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헌법재판소에서 기후소송이 4월 23일에 있다. 22일까지 방청신청이 가능하다. 19일에 신청이 열렸다. 미국에선 행정부를 대상으로 각 주에 사는 청소년들이 기후소송을 제기했고 최근에 1심 승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행정부는 왜 기후재난에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느냐, 그걸 법원이 법을 지켜야 한다 선포하라는 소송이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기후소송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한 소송이 있었고, 사람들이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게 된 계기인 기후재난과 기후불평등을 차례로 브리핑했으나, 애매한 결과를 얻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헌법재판소는 서면심리를 보통 진행하나, 방청을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아마도 역사적인 기후재판이 되겠지, 어떤 판결이 나와도 그럴 것이다. 자본의 눈치를 봐도, 기후재난에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려도. 어떤 판결이 나도 역사적인 판결이 될 것이다.
지구의 날 행사가 20일에 있었고, 4월 19일부터 상업가동이 시작된 신규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 가동중단, 지역의 삶과 노동자의 정의로운 전환을 보장해야 한다는 행진, 신규석탄발전소가 지어진 지역에서 오염되기 시작한 맹방해변이 이전에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홍보했다. 한 개의 석탄발전소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1인이 평균적으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의 몇 백배로, 개인이 내뿜는 이산화탄소 양을 아무리 줄여도 감당할 수 없다. 게다가 한 번 대기중에 나온 이산화탄소가 대기중에서 다른 물질로 변환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더 이상 이산화탄소가 더 배출되는 것은 삶의 붕괴를 촉진하는 일이다.
삶의 전환은 우리의 문제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결정하는 일은 기업과 투자자들이 한다. 삶이 가장 먼저 망가지는 것은 물난리에 가장 먼저 물에 잠기는 사람들, 뜨거운 무더위에 열사병에 걸려 죽는 존재들, 혹은 인간들이 목소리를 듣지 않는 생명들, 기후재난에 당장 농작물 피해로 식량위기때문에 비싼 값에 식량을 구해야 하는 우리 자신이다. 이 의사결정의 불균등함을 비판하려 여러 사람들이 애쓰고 있다. 돈을 분배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부터 바꿔내야 하고. 싸우는 사람들 곁에 서야 한다. 그런 싸움을 우리의 싸움으로, 함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은 당원들이 각기 지역의 싸움으로만 싸운다. 마치 지금 시대의 논리처럼 각자도생의 싸움처럼, 우리의 싸움을 한다. 제주 제 2공항을 반대하고, 새만금신공항을 반대하고,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한다. 지역을 살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공항의 적자를 외면하는, 자본의 논리로도 설득할 수 없는, 토건사업만 배불리고, 전쟁위협만 높이는 공항건설에 반대한다.
진보정치, 진보운동의 문제를 내 문제로 내화하지 말자. 보수 양당과 똑같은 탄소세를 내세운 정책은 신자유주의에 영합했고, 차별점이 없었다. 지난 국회에서 보수양당은 기업의 눈치를 보며 소수정당이 발의한 탈석탄법을 이슈화하지 않고 그저 부결시켜 없애버렸다. 그때문에 작년, 올해 새로운 석탄발전소인 삼척블루파워가, 기후재난 와중에도 완공되고 신규가동된다. 2025년에 중단되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 우리는 대책을 만들 것이다. 공공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싸움을. 국가폭력을 경험한 밀양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공공재생에너지 싸움은 국가폭력을 용납하지 않는 싸움이어야 한다.
페미니즘을 지워서 선거를 이겼다고 자찬하는 보수 양당의 환호성을 비판한다. 재생산노동의 가치는 지우면서, 출산을 빚으로 매기는 정책과 사상을 비판한다.
