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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Sep 20. 2023

미워하는 마음 없이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를 오백육십 번쯤 되뇌고 있습니다.

그것도 도입부만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했던가요. 일은 일이되,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에 자꾸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친절하되 호구는 되지 말자.'는 인생 목표를 가지고 여태껏 잘 살아왔다 자부했습니다만은, 지나친 확신의 오류였을까요. 그녀의 등장으로 제 확신의 벽은 힘없이 허물어졌습니다.


  A는 저와 비슷한 연배의 동료입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남매를 키우고 있고, 캠핑을 좋아하며, 모나지 않은 성격의 그녀를 저는 참 좋아했어요.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따로 티타임을 할 정도의 사이는 됐지요. 아주 친밀하진 않지만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었달까요. 적어도 제가 느끼기엔 그렇습니다. 문제는 올해 초 새롭게 업무분장이 발표되면서 시작됐어요. A와 제가 같은 부서의 부서장과 부서원으로 묶이게 된 것이죠. 안타깝게도 동생인 제가 부서장, 언니인 A가 부서원이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잘 됐다.'라고 생각했어요. 첫 업무 시작 전까지 말이죠.


  제가 아는 A는 마음 여리고, 걱정이 많고, 조심스러운 편이지만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보드랍고 따뜻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업무로 만나게 된 A는 조금 달랐습니다. 성격 급하고 불안이 높으며 머리보단 몸이 앞서 매사에 열정적이라는(때론 과하게...) 평판을 받는 완벽추구형 부서장과는 완벽하게 상반된 업무 방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죠.


  '일은! 일일뿐! 미워하지! 말자!'

  '사람은 죄가 없다! 미워하지! 말자!'


  이 구호가 무엇일까요. 먼저 알려드린 심수봉 노래와 함께 요즘 제가 백번씩 되뇌는 구호입니다.


  저는 급격히 소진되고 있었어요. 그간 보아왔던 A의 장점들이 모조리 단점으로 보였죠. 느긋한 성격은 독촉 없인 여간해서 움직이지 않고, 담당 업무는 고질적인 허리디스크와 과도한(그렇게 느끼는..) 부담으로 회피되었으며,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사안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외면하더군요. 시급을 다투는 일에 천하태평인 A를 두고, 결국 저는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며칠 간의 야근으로도 끝나지 않아 토요일 휴일근무를 신청하고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가 되도록 업무 책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저는 결국 이 사태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적인 관계를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요. (이날 이때까지, A는 단 한 번도 초과근무를 하지 않았어요. 본인의 일인데 말이죠...)


  사실 A에게 싫은 소리를 한 번도 하지 못했어요. A가 저보다 몇 년 선배이기도 하거니와 그간 쌓아온 관계도 있고, A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더 솔직히는 관계가 나빠질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요. 공과 사를 철저히 분리하는 게 옳은 일입니다만, 세상에 옳은 일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으니까요. 아직도 남은 기간을 잘 보내고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은 채로 나쁘지 않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이미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저도 마음이 너무 상해버려서요. 애당초 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오히려 쉬웠을 것 같아요. 적당히 건조한 관계가 건강할 때도 있으니까요. 특히나 업무적으로 말입니다.


  인생사 모든 문제의 90%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했던가요. 어쩌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제게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한 것도요. 되도록 담백하게, 친밀하지 않아도 긴밀할 수 있는 관계를 추구하는 제게 또다시 관계에 대한 숙제가 던져졌네요. 파장이 큽니다. 부디 지혜롭게 관계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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