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 왕의 이벤트 준비(2)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소심왕이지만 이벤트 대장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6월 초에 회사 내에서 이틀 연속 두 번의 회고를 했다. 그것도 내가 준비해서.
지난 글에서 업무 프로젝트 오픈 회고였다면, 이번에 다루려는 글은 내가 이끄는 회사 내 동호회 회고였다. 생각보다 챙길게 자잘하게 많았고, 예상 못한 변수들이 있어서 시작 전 두 시간 전부터 울렁거리는 마음이었다.
이번 모임에서 다룰 모임은 사내 글쓰기 모임이다.
이 프로젝트는 전사에서 스물두 명이 모여 3월 2일부터 시작해 6월 9일까지 매일매일 글을 써야 했다. 마감은 다음날 아침 아홉 시.
매일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아서일까, 막판에 출석률이 낮아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써주시는 분들도 계셨고, 전체 출석자가 둘이나 나왔다. 매니저인 나도 마감을 못 지켜서 출석은 90%였는데, 매니저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들인 셈이다.
직전 글과 마찬가지로 회고를 준비했던 과정을 다뤄보려 한다.
: 굳이 사서 고생이 되지 않으려면 원칙을 세워보자.
이 프로젝트는 업무 외 일이긴 하지만 단순한 동호회가 아니다. 시작과 끝이라는 분명한 모임의 끝이 있었다. 누군가는 100%를 해내면서 뿌듯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글을 쓴다는 게 어려운 일일 수 있었다.
주말까지 끼어서일까 50% 이상 쓴 사람이 많진 않았다. 특기할 점은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끔이라도 와서 쓴다는 게 특기할만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마무리를 축하하고 싶었다.
마침 매니저들이 모임을 운영할 때 쓸 수 있는 소소한 지원금이 있었는데,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다. 글쓰기 졸업식 겸 마무리 파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우리 모두가 글을 쓴 게 참 고생스러우면서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 모임의 규모나 성향에 따라 진행 방식은 달라질 것이다.
이번 글쓰기 모임의 경우 22명 중 적어도 10명 이상이 올 것으로 판단되었다. 전사에서 참여했기 때문에 일도 다양하고, 연령대도 다양했다. 고등학생 아이의 아버지부터 막 사회에 입문한 주니어까지. 그래서 글쓰기 모임의 글들이 다양해서 재밌었지만, 실제 모임에서 만나면 침묵이 감돌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모여서 수다 떨자,라고 하면 오지 않을 수 있으니 역시 간단한 프로그램은 필요할듯했다.
: 내가 바라는 모임의 모습은 어떨까? 참가자가 무엇을 얻고 가고 싶을까? 에 대해 생각해보자.
글쓰기가 즐거웠다고 기억하길 바랐다. 100일 글쓰기를 진행하면서 백일글쓰기 운영법에 대한 책이 있길래 보았는데, 백일글쓰기를 한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계속해서 쓰거나, 아예 글쓰기를 떠나거나. 설령 글쓰기를 떠난다해도 언젠가 이 기억이 좋아 다시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먹고 마시는 게 끝이 아니라, 뭔가 "글쓰기"를 마무리했다는 뿌듯함을 주고 싶었다.
: 언제/어떻게 모일까? 간단한 설문이 필요할까? 무엇을 주고 싶을까?
모임 초반만 해도 아예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대면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모임 시작할 때 처음 얼굴을 본 상황이었고, 그 이후엔 한 번도 별도 모임이 없었다.
다들 업무가 바쁜 만큼 점심 모임을 진행하기로 했고, 모임 예산이 있었기에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10명 이상이 소감을 조금씩 말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갈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전편에 작성한 업무 회고와 다르게 이건 업무 회고가 아닌 만큼 좀 더 융통성 있게 짜 보기로 했다.
대신 그냥 수다 모임으로 끝나면 아쉬우니 간단히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출석률이 높은 사람에게도, 참가자 전원에게도 주고 싶은 선물을 생각했다. 내돈내산으로 준비했다
참가상은 사람들의 쓴 글에서 매니저인 내가 뽑은 Best 문장 세 개였다. 어떻게 공유해줄까 하다가 이미지를 구성해두기로 했다. 리디북스 문장 공유 시 나오는 이미지에서 착안했다.
https://ridicorp.com/story/more-fancy-image-share/
리디는 프로그래밍을 통해 끝없이 자동으로 이미지가 예쁘게 나오지만, 나는 가내 수공업이 되어야 했다. 이번에도 피그마를 썼다. 피그마에서는 "컴포넌트"라는 기능이 있는데, 레이아웃 원형이 있고 이걸 복사해가는 것이다. 내 문장으로 컴포넌트를 하나씩 만들었다. 상단엔 문장을, 하단엔 작성 날짜와 각자의 글을 상징하는 해시태그, 프로젝트 로고를 사용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레이아웃 잡는 데는 한 시간, 여기에 뽑아둘 사람들의 글을 읽어두는데 일곱 시간이 걸렸으니 도합 여덟 시간이 걸렸다. 이 선물은 한 번에 만든 건 아니고, 틈틈이 만들었다.
