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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Dec 14. 2022

박인로의 조홍시가 vs 나훈아의 홍시

[문학-with 케이팝]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찡한

고전문학과 케이팝!

지루한 고전문학 수업이지만 시조문학은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조금은 부담 없는 게 초장, 중장, 종장이라고 해봤자 45자 내외의 분량이잖아요. 이게 참 매력적이에요. 우리 아이들한테는. 더욱이 요즘 대세인 트로트와 함께하니 얼마나 좋아요. 파이팅! 트로트!


아파트 현관 옆 화단에 감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노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곧 빠알간 홍시가 되겠지. 올해엔 기필코 하나 따 먹어야지.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핑 돌더라도.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엄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박인로, ‘조홍시가’     


노계 박인로가 어느 날, 한음 이덕형으로부터 감을 대접받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서러워한 나머지 노계는 이 작품을 지었다. 흔히 '조홍시가(早紅枾歌)'라고 알려져 있는, 효(孝)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귀한 음식을 대했을 때, 누구나 부모님께 갖다 드렸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아울러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고 그것을 갖다 드리지 못함을 서러워하는 것 역시 인지상정이 아닐까? 부모님을 생각하고 서러워하는 것은 효심이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항시 지니고 있는 마음의 일부이니까.          


열매를 들고 섰는 늙은 감나무

가지가 휘도록 맺힌 그 사랑

사랑은 익어서 홍시가 되어도

익지 못한 자식의 떫은 효성     

어머님 영상인가 휘여진 감나무

죄로운 내 마음에 그늘이 지네…

-김철, ‘고향의 감나무’         

 

중국 연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족 김철 시인은 고향 마을에 노랗게 가득 열려있는 늙은 감나무를 보았다. 그 노란 감이 빨간 홍시가 될 때까지 품에 안고 보살피는 감나무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과 같다고 생각하며, 시인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를 썼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늙은 감나무’에 비유하고,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홍시’에 비유하며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부족한 효성을 노래하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는 자책감을 죄스럽다고 했다. 그리하여 마음에 그늘이 진다고 시인은 표현하고 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나훈아, ‘홍시’에서     


엄마가 그리워지는 노래


나훈아의 ‘홍시’를 들으면 나도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노래 가사에 직접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그리움의 이유를 한번 생각해봤다. 엄마가 생각나고, 엄마가 그리워지는 이유를 말이다. 나훈아가, 홍시가 열리면 엄마가 그립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그리운 내 어머니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 편지 다시 보고

엄마 내음 느껴지면 눈물이 납니다

- 작은 별 가족, ‘그리운 어머니’에서     


한때 뽀빠이 이상용이 진행한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 놓고 ~~” 로 시작하는 노래가 나오면, 뽀빠이 이상용 MC가 “뒤에 계신 분이 우리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장병은 나오세요!” 라고 외치면 우르르 몰려나가곤 하던 그 프로그램! 군대를 갔다 온 대한민국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걸렸던 이 애틋한 어머니병은 당연히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시가 열리는 그때, 나훈아가 엄마가 그리워진다고 한 것 역시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 아닐까?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울 땐 엄마 사진도 꺼내놓고, 엄마 편지도 다시 보는 우리의 군바리들처럼, 나훈아도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엄마를 그리워하였다. 그까짓 홍시는 단지 매개체일 뿐이다.  지고지순한 그 사랑 때문에 노계와 김철 시인, 그리고 우리의 군바리들은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노래를 불렀으리라. 노(老) 가수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아, 그리운 어-머-니!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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