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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2025):가디언즈 오브 더 슈퍼맨

사실을 바로 잡을 때에는 맥락을 설명하라

by 박찬우

첫 영화 관람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단체 관람으로 본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였습니다. 이후 아버지께서 국내 처음 출시된 VHS 비디오 플레이어를 집에 들여놓으시면서, 저는 자연스럽게 영덕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8편의 비디오를 시청한 적도, 극장에서 종일 5편의 영화를 본 적도... 영화광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 더 자세한 증명은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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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가 영덕임을 이야기 꺼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앞으로의 연재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영화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미 세상에는 수많은 영화와 영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데, 제가 또 다른 목소리를 보탤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만의 차별화된 관점을 찾기 위해 고심했고, 제 직업이 마케터인 만큼 마케터의 시각에서 영화를 이야기해 보기로 결론지었습니다.


이름하야 '마케터와 영화',

영화를 보면서 마케터로서 얻은 인사이트를 정리해 재미있게 연재해 보겠습니다.




제임스 건의 슈퍼맨(Superman, 2025)


첫 번째로 이야기해 볼 영화는 현재 국내에서 개봉 후 호불호가 갈려 논쟁 중인 제임스 건의 슈퍼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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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임스 건의 슈퍼맨'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눈치채신 분들도 계실 텐데, 맞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대해 불호입니다.

마블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성공시킨 제임스 건이 DC의 새로운 수장으로 자리를 옮겨 시도하는 DC 유니버스 리부트의 첫 번째 실사 영화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던 것일까요? 아니면 이제는 정말로 슈퍼맨 시리즈의 성공적인 리부트에 대한 간절함이 커서였을까요? 어쨌든 기대는 컸고, 그에 비례해 실망도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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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슈퍼맨의 팬으로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슈퍼맨이 악당에게 얻어맞고 다른 캐릭터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버텨내는 모습에서는 제가 알고 사랑했던 강인한 슈퍼맨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 영웅이었던 슈퍼맨을 조롱하는 듯한 불쾌함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에서 제다이가 누구나 될 수 있고 어디에나 있으며, 제자의 능력을 시기하는 옹졸한 모습으로 격하된 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지막 결투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낼 듯한 표정을 짓더니 슈퍼독 크립토의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휘파람을 부는 장면을 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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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건 특유의 유머 남발, 제대로 된 소개도 없이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움, 무엇보다 통쾌한 승리의 부재 등 다른 문제점들은 무능력하게 그려진 슈퍼맨 때문에 언급조차 자제하겠습니다. 이미 영화 중반쯤에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으니까요.


<슈퍼맨>이 아니라 모자란 슈퍼맨을 수호하는 <가디언즈 오브 더 슈퍼맨>으로 기억되겠네요.


슈퍼맨은 이게 오리지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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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백번 양보해서 고민은 이해합니다. 천하무적의 강철의 사나이 시리즈는 여러 번 리부트 되었고 최근 성적은 회복 불가능인 상태에서 DC의 완전히 새로운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점으로 다시 슈퍼맨 이야기를 재 정비할 필요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이미지와는 다른 대중들의 눈길을 끌어모을 차별점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제임스 건이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슈퍼맨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슈퍼맨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지난 몇 년간 정말 훌륭한 슈퍼맨 영화가 있었지만, 제가 어린 시절 만화를 읽으며 경험한 바를 반영하는 슈퍼맨 영화는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만화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서너 살 쯤이었어요. 만화를 통해 읽는 법을 배웠죠. 슈퍼맨이 우주선에 착륙하는, 인간 무리 속에 홀로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어요. 슈퍼맨에게 슈퍼히어로 친구들이 있고, 슈퍼맨 가족이 있는 세상, 로봇과 거대 괴물, 그리고 날아다니는 개, 그리고 마치 마법처럼 느껴지는 극단적인 기술이 있는 세상을 보고 있었던 거죠. 그 세계를 스크린으로 옮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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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슈퍼악당을 물리치는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과 어둡고 고뇌에 찬 잭스나이더의 슈퍼맨을 이렇듯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전면적으로 바꾸었다면 좀 더 기존 슈퍼맨의 팬들에게 설명이 필요합니다. 단지 슈퍼맨의 감독으로서가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DCU를 위해서라도.


