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도피 속으로
영화를 좋아한다. 내가 살지 않은 삶과 이야기를 통해 재미와 감동, 교훈 등을 함께 얻을 수 있고, 뛰어난 배우의 연기 그리고 세련된 시각적 연출이나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이 더해질 때 다가오는 감정적 효과를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시리즈물 보다 영화가 더 좋은 것은 길어야 3시간이 되는 시간 안에 이야기의 끝맺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름의 경제성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나는 대부분의 좋은 이야기가 장편 영화 한 편 분량에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편의 영화를 보면 단순히 그 영화를 보는 것에 끝나지 않고,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퍼펙트 데이즈>를 보며 슬픔과 행복이 공존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을 보며 내가 겪었던 사랑에 대해 다시 떠올린다. 최근에 본 <여행과 나날>을 통해서는 여행과 삶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삶은 저마다의 이야기고 한 편의 영화다. 모두가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와 영화 속에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며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누구나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순간순간 선택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잘 만들어진 이야기를 찾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삶에서 중요한 대상이나 가치들을 돌아보게 되고, 현생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때로는 영화 속의 삶과 이야기를 온전히 느끼고만 싶기도 하다. 지금 내 삶에 가져다 줄 영향이나 교훈과 상관없이, 내가 아닌 삶을 영화 속에서라도 온전히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금의 삶이 더 풍요롭고 다채롭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것은 단순히 현실 도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유가 된다면 그저 화면에 흘러나오는 영화 속에서만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 도망이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