상위 참여자 3명에게는 글쓰기에 맞는 책을 주었다. 원래도 책 선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고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특이한 건 글쓰기의 경우 글에 각자의 특징이 묻어난다는 것이었다. 상상력을 발휘한 소설을 쓴 분도 있었고, 일상 에세이를 진지하게 쓰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글쓰기 내용에 맞는 책들을 골랐다.
1-기록형 에세이를 쓰신 분에겐: 김신지 작가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2-성실하고 짤막한 글을 매일 이어오신 분에겐 : 열 문장 쓰는 법
3-우리를 깜빡 속일 정도로 재미난 이야기를 쓰신 분에겐:
: 모임을 위해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하고, 최종 참가자 체크하기
최종 참가자는 약 13명이었다. 도시락을 당일에 시키면 못 올 수도 있다고 해서 식사를 하는 만큼 미리 도시락 주문을 하려 했는데 하필 시키려던 메뉴가 똑 떨어지거나 하는 케이스도 생겼다.
사실 누군가에게 참여를 독려할 때 괜히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싶어 하는 소심 왕이기도 하지만 눈 딱 감고 이때만은 마감 독촉러로서의 모드를 유지했다.
: 쇼타임, 즐기세요!
이전 글과 마찬가지로, 남 앞에서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영혼을 끌어내 반가워했다. 글 하나하나에. 이젠 쇼타임이다. 사실 나는 남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날 때 1:1 대화를 선호하며, 네 명 이상 넘어가는 자리에서 이야기하면 엄청 당황한다. 사실 이번에도 속으로 그랬다. 그럴 때마다 안절부절못했지만 어쨌든 해야만 해서 한다. 이것이 바로 월급이 낳은 E 성향인가.
내가 떨리는 만큼 참가자들도 떨리겠지.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방법도 써도 좋을 것 같다. 대신 영혼을 다해서 이야기를 이끌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또 진행하다 보면 타임라인이 생각보다 지키기 어려울 수 있는데 그럴 경우 융통성을 발휘하여 조절해보는 것도 답일 수 있다.
글쓰기 모임에 다들 열심히 경청해주셨고, 감동받았다 했다. 특히 내가 준비한 문장 이미지 사진에 많이들 감동했다 하셨던지라 뿌듯했다.
“얀이 준비한 문장이 참 따뜻해서 좋았어요. 인스타에 자랑할 거예요”
-글쓰기 모임 회고 마친 담당자분의 소감
이번에 내가 새삼 예민한 성격이구나 느껴다. 원래 하나만 틀어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날짜 투표를 받고, 무엇을 먹을지 생각해보고, 메뉴를 취합하고,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선물을 고르는 것 하나하나가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낼까 고민하고, 감동을 주는 건 뿌듯한 일이었다.
여하튼, 뿌듯했지만 에너지 소모가 많았으므로 당분간은 회고 준비할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마 내가 그동안 참여한 커뮤니티의 회고들이 모두 끝내주기 때문이었겠지. 나는 잘 참여하는 사람일까? 과거의 모임들에 대해서도 감사한 마음을 보태본다.
*Tip1: 준비는 넉넉하게
생각보다 많은 변수로 사람들이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식당/다과 예약은 최대한 넉넉하게 잡아두되 당일 변경될 내역을 공지해야 한다.
*Tip2: 모두가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우린 모두 바쁘고, 모두가 올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자. 만약 더 챙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따로 챙기자.
*Tip3: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고, 일을 분배하는 게 좋다.
첫 번째 모임의 경우에도 진행 전 회고 경험자들에게 물어보았고, 두 번째의 경우 예산 지출, 메뉴 취합 등을 몇 번 해본 분이 있어서 주변에서 진행하기 쉬운 양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식당 하나 찍고 마음에 드는 메뉴 엑셀에 취합하는 게 가장 편할 거라고.
*Tip4: 일희일비하지 말기
어차피 모든 건 통제할 수 없고 임기응변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젠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