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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 Aug 24. 2022

게임에 대하여

라떼 시절의 바람의 나라와 동물의 숲 

한컴 타자 연습 대신 바람의 나라로 400타 달성한 그 시절의 나

나는 게임을 아주 어릴 때 부터 했다. 천리안 아이콘을 눌러야만 인터넷이 연결되던 시절, 집에 있는 뚱뚱한 컴퓨터에 유치원 친구 수정이에게 빌려온 바람의 나라 CD로 프로그램을 깐 것이 그 시작.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엔 바람의 나라가 유료게임이었다. 레벨 20까지만 무료로 플레이가 가능했고, 그 이상으로 레벨업을 하려면 전화요금에 부과되는 게임 접속 요금을 내야만 가능했다. 훗날 사람들의 당시를 떠올리며, 엄마 몰래 유료 정액제를 결제하고 신나게 플레이하다가 요금고지서로 걸려 짜그러지게 혼났다는 일화들을 많이들 얘기했다. 나는 그런 깡은 없었던 애라, 레벨 20까지만 키우고 버린 아이디가 수십개는 됐지만.


이후로 초등학교에 진학하고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게임을 했다. 메이저 게임도 하고 이름도 기억 안나는 인디게임들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의 나라가 무료화됐다. 바람의 나라에 향수를 느꼈지만 유료요금을 감당하기 싫었던(못했던) 사람들이 죄다 바람의 나라에 접속해 서버에 접근할 수 없었다. 나 또한 수시간을 대기를 타서 들어가, 이전엔 접근하지 못했던 수많은 맵과 아이템으로 이루어진 스토리라인에 대해 환상을 갖고 플레이를 재개했다. 

아무나 인사해도 대답해주고 놀아줬다

그런데 하면 할 수록 예전과 비교가 되고 재미가 없었다. 물론 많은 유저들이 빠져나가고 그래픽도 이것저것 바뀌긴했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즐거움을 느꼈던 본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90년대 말 ~ 00년대 극초반의 바람의나라는 일종의 인터넷 동호회 같은 느낌이어서, 사람들이 곧 잘 이야기를 나눴다. 바람의 나라에서 초보로 분류되는 레벨 20이 최대 수명인 아이디를 가진 사람들은 (유료 요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 게임 안에서 다음 단계로의 발전을 꾀하기 보단 게임의 주된 매커니즘에서 벗어난 활동, 하루종일 대화를 하고 친목질을 했다. 


사람들이 착한게 내가 7살이라고 해도 대화에 껴주고 그닥 험난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던게 기억난다. 내 동생은 한글도 모르던 애가 바람의 나라를 하면서 한글을 뗏고, 나는 넷상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는 반에서 타자가 가장 빠른 아이였다. 한컴타자연습에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칠 때엔 (그나이치곤)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어서, 컴퓨터 수업이나 타자 대회같은 건 걱정할 일도 없었다. 이러나 저러나 나를 이 수준까지 끌어올린 건, 게임의 본질에서 벗어난 즐거운 친목활동 덕이었다. 


크면서 게임에서 재미를 못 찾음

게임에 결말이 없어도 매 번 주어지는 과제가 있었고 소위 '만렙'을 찍기 위해서는 한창을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내가 그것에 흥미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던 게임플레이, 어쩌면 어렸을 때 부터 해오던 것이라는 의무감으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 않았으면 허전했으니깐. 그걸 깨달은 뒤론 서서히 게임에 관심이 없어졌고, 20대 후반인 지금도 관심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인생이 게임인데 뭘하냐고 농담도 던지게 됐지만, 사실 그냥 진짜 재미가 없어져버려서 안하는 것이다. 


결말을 보면 끝나버리는 게임이 싫고, 결말이 없어도 무조건 주어지는 퀘스트를 깨야만 나아가는 게임도 싫다. 랭킹을 매겨가며 남과 경쟁하는 게임은 더더욱 싫다. 이렇게 싫어하는 게 많으면 이 모든 것들을 벗어나는 게임은 거의 없다는 것을 눈치 채셨을지.


