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이 어떻게 살까?
8시가 좀 넘어가는 시간.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뭔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화가 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야! 큰일 났다. 전기가 안 들어온다."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큰 추위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아직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는 겨울이고 보니 큰 일은 큰일이었다. 팔순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연탄불도 갈며 시골 주택을 관리하고 계시지만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자꾸 고장이 난다. 마당가 수도가 얼어서 솟구치던 물이 얼었고, 보일러 플라스틱 보조 물통이 깨졌다. 이 겨울만 지나면 시장과 병원이 가까운 연립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던 중이라 다른 때보다 더 조마조마하게 겨울을 보내던 참이었다.
"걱정 마세요. 고장신고를 하고 갈 테니, 위험하니까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세요."
내가 간다고 해도 눈으로 봐서 알 수 있는 고장도 아닐뿐더러 당장 고칠 수 없게 뻔했다.
전기고장 신고 123번을 눌렀더니 뭐라 뭐라 안내를 하더니 간신히 사람과 통화가 되었다. 그런데 기초생활수급대상자, 국가 유공자 등등이 아니면 공사업체에 수리를 맡겨야 한다며 공사업체가 소개된 사이트 주소를 문자로 보내줬다. 통화가 끝나고 검색되는 순서대로 업체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영업이 종료된 후라 당장 수리가 가능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전화를 해서 지금 수리가 가능한 곳이 없으니 응급조치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안된단다. 전기를 구매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날씨가 춥고, 무엇보다도 고치고 싶어도 못 고치는 상황라고 항변을 했지만 '죄송하다'는 말만 돌아왔다.
당장 어찌할 수없다는 무력감에 치솟는 욕을 부르는 감정을 가까스로 참았다. 산업안전보건법 몇 조 몇 항의 처벌이 아니라 단지 시스템이 문제라는 너그러운 생각으로 꾹꾹 눌러 참았다.
밝은 전등 빛만 보다가 캄캄한 어둠 속에 한들거리는 촛불을 보니 더 위태롭게 느껴졌다. 플래시로 혹시 물이 새는 곳이 없나 살폈지만 찾을 수 없었고, 차단기를 차례로 하나씩 올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전기가 고장 날 것에 대비하는 담당인력이 부족하면 휴일이나 명절 연휴에 당번약국처럼 순번을 정해서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도 있으면 화가 좀 덜 났을 텐데. 어디다 건의라도 해봐야겠다.
다음날 아침 전업사에 연락을 했더니 사람들이 현장에 나가 지금은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많았는데, 그중 어느 한 업체에서 한전에 고장신고를 해서 어디가 원인인지를 파악하는 게 빠르다고 귀띔을 했다. 전봇대의 퓨즈가 나간 것 같다고 고장신고를 했더니 어제와 다르게 곧 나와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30여 분 만에 한전 직원이 도착했고, 어이없게도 전봇대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전선이 끊어진 것이었다. 간단히 조치가 끝나고 잃었던 빛을 되찾았다.
한 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전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블랙아웃'을 걱정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세상에 전기가 없다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아마도 가장 큰 재난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해외여행 가려고 탑승 수속을 할 때 전산마비 대비 훈련이라며 수기로 절차를 진행하는데 불편하고 시간도 오래 걸렸던 적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아주아주 작은 것 중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문명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 특히 전기 문명에 지독히 중독되어 있다. 하지만 그 증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잠시 고장 날 수도 있는데 언제나 완벽해 아만 하는 것으로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잠시의 불편도 이해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게 아닌가.
요즘 유행하는 캠핑에 대한 생각도 했다. 문명의 혜택을 최소한으로 덜 받는 생활로 가끔 그 소중함을 깨워야 하는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