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 내가 가장 사랑해서 부모님께서 특별한 날이면 데려가곤 했던 식당의 이름이었다. 베네치아가 실제로 존재하는 도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듯싶다. 가족과 함께 했던 그 식당의 피자와 파스타를 떠올리며, 파리에서 베네치아로 향했다. 내가 베네치아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쯤이었다. 항구도시인만큼 공항에서 수상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고, 그림과 사진에서만 봤던 좁은 길들, 곤돌라 등을 실제로 보는 내 눈이 믿기지 않았다. 문제는 다음 날부터였다. 난 어렸을 때부터, 조류 공포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같이 다니기 불편한 존재였다. 내가 새를 무서워한다는 제일 처음의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과학"교과서에 나온 닭의 사진이 너무 무서웠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 닭장에 흰 닭이 여럿 있었는데, 난 그 앞에 가는 게 너무 싫었었고, 호주에 갔을 때, 실내에도 들어오는 비둘기들, 갈매기들이 너무 무서워 영어의 새 이름들을 잔뜩 공부했었던 기억이 있다. 비둘기가 무서워 돌아가고, 비둘기의 날갯짓에 깜짝 놀라고, 난 비둘기를 피해 살아가는 이었다. 그렇게 거의 기억만으로 15년 넘게 무서워하는 비둘기, 닭. 유럽은 비둘기의 천국이었다. 특히 베네치아는 태어나서 가장 많은 비둘기를 봤을 만큼, 어마어마한 셀 수 없는 수의 비둘기가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베네치아는 내게 유럽 중 가장 힘들었던 여행지였다. 베네치아를 뒤로하고, 피렌체를 향하는 기차를 탔을 때, 마음은 참 평안했다. 마치 KTX를 타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피렌체에 도착했다. 피렌체는 유럽 여행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도시였다. 기차역에서 내려 숙소도 가까웠고, 두 우모 성당, 가죽 시장을 포함한 모든 유명 관광지를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베네치아의 좁은 거리에 비해 널찍한 도로도 좋았고, 맛본 티본스테이크는 인생 스테이크로 등극했다. 원래 1박 2일의 피렌체 일정이었지만, 피렌체를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다음 여행지인 로마를 안 하고, 피렌체에서 하룻밤을 더 묶는 돌발적인 행동을 할 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덕분에 로마는 2~3시간만 잠시 경유할 만큼, 갔지만 가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로마에서 마드리드까지 비행기를 타고 갔다.
마드리드는 다른 곳 보다 오래 있었는데, 마드리드 근교에 있는 백설 공주의 성을 찾아 세고비아를 갔다. 스페인 음식을 너무 사랑했는데, 마음껏 빠에야, 타파스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솔 광장 근처로 숙소 위치를 잡았는데,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술집도 운영을 해서 꼭 한국에 온 듯한 분위기였다. 레알 마드리드 경기장을 갔는데, 비록 일정이 안 맞아 경기는 못 봤지만, 축구를 더더욱 사랑하는 계기가 되었다. 꽃보다 할배에 나온 식당을 갔는데, 한국 노래를 연주해주셨다. 싸고 맛있는 상 그리야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을 수 있다니, 역시 스페인의 미식의 나라였다. 기차를 타고 마드리드서 세비야에 갔다. 무엇보다 플라멩코의 본고장인 세비야에서의 공연은 예술이었다. 세비야에서는 투어버스를 타고 이동했었는데, 예쁜 강변도로, 건축물도, 공원도 참 따스했다. 세비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로 갔다. 아침 일찍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고, 저녁에 뉴욕행 비행기를 탔다.
짧고도 긴 10일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처음 유럽 대륙에 발을 닿는 소중한 봄 방학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유익하게 쓴 봄방학이었다고 생각한다. 유럽에 다녀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언제쯤 유럽에 갈 수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예상보다 기회가 빨리 왔었던 듯싶다. 유럽에 아예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말처럼 또 가고 싶은 참 매력적인 곳임에 틀림없다. 봄 방학이 끝난 학교생활은 참 바빴지만, 유럽에서의 여행은 내게 큰 힐링을 가져다준 것이 틀림없었다. 끊임없는 필드트립, 과제들 그리고 지도 교수님과 함께하는 스카이프 미팅. 그래도 다행인 것은 깜깜하고 어두운 동굴 속 같았던 두 번째 학기의 끝이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