그냥 쉬는게 모토인 게임을 사랑한다

그런데 이런 나의 마음에도 쏙 들어온 게임이 있다. 닌텐도의 모여봐요 동물의 숲. 인턴 끝나고 무료해 하던 나에게 동생이 수차례 권했던 게임. 게임이 싫어서도 있지만, 과거 안좋은 기억에 플레이를 미뤄왔다. 2007년 즈음에 동물의 숲 시리즈가 발매된 후 공들여 플레이 했는데, 게임칩을 할머니 댁에 두고오는 일이 있었다. 덕분에 수개월 후에 다시 접속한 내 마을은 잡초밭으로 무성했고 엉망이 되어있어서 의욕을 잃고 플레이를 하지 않게됐다 (그 땐 오래 손대지 않아 망가진 마을을 뒤갈아 엎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역시 노가다는 싫어'라며 플레이 도전을 미루다가 좋아하는 블로거가 '게임 하면서 힐링한다'는 말에 아이디를 만들었다. 아무도 살지 않았던 무인도에 떨어져, 텐트속에서 생활하며 도구를 만들고 과일을 따고 나무를 베고 낚시를 했다. 거기서 나온 재료를 팔아 가구를 만들고, 마을을 꾸렸다. 살면서 실제로 '해볼 수도 있겠다' 싶은 것들을 게임에서 재현했다. 사계가 있고, 낮밤과 날씨도 있다. 어떤 경쟁도 하지 않고, 게임 내부에서도 어떤 목표를 정해주지도 않으며 경쟁요소는 하나도 없었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동물의 숲이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영상을 봤는데, 굉장히 일리있다고 생각했는지 그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어떤 과제에 도전하고 목표하는 바를  따내기 위한 과정에서 사용자가 얼마나 재미를 느끼느냐에 따라 개인마다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정의한다. 어쨋든 현재의 레벨에서 더 높은 무언가를 따내는 것, 그걸 통한 성취감과 몰입감이 게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물의 숲은 그런 목표가 없다 (있어봐야 집 증축하고 빚 갚기다). 그저 어떤 섬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목표이고 과정이다. 그러면 동물의 숲은 재미가 없는 게임인가? 누군가에게 그럴 수 있지만, 동물에 숲엔 다른 기능이 있다. 일반 게임에서는 몰입감을 위해 서사가 주어지고, 플레이어가 그 내용에 깊게 몰입하게 만들어 즐거움을 증폭시켜준다. 문제는 그 후다. 게임 서사의 결말, '목표'를 이루며 최초의 플레이가 끝나면 플레이어들이 허탈함을 느끼거나 그 이상으로 플레이할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


이런 부분에 있어서 플레이 자체가 목표가 되는, 이전의 다른 게임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나도 그랬다. 과거엔 게임을 하고나면 어찌됐든 몰입을 하게 되는데, 조금 피곤했다고 해야할 지. 물론 동물의 숲의 재미를 크게 느껴 하루에 몇시간이고 플레이할 때는 같은 피로를 느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또 이런 점을 바탕에 두니 아침엔 아이들이 하고 저녁엔 부모가 이어서 플레이 할 수 있는, 더불어 가족이 모두가 할 수 있는 쉬운 게임이라, '가족 게임의 같이 하는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도 동물의 숲의 순기능 중 하나다. 


다음이 기대되는 동물의 숲.. 

나는 가족들과 같이 동물의 숲을 하진 않아서 그 재미까진 모르겠지만,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게임을 하며 재미와 평안을 동시에 느꼈다. 바람의 나라를 하면서도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를 잡아 경험치를 올리고 다음 레벨로 넘어가는 것을 즐겼던 게 아닌 것 처럼, 넘어갈 다음 레벨도 없는 동물의 숲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특색이 있고, 가끔 원하면 마을 지형을 바꾸며 새로운 테마로 주변을 꾸며보기도 하고, 그저 마을 한바퀴 돌면서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게 좋다. 


아아 동물의 숲을 칭찬하는 내용을 쓰면서, 게임을 설명해둔 걸 텍스트로 확인하다보니 정말 재미없는 게임 같군요. 안 맞는 사람에겐 죽어도 안맞을 순 있겠지만, 틀에 박힌 일상을 좋아하고 꾸미기를 좋아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게임은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정경에 가끔 놀랄 때도 있어서, 얼른 다음 동물의 숲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VR로 나오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 내가 직접 나무도 베고, 가구도 만들고, 요리도하고.. 너무 운동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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