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을 쫓은 나이키, 대중을 잃다 - FanCase12

팬덤의 지지 위에 대중의 보편성을 쌓아 올리는 균형 감각

by 박찬우

2025년 12월 28일, 영국 가디언이 이례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거의 붕괴 직전: 한국 영화 위기의 이면, K팝이 예외가 아닌 이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국 문화 산업이 정작 국내에서는 구조적 위기에 빠져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K팝 섹션에서 가디언이 지목한 핵심 원인은 흥미롭습니다. 애리조나주립대 정아름 교수의 진단입니다. "K팝 기획사들은 핵심 팬덤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편협한 시각이 아이돌의 선발, 훈련, 마케팅 방식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며 "하지만 이 접근 방식이 BTS나 블랙핑크처럼 대중을 사로잡는 글로벌 현상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숫자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2024년 K팝 실물 앨범 판매량은 19.5% 감소해 10년 만의 첫 하락을 기록했습니다. 2025년 상반기 국내 디지털 차트 Top 10의 7자리는 '글로벌 인지도는 없지만 한국 대중에게 편안한' 솔로 아티스트들이 채웠습니다. 팬덤을 위한 아이돌 콘텐츠가 정교해지는 동안, 대중은 조용히 차트에서 떠났습니다.


기획사들은 팬덤을 정밀하게 공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팬사인회 응모권, 포토카드 랜덤 삽입, 멤버십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헤비 팬덤의 반복 구매를 극대화했습니다. 그러나 그 구조가 정교해질수록 팬덤 바깥의 일반 대중과의 거리는 벌어졌습니다. BTS와 블랙핑크가 만들어낸 황금기는 팬덤과 대중이 동시에 열광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K팝은 팬덤만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FanCase의 출발점입니다. 핵심 팬덤을 쫓는 전략이 대중을 잃는 역설. K팝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한 이 현상은, 스포츠 브랜드 시장에서 훨씬 더 극적인 방식으로 이미 발생했습니다. 그 중심에 나이키가 있습니다.


나이키의 DTC 집착과 대중의 이탈


충성 고객을 위한 전략이 대중을 밀어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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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나이키는 과감한 선언을 했습니다. 빅5 스포팅굿즈, DSW, 메이시스, 어반 아웃피터스 등 수십 개의 도매 파트너를 정리하고 DTC(Direct-to-Consumer) 전략으로 전면 전환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키 앱과 멤버십으로 충성 고객을 직접 연결하고, 그들의 데이터를 확보해 브랜드를 더 정교하게 키우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초반의 수치는 이 전략을 정당화했습니다. 수천만 명의 신규 멤버를 확보했고, 직접 채널에서 누적 120억 달러 이상의 추가 매출이 발생했습니다. 멤버십 앱의 인게이지먼트 지표는 높았고, 충성 팬덤은 열광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나이키 본사의 피드는 성공 신호들로 가득했습니다.


문제는 그 피드가 팬덤의 피드였다는 점입니다.


앱 바깥에 있던 대중


실제 대중은 나이키 앱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냥 운동화가 필요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멀티스포츠 매장에 가서 진열된 신발들을 비교하고, 발에 맞는 걸 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매장에서 나이키의 선택지가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나이키가 도매 채널을 정리하는 동안, 그 빈 선반을 호카(HOKA)와 온(On)이 채웠습니다.


결과는 냉혹했습니다. 나이키 FY2025 연간 매출은 전년 대비 10% 감소해 463억 달러로 줄었습니다. 나이키 다이렉트 매출은 13%, 디지털 매출은 20% 이상 하락했습니다. 10년 만의 최악의 침체였습니다. 팬덤 채널을 키우는 사이 대중 채널을 잃었고, 그 대중을 경쟁자들이 가져간 것입니다.



나이키의 마이너스 10%와 호카의 플러스 34% 사이에는 거대한 유통의 진공상태가 존재합니다. 나이키가 팬덤과의 '깊은 관계(DTC)'에 취해 있는 동안, 경쟁사들은 대중과의 '넓은 접점(Wholesale)'을 장악했습니다. 팬덤은 브랜드를 멋지게 만들지만, 브랜드를 거대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매일 아침 매장에 들르는 평범한 대중의 선택입니다.


나이키의 자기 진단은 냉정했습니다. CFO 매튜 프렌드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멀티브랜드 리테일에서 쇼핑하고 있다. 우리는 그 현장에서 브랜드 위상을 높이고 새로운 혁신 제품의 최대 효과를 내야 한다"고 공개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정리했던 DSW, 메이시스와의 파트너십을 조용히 재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나이키는 이 함정에 빠졌나


나이키 내부에서 DTC 전략을 밀어붙인 근거는 명확했을 것입니다. 앱 인게이지먼트 데이터, 멤버십 구매 전환율, 충성 고객의 높은 재구매율. 이 수치들은 전략이 옳다는 강력한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데이터는 모두 팬덤의 데이터였습니다. 이미 나이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측정한 것입니다. 나이키를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그냥 좋은 운동화를 원하는 수억 명의 대중은 이 데이터 어디에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나이키는 팬덤 온도계를 시장 온도계로 착각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이키가 데이터를 '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이키는 방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했느냐였습니다. 팬덤이 만들어내는 고밀도의 반응 데이터를, 마치 시장 전체의 목소리인 양 읽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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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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