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궁금해서 묻습니다.
적당히 따스한 조명 아래, 매끈한 원목 테이블 위에는 나의 세상이 펼쳐진다. 랩탑의 은은한 팬 소음, 그리고 그 생명줄인 충전기는 빌트인 좌석에 마련된 콘센트에 단정하게 꽂혀 있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시설 제공이 아니다. 공간과 고객 사이에 맺어진 하나의 ‘암묵적 계약’이다. “여기서 당신의 시간을 보내도 좋습니다.” 나는 그 계약을 신뢰했고, 어제는 기꺼이 주문비용을 3번이나 지불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이용하려고 방문하여 늘 그랬듯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오늘의 작업을 시작하려는 순간, 점장으로 보이는 한 아줌마가 다가와 그 계약이 파기되었음을 통보했다. 나의 죄목은 ‘전날의 장시간 노트북 이용’이었다.
나는 불과 한 달 전까지 이 가게의 기준으로 정상적인 고객이었다.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와 빵과 음료를 주문해서 평균적으로 30분 만에 자리를 비워주던, 그들의 테이블 회전율 지표를 아름답게 꾸며주던 존재였다. 그러나 오늘 나의 모든 과거 기여 기록을 삭제하고, 단 하루의 낮은 ‘거래 단위 가치’만을 근거로 나를 문제적 고객으로 낙인찍었다. 그들의 회계장부에는 나의 과거 내역이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이러한 비논리의 전시회는 비단 카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문을 연 한 고깃집은 최첨단 태블릿 주문 시스템을 자랑했다. 나는 그 질서에 따라 ‘갈비 1인분’과 ‘갈비탕 1인분’을 주문했고, 시스템은 나의 선택을 존중하여 주문을 완료시켰다. 가게가 스스로 설계한 명시적 규칙의 완벽한 이행이었다. 잠시 후, 가게 주인이 등장해 그 디지털의 약속을 아날로그적 권위로 뒤집었다. 고기는 2인분부터라는, 태블릿 내 메뉴 어디에도 없던 ‘그들만의 규칙’이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시스템과 현실이 충돌하고, 규칙이 자의적으로 적용되는 혼돈의 공간에서는 그 누구도 신뢰를 쌓을 수 없다. 결국 이 고깃집은 해외에서 한달살이 후 돌아왔더니 사라져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 계산기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저 고객이 차지한 좌석의 시간당 임대료는 얼마이며, 그가 사용하는 전기는 얼마고, 그로 인해 우리가 놓친 잠재적 매출, 즉 기회비용은 또 얼마인가.’ 다른 모든 변수가 주관적 추정의 영역에 있을 때, 우리가 유일하게 검증 가능한 숫자가 있다. 바로 전기요금이다.
난 M1 맥북을 쓴다. 이 기기로 가게에서 하루 8시간, 월 30일을 꼬박 사용했다고 가정했을 때, 해당 매장이 부담하는 가장 비싼 상업용 전기요금을 적용했을 때, 그 비용은 통계적으로 무시해도 좋은 오차범위 안의 숫자다. 하지만 오늘, 콘센트는 다이소에서 사 온 듯한 마개로 막혀 있었다. 아줌마의 절약정신이 매우 투철해 보였다. 그리고 직접 오셔서 '장시간 이용은 안됩니다'라는 얘길 들었다. 어제 주문을 한번 더 안 해서 속이 상하셨나? 물론 아줌마는 내 장비의 전력효율에 대해서 모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해당 매장도 내게 주문당 체류시간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았기에 결국 동등한 입장일 것이다.
이 모든 소동에 지쳐 잠시 다른 세상의 풍경을 떠올린다. 남국의 어느 도시, 한 카페에 들어가 한잔의 커피값을 내고 하루 종일 머물렀다.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직원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미소를 보냈다. 그들은 단순히 커피를 판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환대’를 기반으로 한 ‘경험’을 팔고 있었다. 그곳의 고객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 ‘공간의 손님’이었다. 더 적은 돈을 내고도 나는 존중받는 손님이 되었다. 그래서 난 매일 그곳에서 작업했다. 작업량이 많든 적든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더 많은 돈을 내고도 ‘계산해야 할 비용’ 혹은 ‘관리해야 할 리스크’가 될 뿐이다. 그동안의 나의 주문내역은 모두 삭제되고, 어제 단 하루의 일로 마치 음료 한잔에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있는 사람인 듯한 취급을 받게 되었다.
장기 체류가 당신에게 비용이라면, 단기 체류는 명백한 이익이다. 사업장에 안겨준 그 수많은 이익만큼,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공정한 거래 아닌가? 구매자와 판매자, 서로 간의 생각의 차이가 리스크로 느껴졌다면 주문당 체류시간을 명시하면 될 일이다. 뷔페처럼 운영하면 되지 않을까? 또한 그와 동시에 내가 주문하러 갔을 때 주문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는 숨겨두고, 주문은 주문대로 받아놓고 왜 진상취급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심지어 난 어제처럼 장시간 이용할 계획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이미 악덕고객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불균형한 시스템을 확인한 이상, 더 나은 가치 제안을 하는 브랜드 찾아 이 계약을 파기하고 떠나는 것은, 소비자의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마침 인근에 스타벅스도 생긴다고 하니 오히려 잘 된 일이 수도 있겠다.
오늘 이 불쾌한 경험 이후, 나는 본사의 방침이 궁금해서 주문당 체류시간에 대한 문의를 남겼다. 그리고 여전히 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전국 어디에나 있는, 하지만 일류는 아닌, 해당 카페&베이커리 브랜드 본사에 정중하게 다시 묻고 싶다.
주문당 체류시간은 얼마로 규정되어 있습니까?
빨리 나가주면 할인해 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