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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Apr 19. 2024

시드니(SYD) 여행, 그 이후

호주 여행 에필로그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7시 59분. 

  8시 마감인 호텔 조식시간을 놓쳤다!

  하지만 더 이상 조식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다. 여행은 끝났으니까. 

  침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여느 때처럼 아침 준비를 한다. 


  여행지에서의 아침 식사. 스크램블과 콩 수프, 짠 베이컨 두 조각, 소시지 1개와 식빵 두 장, 시리얼 약간 넣은 요거트로 마무리하는 식사 한 접시.  입가심으로 과일 몇 조각이면 끝난다. 그리고 일어나면 그만이다. 설거지는 누군가의 수고로 깔끔이 리필되는 마법이 여행 내내 계속된다.

  여행지에서의 생활공간. 

  제 역할을 마치고 장렬하게 널브러진 수건과 젖은 낙엽처럼 한 바탕 신경질 나는 싸움을 해야만 하는 세면대 위의 머리카락이 따위는 그냥 지나쳐도 된다. 베개와 이부자리는 잠자리 모양에서 사람만 빠져나온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져있어도 내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다는 사실이 신통하다. 이것 또한 여행의 힘이다. 


  피곤을 전장의 군사처럼 짊어지고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새 하얀 청결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숙련된 가지런한 정렬이 조용히 환대하는 침대에 쓰러지듯 벌러덩 눕는 호사를 누리는 그런 여행의 시간. 

  

  그것들이 참 그리워지는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의 아침.

  

  그런데 이상한 건 있다. 리필처럼 반복 제공되던 편의가 그립기는 한데 내 집처럼 맘껏 편하지는 않았다. 뭔지 모르게 긴장했고, 마음 한편이 조심스러워 불편하기도 했다. 내 몫의 상차림과 청소와 정리가 필요하지만 내 집이 더 안락하고 좋다. 축 늘어진 체육복에 간 내가 약간 베인 솔기가 낡아 떨어진 옷이 편한 이유가 답이 될 수 있으려나. 익숙한 것에 안주한다는 것은 늙었다는 고백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더 꽉 채워진 듯 뿌듯하고 편해서 좋다. 


  진하거나 강렬한 맛이 아닌 흉내에 가까웠던 한식은 내 밥상이 아니었기에. 스테이크와 파스타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은 고추장 과하게 넣어 뻘겋게 비벼 먹었고, 너무 진해서 사약 아닐까 싶게 맛없던 커피(?)가 아닌 드립 해서 적당히 농도가 조절된 감미로운 향과 탄 맛이 느껴지는 한 모금의 커피를 앞에 두고 여행 사진을 펼쳐본다. 

  디지털 소비가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사진을 보면서 다시 느낀다. 쓸데없는 장면까지 마구마구 담겨있다. 사진을 찍던 짧았던 그 순간의 생각과 심장박동까지도 느껴진다. 사진을 보며 여행을 다시 더듬어 본다.  

  낯설고 눈부신 풍경을 눈으로 한 번 보고 그 순간을 담기 위한 노력은 이제 여행의 습관이 되었다. 어떨 땐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인가 싶을 정도로 주객이 전도된 듯해도 시간이 흘러 추억을 떠올릴 땐 역시 사진이 최고다. 그 안에는 자기만 아는 당시의 감동과 숨결과 생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여행 후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불후의 명언이 된 건 다 이유가 있다. 

  렌즈 앞에서 웃었고, 손 하트도 만들었고, 만세도 불렀다. 배우처럼 감정 연기도 했다. 

  나 이렇게 즐거웠다고. 

  신기하게 나중에 다시 보면 진짜 즐거웠음이 느껴진다. 

  아주 오랜 시간 후에 그 장면들을 보며 일정을 떠올려 보게 될 것이다.

  달링하버의 현대 미술관의 심심함과 한 입에 먹지 못할 햄버거를 칼로 썰어 먹던 추억과 플리마켓의 자유로움과 두 판을 사려다 한 판 밖에 사지 못한 피자 한 조각과 우리 동해 어느 바닷가 보다도 못한 노바비치와 흰 등대 하나만 서 있어 당황스러웠던 오벨리스크 언덕과 수 천 번의 외침을 받으며 역사를 이어온 우리에게 남의 전쟁에 잠깐 참전한 것도 기억이라고 자랑하고 픈 메모리얼 파크의 워킹도.


  저 멀리 얼핏 얼핏 등만 보여준 돌고래 유람선 투어와 수평선 같은 산봉우리의 블루마운틴과 로라마을과 호주의 랜드마크인 오페라와 내부투어. 하버 브리지의 야경을 보며 여유롭게 음료를 마시던 시간. 동물원에서 코알라와 캥거루를 보고, 사구에서 모래썰매를 타고 사막풍경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고, 130년 동안 지은 성당을 보고, 노천식당에서 여유롭게 스테이크와 커피를 마시던 때, 그때가 계속계속 그리워지겠지.       

   그리고 지금 이 사진들이 빛바래갈 때쯤 우리는 어딘가로 다시 여행 떠날 준비를 할 거야. 모든 편리함과 무신경과 약간의 긴장감과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집으로 돌아오고 싶은 그리움까지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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