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이삼백만 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매우 놀랐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해서 버는 게 고작 이삼백만 원이라니.
처음으로 책과 관련한 저의 일을 '고작 이삼백만 원'으로 치부해버렸습니다.
책을 오랫동안 사실 한평생 좋아해 왔고, 책과 매일을 보내고, 책을 만드는 것도 읽는 것도 쳐다보는 것도 사랑스러워서, 백날 "이놈의 책"이라고 이야기하다가도 사실은 제 일이 무척이나 좋았던 사람인데 말입니다.
부동산 투자로 처음 2천만 원이라는 수익을 얻었을 때도, 그 금액이 점점 커져서 3억 원이 내 통장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도(다음 투자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한동안 통장에 3억 원이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월 입금되는 700만 원의 글자를 보았을 때도(이제 1년이 넘었네요.) 저는 제 일을 '그 정도 따위' 같은 것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맹세컨대 단 한순간도요.
저는 제 일이 그저 좋았고, 매일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매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제 일이 분명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인생을 자그마한 한 톨만큼이라도 바꾸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돈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매월 제 몸뚱아리가 멀쩡하기만 하다면 안정적으로 나오는 이삼백만 원의 월급도 좋았습니다. 회사 이름을 등에 업고 은행으로부터 잔뜩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렇게나 제 일은 저에게 찰떡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든 어제는 적잖이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아마도 최근 조직개편이 되면서(윗선이 싹 바뀌었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에 대응하며 구시렁거리며 데이터만 주야장천 보면서 보고자료를 만들면서 벌어진 일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책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 있자니, 제 하루 8시간의 의미를 못 찾는 탓일 겁니다. 물론 제 자료에 담긴 데이터 자체는 그 모두가 책에 대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제 일의 행위 자체는 책의 본질과는 머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 데이터 작업은 끝이 안 보입니다. 오늘 또 새로운 미션을 받았거든요. 그랬더니 더더욱 싫증이 납니다.(하기 싫습니다.) 10여 년의 회사생활 중 고작 며칠 만에 이렇게나 가벼워지는 마음이라니, 사실은 제가 그다지 인내가 없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어쨌거나 '만사가 다 귀찮아 싫어증'이 걸린 오늘은 책도 읽지 않고, 주식 공부도 부동산 공부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런 시시한 유튜브나 보거나 뒹굴거리고 잘까 합니다.
* 신기한 점 :
브런치를 켜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내가 왜 이래?'라고 생각했던 것이 역시나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정리가 됩니다. 글이란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