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기 위해

프롤로그

by 허씨씨s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그토록 소중하니까.

필요하지 않다면 체념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깊이 살고, 삶의 골수를 모조리 빨아먹고 싶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논어』에 따르면 30세는 이립(而立)으로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고 한다. 그러나 만 나이로 서른넷을 앞둔 나는 아직도 여러모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온 건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건지 생각하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어지럽더라도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잘 살아야 한다. 어찌 됐든 단 한 번뿐인 삶이니까 말이다.


무엇이 잘 사는 것일까. 삶의 좋고 나쁨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지닌 가치관과 기준, 신념 등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 해를 끼치거나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닌 한 삶을 대하는 모든 방식과 관점, 태도 등은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점이다. 마치 '사람'이라는 단어를 줄인 것인 양 '삶'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들로 이루어진다. 그 안에서 나의 작은 말과 행동은 쉽게 타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때로는 뜻하지 않게 상처나 피해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내 생각에 잘 사는 것은 일단은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내가 속한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타인과의 마찰과 갈등을 각오해야만 하는 경우도 존재하니까.

올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조건 남을 배려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를 지켜가면서 그 범위 안에서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관건은 그 경계를 잘 헤아리는 일이다. 즉, 올바른 삶이란 나다움이라는 토대 위에서 성립 가능하다.


내가 나일 때 삶이 삶일 수 있다.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나와 타인, 세상과의 경계를 어떻게 세워야 할까. 이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매 순간 변한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삶과 스스로를 성찰하고 배워나가며 성장해나가야만 한다.

세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 삶은 무너진다. 무너짐은 방황으로 이어진다. 방황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는 신호다. 서른넷에 이르러 나는 다시 방황을 시작한다. 나를 다시 세우고자 한다. 그 종착점에 무엇이 있을지, 애초에 끝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삶이 아닌 것을 살지 않기 위해, 삶의 골수를 끝까지 빨아먹으며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