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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 시대, 한 번의 불일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트리플미디어, 옴니채널, 신뢰의 관계 접점을 쌓아가는 법

by 박찬우
인터넷 속도를 1기가 바이트로 업그레이드해 드릴게요

며칠 전 사용 중인 인터넷 서비스 회사의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메시지의 요점은 인터넷 서비스를 장기간 사용한 우수고객을 대상으로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속도를 무료로 1기가 바이트로 업그레이드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수고객으로서 혜택이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AS 기사님의 방문 확인 전화가 왔을 때 인터넷 서비스를 설치했을 때 기억이 떠 올라 "이전 기사님이 지금 사무실 건물이 1기가 바이트 인터넷 서비스를 설치할 수 없는 환경이라 했었는데 그 사이에 환경이 개선되었나 보죠?"라고 물었습니다. AS 기사님은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는 " 아 거기 OOO 오피스텔이죠? 아 거긴 1기가 바이트 설치가 안되는데... 하, 고객님 죄송한데 오늘 설치는 어렵겠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 외출도 안 하고 인터넷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 확인도 안 해보시고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제안하셨나요? " 퉁명스럽게 다시 질문하자 "본사가 하는 일이 그래요. 본사에서 혹시라도 다시 연락이 오면 1기가 바이트 설치가 안된다고 말해주세요."


본사 고객센터와 AS 기사 사이의 불일치를 경험한 이 해프닝 이후로 국내 굴지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 대한 내 신뢰는 무너졌고, 서비스 품질에 대한 실망도 커졌습니다.


행동으로, 경험으로 증명하라


지금까지 <가짜뉴스, 탈진실 시대의 마케팅> 연재를 통해 우리는 객관적 사실이 힘을 잃고, 감정과 신념이 여론을 지배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의 현상과 위기를 분석했습니다. 정보 혼란자들이 알고리즘을 무기화하고, 소비자들은 '사실'보다 '믿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는 이 시대에 브랜드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가짜뉴스, 탈진실 시대의 마케팅>이 궁금하시다면


IBM 기업가치연구소의 2020년과 2024년 소비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객의 3분의 2가 브랜드를 선택할 때 신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브랜드에 대한 불신은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이 역설적 상황이 바로 탈진실 시대의 핵심 특징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브랜드가 아무리 "우리 제품은 안전합니다", "우리는 정직한 기업입니다"라고 외쳐도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더 큰 의심을 살뿐입니다. 왜일까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장이 아니라 경험으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객을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진정성'을 기반으로 일관되게 실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고객과의 모든 접점을 신뢰의 기회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한 번의 불일치가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브랜드의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며, 그 파급력은 브랜드의 존폐를 결정합니다. 여러 브랜딩 실패 사례들은 공통적으로 '브랜드가 고객에게 한 약속(가치)'과 '고객이 실제로 겪은 경험(운영)' 사이의 치명적인 괴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유아용품 브랜드 '카이트베이비(Kyte Baby)'의 사례는 브랜드 가치와 실제 운영의 불일치가 어떻게 신뢰를 파괴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브랜드는 "육아 친화적 기업 문화"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부모 고객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표현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는 일과 육아의 균형, 부모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는 콘텐츠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2024년 1월, 한 직원이 NICU(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입원한 아기를 돌보기 위해 원격근무를 요청했을 때 회사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거부 이유가 "정책상 불가능"이라는 형식적 답변이었다는 점입니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원격근무 인프라가 이미 구축되어 있었고, 다른 직원들은 비슷한 상황에서 승인을 받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 소식이 SNS에 퍼지자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강조하던 육아 친화가 마케팅용이었나요?" "우리 아기를 위한 제품을 만들면서, 정작 직원의 아기는 신경 쓰지 않는군요." 브랜드가 쌓아온 '공감'과 '진정성'의 이미지는 단 하나의 인사 결정으로 무너졌습니다.


BMW 사례는 2024년 초 틱톡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프리미엄 브랜드가 어떻게 한순간의 경솔한 판단으로 신뢰를 잃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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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esamteesa(리사 티사, 본명 테레사 존슨)는 '엽기적인 전 남편 이야기(Who TF Did I Marry)' 시리즈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유명 틱톡커입니다. 그녀는 '새 차를 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전 남편을 비판하는 영상을 올렸고, BMW 브랜드 공식 계정이 이 영상에 댓글 영상을 달았습니다. 내용은 BMW X5 신차를 선물하겠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BMW 대박!", "이게 진짜 프리미엄이지", "약속 안 지킨 전 남편은 보고 있나?" 같은 댓글들이 쏟아졌습니다. 리사 티사의 팔로워들은 BMW의 제스처에 열광했고, 수백만 명이 이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BMW 입장에서는 광고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엄청난 브랜드 호감을 얻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BMW의 댓글 영상이 조용히 삭제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설명도 없었습니다. 리사 티사는 후일담에서 "결국 차를 받지 못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이 더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타이밍이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 텀블러 브랜드 스탠리는 차량 화재에서도 멀쩡하게 살아남은 텀블러를 보여준 틱톡커에게 실제로 신차를 선물했습니다. 약속하고 실제로 이행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아직 사람들 기억에 생생한 상황에서 BMW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것입니다.


결정타는 현대자동차였습니다. 현대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리사 티사에게 자사 자동차를 1년 무료 대여해 주었습니다. BMW가 공개적으로 약속처럼 보이는 제스처를 했다가 슬그머니 삭제한 바로 그 자리를, 경쟁 브랜드가 실제 행동으로 채운 것입니다.


이런 불일치는 왜 반복될까요? 조직 구조에 답이 있습니다. 마케팅 팀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CS 팀은 '처리 시간 단축'에, 인사팀은 '비용 절감'에 각각 다른 KPI로 움직입니다. 본사 마케팅이 '친환경'을 외칠 때, 구매팀은 가장 저렴한 포장재를 선택하고, 물류팀은 빠른 배송을 위해 과대 포장을 선택합니다. 정보는 단절되고, 책임은 분산되며, 결과적으로 고객은 서로 모순되는 메시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닙니다. 조직 사일로(Silo)가 만든 구조적 문제입니다. 탈진실 시대 고객들은 이 균열을 정확히 포착하고, '의도적 기만'으로 해석합니다.


이 사례들이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탈진실 시대에 고객들은 브랜드의 '진정성'을 믿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은 마케팅 슬로건이 아니라, 인사 정책, 성분 공개, CS 응대 등 기업 '운영' 그 자체에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9가지 채널에서의 일관성


세일즈포스(Salesforce)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고객은 브랜드와 소통할 때 9개의 서로 다른 채널을 사용합니다. 온라인 광고를 보고, 네이버 블로그 리뷰를 검색하며, 유튜브 언박싱을 시청하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실사용자 의견을 묻습니다. 그리고 매장에 직접 가서 직원의 태도를 관찰하고, 배송 과정을 추적하며, A/S 응대를 경험합니다.


이 9개 접점 중 브랜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몇 개일까요? 그리고 각 접점에서 브랜드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일치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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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중심 관점과 디지털 크라우드 컬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기업의 디지털 마케팅 전략과 브랜드 팬덤 구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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