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살기day1_강릉 한달살기 시작

디지털 노마드인가 리모트 워커인가, 그거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by watabook

엄마와 강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차에서 엄마가 "요새 자연산 광어가 싸대"라면서 계속 광어 얘길 하길래, 주문진항으로 곧장 달렸다. 아, 내가 아니라 엄마가 운전했으니 엄마가 달렸다. 하늘은 푸르고 창밖으로는 제법 짙은 초록색으로 변한 나무들이 보였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5월 31일 화창한 아침. 6월 1일부터 나는 한달 동안 강릉살기를 시작할 터였다.



시작은 Y의 카톡 메시지였다. Y는 선배 친구라 이름만 알고 지내다, 몇년 전 퇴근 후 다닌 젬베 클래스에서 우연히 만나 말을 텄다. 첨부터 공통 관심사가 많아서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할 말이 많아서 한 사람이 말을 끝내기 전에 상대방이 참지 못하고 말을 오버랩해 시작하기 일쑤였다. 당시 주된 대화 주제는 남자 이야기였다. 삼십대 싱글 여성들의 대화엔 이미 알걸 다 알아버린(뭘?) 아줌마들의 시니컬함이 있었고, 그리고 적지 않은 19금 내용이 추가되었다.


Y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직을 세 번이나 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마침 강원도에서 한달살기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너 혹시 이거 같이 안 할래?"


강원 작가의 방. 강원도에서 문학과 예술을 하는 작가들에게 한 달간 숙소와 작업실을 지원해주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다. 6월 한달 강원도라. 내가 강원도를 좀 좋아하긴 하지. 5년 전 친구들과 서핑 차 양양에 처음 갔다가 매해 한번씩은 꼭 강원도에 가고 있었다.


2015년 5월 첫 서핑의 추억


레지던시 지역 리스트에는 춘천, 고성, 강릉, 태백, 속초 등이 있었다. 다 좋아 보였다. 춘천에는 소양호가 있으니 좋고, 태백은 산속에서 한 달 동안 있으면 힐링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모름지기 강원도라면 바다여야 하지 않을까? 마침 강릉 파도살롱이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파도살롱은 더웨이브컴퍼니가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로, 로컬 커뮤니티의 구심점이라고 했다. 강릉 로컬 커뮤니티의 기반이 되는 공유 오피스라니. 가보면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좋아, 여기로 정했어.


...그러나 지원 마지막 날 약간 귀찮아서 가지 말까 고민하며 뭉개다가, Y가 재촉해서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왕 쓸 거면 제대로 써야지. 강릉에 꼭 가야 하는 사람으로 빙의하고 열심히 써내려갔다. 일단 어디에 지원할 땐 습관처럼 최선을 다한다. 내 쪽에서 거절하는 건 괜찮아도 거절당하는 건 싫으니까. 12년 전 대기업 공채 때부터 이직과 각종 정부사업에 지원할 때도 그랬다. 그로 인한 합격 랠리가 날 행복하게 했느냐는 조금 다른 얘기지만.


몇 주 뒤 발표한 합격자 리스트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Y의 이름은 없었다. 회사를 조금 더 다니게 되어 지원서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주문진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널럴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수산시장에 들어섰다. 상큼한 바다 냄새가 풍겼다. 구획 정리가 깔끔하게 돼 있어 구경하기 편했고, 심한 호객행위도 없었다. 조금 둘러보다 가장 인상이 좋은 아주머니께 물었다.


"광어 얼마예요?"


1kg에 3만원. 둘이서 먹기 충분하다고 했다. 돌아다니면서 흥정하기 싫어서 그냥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물오징어 1마리와 멍게를 조금 얹어주셨다. 정말 저렴하구나. 문득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넷이 회를 떠서 술 좀 시키고 매운탕까지 먹었을 때 18만원이 나왔던 게 기억났다. 주문진 수산시장에서는 1kg짜리 광어가 2만 5천~3만원, 초고추장 간장 와사비 세트가 2천원, 손질된 채소와 양념이 함께 포장된 매운탕 재료 세트가 5천원, 회 뜨는 데 4~5천원이다. 포장해 가져 가면 둘이서 4만원 정도에 회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길 한 달 동안 세 번이나 올 줄이야


회를 사들고 원룸에 도착하니 오후 열두시 반이었다. 주소를 알려줬을 때 거리뷰로 본 낡은 상가가 맞았다. 방은 상가 2.5층에 있다고 했다. 2층도 아니고 2.5층이라니. 지역색인가? 큰 캐리어 하나에 이케아 플라스틱 장바구니를 들고 2.5층으로 올라갔다. 밥은 꼭 챙겨 먹으라면서 엄마가 정성껏 담근 김치 두 종류와 밑반찬이 든 아이스백도 챙겼다.


"방 넓네! 열 명이서 자도 되겠다."


엄마는 방 넓이에 감탄했다. 원룸이 정말 넓었다. 이 방은 장기로 렌트하면 한 달에 월세가 35만원이라고 했다.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월세다. 심지어 강릉시는 아파트 전세가도 저렴하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초당동 작은 아파트 전세를 2700만원에 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방인지 바닥과 TV, 옷장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바닥을 걸레로 대충 닦고 회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엄만 이것만 먹고 갈 거야."

"뭐? 바로 간다고? 동네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아? 딸 걱정 안 돼?"

"괜찮은 거 같던데 뭐~ 문 잘 잠그고 있어. 나 차 막히는 거 너무 싫어. 바로 갈 거야."


이런 상황에서 보통 엄마들은 딸이 걱정돼서, 혹은 한 달 동안 못 볼 테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아니면 강릉까지 왔으니 구경하고 갈 셈으로 하루 주무시고 가지 않나. 그러나 고여사는 칼 같았다. 고여사,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사랑이 넘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내가 무슨 얘기든 다 털어놓고 고민에 명쾌한 답을 주는 현명한 엄마다. 그러나 한국 엄마들의 특징인 '희생'이라든지 '애절함' 같은 건 별로 없었다.

엄마이기 전에 독립적인 인간으로 존재하며, 크면서도 자식에게도 뭘 해라 마라 참견하지 않았다(물론 오빠는 생각이 다를 수도..). 그래서 내가 이렇게 멋대로 자유롭게 크지 않았을까. 아빠도 못지않게 마이웨이이므로 유전자 탓도 있을 것이다.


엄마는 회를 다 먹자마자 핸드폰을 챙겨 집을 나섰다.


"엄마 간다~!"


멀어져 가는 흰색 아반떼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혼자 남겨진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