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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abook Oct 25. 2022

걸어서 건널까요, 금문교를?_샌프란시스코(3)

운동화만 신으면 용감해지는 엄마와 금문교 걷기

버스 창문으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아침에 나올 때부터 흐렸는데, 이제 비가 오려고 하네. 우산은 있으니 일단 내리자.


우린 금문교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기서 5분만 걸어가면 금문교 입구 도착이었다. 날씨가 화창하면 좋았으련만, 금문교의 반을 짙은 구름이 가리고 있었다. 여행은 날씨가 반인데 말이지.


"엄마, 일단 사진부터 찍자."


준비해 간 셀카봉에 핸드폰을 장착했다. 흐린 금문교를 배경으로 엄마랑 셀카를 몇 장 찍었다. 평소 엄마는 사진 찍히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 따라서 엄마를 찍은 사진이 별로 없고, 있다 해도 표정이 밝지 않다. 카메라를 갖다 대면 "찍지 마~ 엄마 사진 찍는 거 싫어해."라고 말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인상을 팍 쓰고 있는 사진은 보통 "엄마가 찍지 말랬지!"라고 말할 때 찍은 것들이다.


하지만 딸이랑 여행에 들떠서일까? 엄마는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도 잠자코 있었다. 엄마 사진을 맘껏 찍을 수 있어 신이 났다.


"우리 금문교 건너보자."


"걸어서?"


"응"


"엄마, 금문교 왕복하면 5킬로가 넘어. 춥지 않아? 비 떨어질 거 같은데."


"그럼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보자."


"...알았어."


금문교로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로 진입하고 있었다. 다리 초입에서 다들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 관심 없는 고여사님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요, 운동화만 신으면 용감해져요."


고여사의 단골 멘트다. 평소 구두에 스커트를 즐겨 입는 소녀감성 고여사지만, 운동화를 신는 상황-등산, 여행, 마라톤, 시장에 장 보러 가기-에서는 엄청 민첩하고 활동적인 고여사로 변신했다.


그런데 그녀는 뭐에 꽂히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무지막지하게 빠른 걸음으로, 동행하는 사람이 한참 뒤에서 걸어오건 쓰러져서 기어 오고 있건 모른다. 안 돌아보니까. 같이 외출하면 급한 일도 없는데 이미 저만치 치고 나가 걸어가기 일쑤다. 엄마랑 걷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같이 외출했다 돌아오는데 엄마가 나보다 집에 먼저 도착해 있는 경우도 있었다.  

 

힘차게 걷는 엄마의 등을 보며 하염없이 걸었다. 문득 좀 허전했다.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함께 다리 위로 들어섰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지? 관광지에서 동료 관광객이 없으면 한산해서 좋은 게 아니라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자전거들이 위협적인 속도로 옆을 쌩쌩 달렸다. 빗방울은 점차 굵어지고 있었다.


"엄마! 이제 돌아가자!"


들은 척도 안 함.


"아 엄마~~~ 다리를 진짜 걸어서 건널 셈이야?"


여전히 힘차게 걸음을 옮기고 있음.


"아 엄마~~ 제발! 나 힘들어! 쓰러질 거 같다고!!!!"


그제야 엄마는 멈춰 서서 날 돌아봤다.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헉헉. 엄마 안 돼. 아직 한참 남았고, 우리 더 이상 못 가. 지금 비 오잖아. 자전거 쌩쌩 달려서 위험해. 돌아가자."


엄마는 고민하는 듯 주춤거렸다.


"망설일 거 없어 엄마. 얼른 돌아가자. 비 많이 쏟아질 거 같애. 이제 가자."


못내 아쉬워하며 몸을 돌린 엄마는 다시 앞장서 갔다.


"에이... 끝까지 가보고 싶었는데."


'역시 우리 엄마 쌩쌩하네. 대단하셔. 시차 적응도 안 됐을 텐데.'


엄마가 원래부터 이렇게 진취적이고 활동적이었던 건 아니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엄마는 늘 누워서 뒹굴대며 책을 보거나 낮잠을 잤다. 집을 너무 좋아하던 집순이 고여사가 집 밖으로 나가게 된 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늘 상승곡선일 것만 같던 아빠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지고 나서다. 아빠는 회사를 살리겠다고 더 일에 매달렸고,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용돈이라도 벌어보겠다고 나섰다.


당시 이모 한 분이 녹즙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엄마는 이모에게 녹즙을 받아 새벽에 녹즙 배달을 시작했다. 맨날 누워서 책 보고 낮잠 자던 엄마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허나 웬걸. 나는 엄마가 그렇게 성실하고 부지런한 지 처음 알았다. 고여사는 매일 새벽 오빠와 내 도시락을 싸고, 첫차를 타고 여의도에 나가 사무실을 돌며 녹즙을 배달했다.


성실함에 더해, 고여사는 특유의 상냥함과 친절함으로 많은 고객을 확보했다. 집순이에 한량 체질인 줄 알았던 고여사는 알고 보니 뭔가 시작하면 제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고객도 많이 모았고, 애초에 목표했던 용돈 벌이는 꽤 쏠쏠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누군가의 눈에 띄기 마련이던가? 어떤 회사에서는 임원이 회의실로 고여사를 불러 직원들 앞에서 칭찬했다.


실제로 우리 집이 어려웠던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즈음까지다. 하지만 특별히 돈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생활력 있는 두 분이 열심히 일한 덕에 딱히 돈 걱정하지 않고 청소년기를 보냈다. 자칫 엇나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부모님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준 덕이다.  


그리고 내가 돈에 좀 둔한 면이 있긴 하다. 옷 몇 벌 없이 지내도, 수강료가 싼 학원에 다녀도 불만이 없었다. 한 달 용돈 5만 원으로 떡볶이 사 먹고, 대여점에서 만화책 빌려보고, 맥도날드에서 감자튀김 시켜놓고 친구랑 몇 시간씩 수다 떨면 남부럽지 않았으니까.


한편, 세상사 아이러니한 것. 당시 엄마는 일하면서 유독 한 회사를 칭찬했다. 직원들이 매너도 좋고 똑똑하다고 했다. 훗날 내가 바로 그 회사에 취업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겠지. 그때 고여사는 일을 그만둔 지 한참 됐지만, 내가 그 회사에 취업했을 때 너무나 기뻐했다.


"엄마, 나 처음에 회사 취업했을 때 어땠어?"


"무지 행복했지! 우리 딸 저런 회사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딱 그 회사에 들어갔잖아."


"그러니깐. 사람 일 모르는 거더라고."


"엄만 있잖아, 거기 직원들이 목에 사원증 걸고 다니는 게 그렇게 멋져 보였어. 근데 나중에 우리 딸이 목에 사원증 걸고 출근하는데, 너무 자랑스럽더라고."


"나 퇴사했을 때 어땠어? 엄청 아쉬웠겠네?"


"좀 아쉽긴 했지. 그래도 엄마는 소원 이뤘으니까 괜찮았어."


"나 퇴사할 때 엄마는 별로 반대 안 했잖아. 아빠는 엄청 반대했는데."


"난 너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좋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 넌 잘할 거야."


한참을 걸어 다시 금문교 초입에 다다랐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다시 보였다. 안도감이 들었다. 어느새 비는 그쳤으나, 금문교에는 여전히 구름이 짙게 껴 있었다.


많이 걸어서 행복했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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