머리로 하는 싸움은 소용이 없다. 삶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한다. 권력을 잡는 게 문제가 아니고,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그걸 공공성과 연결시키는 작업을 해야한다. 우리에겐 우리를 도울 제도와 그런 제도를 실현하는 문화와 사람들이 필요하다. 자본에 종속되어 자본을 배불리는 일을 오래 할 수는 없다. 자본을 위한 이윤추구 논리에 휩쓸려 나를 소모할 수는 없다. 이 틈새에서 나르시즘에 빠질 수는 없다.
나는 이 일에 너무 뒤늦게 뛰어든 후발주자이다. 그걸 함께하는 이들은 배려한다. 겁도 많고. 당장 실천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에 하자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당장 뭔가 하지 못해도, 알고 있는 것, 때를 기다리는 것. 스스로 비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스스로를 민주적으로 훈련하는 것. 시위에 참여하고, 캠페인을 기획하는 것. 그건 지금 나도 할 수 있다.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그걸 나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서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도가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 평등을 약속만으로 남겨두지 않는 것. 계속 평등한 관계인지 자문하고, 스스로의 의문을 가벼이 여기지 않을 것.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 자신에게도 비판이 열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요즘은 시시콜콜한 슬픔을 돌볼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그것이 서운하지 않는 것이 어린 날과 다르다. 그래도 아직도 어린 나를 잘 돌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나만 뒤쳐져 성숙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어서 슬퍼진다. 나 역시도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으니까.
밀양에 가기로 했다. 탈송전탑 이야기를 하러 가기로 했다. 지역을 식민화하는 현 상황을 어떻게 반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의 편이 될 것인가. 없는 자들의 편이 될 것이다. 식민화되는 존재들의 곁에 서서 싸우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오래 우리였으면 좋겠다. 나 역시도, 불안정한 지금 상황때문에 당신과 우리가 될 수 있어서 좋다. 앞으로도 계속 감당할 수 있기를.
당이 의석을 얻어 비판의 눈을 잃고, 보수화되면 탈당하여 다른 원외정당에 가겠다는 그분의 말씀이 생각났다. 아름다운 것을 본 죄로, 새들의 곁에서 새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https://youtu.be/JUY9b8H1obQ?si=0QfVQW8wVWlklMI9
밤하늘의 별들처럼 밝지 않아도
바람 부는 날의 촛불처럼 난 살아있네
이젠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맑지 않아도
흔들리는 날의 눈물처럼 삶은 흐르네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림 그리고
시를 쓰고 다시 노래하는 꿈을 꾸었네
그게 꿈이 아닌 현실으로 남진 않았어
누굴 원망하고 비난해도 소용이 없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오직 나만 아는 그 불빛이 나를 비추네
그래 나는 너무 어린 날 돌보지 않았어
더는 불가능한 길을 따라 달리고 있네
자유로운 영혼들은 길을 잃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을 잃었네
아직도 꺼지지 않는 불꽃을 피우려나
저기 먼 하늘 바다 땅이 나를 부르네
목소리가 있는 사람은 모두 이걸 말해야 해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초를 다투기 때문에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모두 귀 기울여야 해요
이것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들의 지금 이날 이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어떤 이유로 할 것인가
혹은 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거부하리 편리한 눈속임들을
거대한 자본들과 그들이 펼치는 논리를
소리쳐 분노하리 우리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그 마지막 세대임을 알고 있기에
우리들의 도시는 서서히 수몰될 것
거기에 있는 나의 가족과 친구의 집도
우리들의 낙원은 화마에 연소될 것
저 바닷속에 산호초가 백화 했듯이
허나 더 이상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들의 지금 이날 이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어떤 이유로 할 것인가
혹은 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감시하리 졸속과 무관심들을
거대한 세력들과 그들이 펼치는 상술을
소리쳐 분노하리 우리가 사람의 운명을 목도할
그 유일한 세대임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거부하리 편리한 눈속임들을
거대한 자본들과 그들이 펼치는 논리를
소리쳐 분노하리 우리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그 마지막 세대임을 알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