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일어나는 곳

영화 같은 현실인가, 현실 같은 영화인가

by 벽우 김영래

바램은 빈 곳을 파고든다. 희망하는 것들은 항상 내게 없는 것에서 출발한다. 가득한 곳에서는 찾을 필요가 없는 당연함 때문이다. 달콤한 사랑을 하고 있다면 기적 같은 사랑을 기다릴 이유가 없고, 창고 가득 재물이 있으면 다른 바램이 생겨나듯.

영화는 현실을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지만 가끔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의 이야기가 회자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영화나 현실이나 내가 감당하기 힘들 만큼 가슴 벅찬 기적이 일어나는 건 사람 사는 세상의 보통의 일일지도 모른다.


황정민, 한혜진 주연의 <남자가 사랑할 때>와 카메론 디아즈, 케이트 윈슬렛 등이 주연한 <로맨틱 홀리데이>. 두 편의 영화를 봤다. 평범한 일상이거나 상처 받고 힘든 현실에 기적 같은 사랑이 찾아오는 패턴.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일이긴 하지만 실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내게도 이런 사랑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더 크다.


사채업자 한태일과 은행원 주호정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랑은 집요한 의지와 태산 같은 현실을 짊어진 삶 앞에서 찾아온다. 그러고 보면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세상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랑'은 없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없다. 사람이 만든 말일뿐이다. 규범이랄까 뭐 땅에 막대기로 그어 놓은 선 같은 것이어서 넘는다고 큰일이 나는 건 절대 아니다. 항상 가능성은 열려있다. 그래서 태일의 진심과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가 사랑의 감정을 막을 수 없다.

영화 예고편 제작회사 사장 아만다와 웨딩 칼럼니스트 아이리스 역시 남자 친구들로부터 상처 받는 현실에서 '홈 익스체인지'를 통해 여행 같은 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따뜻하고 다정한 그레엄과 마일스라는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남자가 사랑할 때.jpeg

영화를 보면서 현실에서 전혀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희박한 가능성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상상하고, 심지어 기다린다. 뻔한 것은 현실이지 영화가 아니니까. 그래서 보조기에 의지해 집 앞을 지나고, 길 잃은 노인을 집으로 바래다주는 우연이 유명 시나리오 작가 아더와의 만남으로 이끌어 준다.

<남자가 사랑할 때>는 슬픈 상황에 큰 슬픔을 더해 관객을 그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사랑을 향한 바램과 기대 섞인 마지막 배팅 그리고 쓰라린 배신에 쓰러진 태일과 평범한 일상에 젖는 꿈을 가진 호정에게는 이별이라는 슬픔이 드리우지만 시한부 삶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이별의 슬픔이 더해진다. 슬픔 더하기 슬픔이 주말 드라마 같은 분위기의 맬로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따뜻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잃었던 사랑을 다시 찾는 기적 같은 일들이 한 번으론 부족해 따로 또 같이 일어나는 <로맨틱 홀리데이>는 설렘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나도 저런 기적을 만났으며.

로맨틱 홀리데이.jpeg

매일 아침 같은 길과 같은 장소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삶 앞에 다소곳하고 순종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항상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상상의 기적이 일어나는 놀이터다. 광고가 끝나고 잠시 어둠에 갇혀다 풀려나는 듯 찾아오는 첫 장면의 설렘은 두 시간의 인생을 맛보는 기회를 준다.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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