그런데 영화 커뮤니티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퍼지고 있네요. '사실 슈퍼맨은 이번 영화가 제대로 표현한 거야, DC코믹스를 기준으로 본다면 이번 제임스 건의 슈퍼맨이 오리지널이야.'


위험합니다. 설령 팬들이 제대로 제임스 건의 의도를 몰랐다 치더라도 그들의 잘못은 아닙니다. 또한 커뮤니티의 이야기는 자칫 'DC코믹스의 슈퍼맨을 본 적이 없으면 넌 진정한 슈퍼맨의 팬이 아니야'라는 식으로 전달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고객이 우리의 의도를 오해할 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사실을 바로 잡을 때에는 맥락을 설명하라


'OOO 피자에 속았다'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의 피자 사진과 실제 배달된 피자가 너무 다르다는 부정적 의견이 담긴 리뷰가 주말 사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신제품 출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월요일 오전, 비상회의가 열리고 고객의 의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홈페이지의 피자 사진은 신상품 홍보를 위한 연출 사진으로 토핑이 강조되어 촬영된 것이고, 실제 배달된 피자는 배달 과정에서 충격에 의해 토핑이 분리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토핑 위에 치즈를 얹어 고정하는 방식으로 요리하는 과정 때문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고객 리뷰에 응답하기로 했습니다.


공식 블로그에 사과와 해명의 포스트를 발행하고 아고라에 댓글을 달아 링크로 연결했습니다. 포스트의 내용은 홈페이지 사진과 다른 피자를 배달받았을 때의 실망감에 대한 공감을 시작으로 실제 차이에 대한 인정, 그리고 차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촬영장에 사용된 피자의 제조 방법과 실제 배달되는 제품의 제조 방법을 자세히 과정별로 비교하여 영상과 사진으로 공개했습니다.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음을 밝혔고, 결국 제조 방법의 차이일 뿐 토핑의 양은 차이가 없음을 추가로 알렸습니다. 이후 홈페이지 제품 설명에도 내용을 정리하여 오해가 생기지 않게 조치했음을 알렸고, 추가 조치로 무료 쿠폰을 보내드리기로 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해당 고객은 응답에 만족했는지 아고라에서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고, 지켜보던 관중들은 이야기를 응답과 함께 확산시켰습니다. 기업은 부정적 입소문의 확산을 이로써 막을 수 있었고, 분위기는 역전되어 신메뉴의 인기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종종 기업들이 잘못 알려진 루머를 바로잡을 때 '이것이 팩트이다'라며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같은 톤 앤 매너로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야, 이것이 팩트야'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루머와 그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면서 말입니다. 이것은 비효과적이며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소셜 웹이라는 공간에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는 어투는 많은 사람들의 불쾌감과 도전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9개국 500여 명의 글로벌 팩트체커들이 참여해 탈진실 시대 속에서 어떻게 거짓 정보들과 싸워왔는지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글로벌팩트 9'에서 "진정한 팩트체크를 위해선 단순히 객관적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건의 맥락을 확인하고 서사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일반 시민들이나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팩트체커들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당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심층취재하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로 엮어내는 능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제언했습니다. 기업도 사실을 바로잡을 때 유효한 방법입니다.


슈퍼맨도 'DC코믹스에서 슈퍼맨의 세계관'과 제임스 건의 B급 유머코드를 강철의 사나이의 영웅 슈퍼맨으로 추앙하는 시네마스코프의 슈퍼맨팬들을 맥락적으로 설득하는 빌드업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 평가는요...


예상대로 DC코믹스 슈퍼맨에도 익숙한 북미팬들에게는 굉장한 흥행을 이끌어 냈습니다. 하지만 북미를 제외한 다른 곳은? 뭐 지켜보죠. 흥행과 상관없이 제 평가는 여전히 불호이고요, (사실 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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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공이어도 상관없는 공룡공장이 되어버렸다는 <쥬라기월드 : 새로운 시작>보다는 못하고요, 철없는 레드헐크의 금쪽 상담이 실소를 자아냈던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 월드> 보다는 재밌습니다.


지금까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이었습니다. 다음에 다른 영화로 또 이야기 이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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