 나가겠다!라고 말하며 머리를 쥐어뜯곤 했다.


그래서 오히려 글을 더 쓰고 싶었다. 글을 쓰기 위해 많이도 고군분투했다.

우선, 매주 뉴스레터 문장줍기를 썼었다. 회사를 다니는 평일의 나를 독려하고 버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내 글쓰기 모임을 이끌었다(글쓰기 모임 소개 및 마무리에 대한 회고는 여기).

모임을 시작할 때 업무에 부침이 있었는데, 백일만큼만 더 잘해보자고 생각했다

아마 일을 하면서 오는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기 위해 더더욱 글을 썼나 보다.

어쩌면 10개월 동안 하기 싫은 요리를 하나 오랫동안 하고 있으니 옆의 가스레인지 두 구에 불을 켜 둔 셈이다.


그리고 세 가지 일들이 순차적으로 끝이 났다.

5월 25일, 회사에서 오랫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보냈다.

5월 29일, 오랫동안 써왔던 문장줍기 뉴스레터를 100호로 잠시 마무리해두었다. 

6월 9일, 회사에서 이끌었던 사내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6월 초인 2,3일 벼르던 휴가를 냈다. 이틀만 쉬면 6일 동안 휴일이었다. 마음이 바빠 그동안 맘 놓고 떠날 수 없었고, 입사 후 한 번도 여행을 못 갔기 때문에 가까운 태안으로 다녀오기로 했었다. 


사실 출발 전부터 머리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여행이 설렜기 때문인지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고, 자다가 머리에 태블릿을 떨어뜨려 혹이 조금 난 상황이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여행 내내 라테와 와인, 맥주를 매일매일 신나게 퍼마셔서일까. 올라오는 길부터 시름시름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에어컨 바람만 쐐도 아팠다. 집에 돌아와 씻고 눕자마자 시원하게 앓아누웠다. 머리가 지끈거렸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3일 오후부터 4,5,6일 내리 누워있었다. 하늘이 그렇게 예쁘고 맑았다는데 나는 집 밖에 딱 한 번 나갔다. 연휴에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전부 망했다. 이렇게 아프면 혹시 코로나 아닌가 싶어서 코도 찔러보았다. 아마 소화 불량에 몸살이었던 듯하다.


왜 이렇게 아픈지 돌이켜보면, 큰 일들을 연달아 끝내고 휴식모드로 들어갔기 때문에 몸이 긴장을 풀었기 때문인듯하다. 그동안 나는 프로젝트를 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글쓰기로 누르고 있었다. 그것도 여러 가지 종류로. 그런데 순차적으로 프로젝트가 끝나고, 글쓰기가 끝나고 쉬니까 바로 긴장이 완전히 풀려버린 것 같다. 몸이 이제 누울 자리를 보고 뻗은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속에 안 좋은걸 먹었던 것도 원인이겠지만.


몸은 며칠 더 아팠다가 9일에 회식을 하니까 거짓말처럼 나았다. 이렇게 말하니 조금 이상한데 프로젝트가 힘들 때 외웠던 마법의 주문 - "끝나고 소고기 먹자"- 덕이었나 보다.(프로젝트 회고는 여기 있다)


그런데 막상 글쓰기를 쉬니까 또다시 쓰고 싶은 글도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업무에서도 슬슬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3구짜리 가스레인지에 후라이팬을 올려두고 불을 붙이고 있다. 부디 이번 요리는 후라이팬을 너무 달궈서 태워먹지도 말고, 너무 급하게 약불로 줄이다가 불씨를 꺼뜨리지도 말아야겠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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