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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Apr 19. 2024

호주 여행 4박 6일

1. 

 패키지여행의 편리함은 익히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시간 맞춰 식사하고 기다리는 버스 타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면서 가이드가 알려주는 여행지의 삶과 문화 전반에 관한 생생한 스토리를 듣는다. 이런 장점 외에도 문득문득 궁금해지는 것들은 질의응답을 통해 실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자유여행을 했다면 일정과 노선을 짜고 어디서 먹을지, 타고 다닐지 검색하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말이다.

  며칠을 다녀보니 같은 버스에 앉는 자리도 같고, 식사나 자리 배치도 비슷하고, 일정이 패턴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익숙함인가? 편안함인가?. 출발 전에는 호주 4일이면 10시간이 넘는 비행의 고된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아쉽다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다녀보니 사나흘 지나면서 집이 그리워지는 때에 맞춰 돌아올 수 있었다. 오랫동안 여행 다닐 팔자는 못 되나 보다.


2. (첫째 날)

  열 시간 비행을 하면서 좁은 공간에서 웅크리고 밤을 보냈던 터라 돌덩이를 진 피곤이 어깨를 짓누르는 아침이었지만 여행의 설렘이 피곤을 압도하는 첫 일정이 시작되었다. 

  더 록스와 현대 미술관을 둘러보고 뉴캐슬로 이동하는 일정은 낯선 도시 풍경을 둘러보고 차를 타고 가며 낮잠을 잘 수 있는 여유롭고 심심한 일정이 고된 비행시간을 배려한 듯했다.

  해양박물관을 잠시 둘러보고 리플스 카페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다. 내게 햄버거는 어쩌다 마지못해 먹는 간식이지 한 끼 식사였던 기억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햄버거는 식사 방식이 아주 불편하기 때문이다. 빵 사이에 고기 패치를 넣고 야채에 치즈까지 끼워 양손으로 가득 움켜쥐고 입을 크게 벌려  크게 물어야 하는데, 한입에 들어가지 않음은 물론 입가에 묻히지 않고는 먹을 재간이 없다. 대부분은 해체의 과정이 동반돼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 그곳 사람들도 동양인에게는 얌전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포크와 나이프를 세팅해 줬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좌측통행하는 방식이 낯설기는 했지만, 뉴캐슬로 가는 동안 달콤한 낮잠을 즐겼다. 노비스 비치의 평범함과 오벨리스크 언덕의 심심함. 메모리얼 워크의 단순함도 눈에 보이는 낯선 풍경과 아주 먼 남반구의 어느 땅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되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위로되었던 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짐을 푼 맥쿼리 호텔에서의 저녁 식사와 어둠이 내린 뒷마당에서 술을 마시고, 떠들며 게임을 했던 시간이었다. 젖은 빨래처럼 무겁게 피곤이 엄습하는 일정이 끝나고 벼락같이 안락한 침대로 들어가 몸을 눕힐 꿈을 꿀 법도 했건만, 우리는 참 열정적이고, 끊임없이 재미를 찾는 민족의 후손답게 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다.


3. (둘째 날)

  이튿날 아침은 머레이 와이너리 방문이었다. 각종 수제 와인 시음 후 저녁에 마실 와인 두 병을 샀다. 그리고 돌고래를 보는 크루즈 관광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얼마간 바다로 나간 후 배가 멈춰 섰고, 사람들의 환호가 들리고 쪽으로 한 손에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우르르 몰려갔다. 돌고래 지느러미가 푸른 물결 위로 술래잡기 술래의 머리카락처럼 간신히 보이는 풍경이 관광객들을 위로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돌고래가 크루즈를 운행하는 사람들의 체면을 세워줬다고 하는 게 맞겠다. 

  점심으로 크림 파스타가 예정되었다. 장(腸)이 좋지 않아 면을 가려야 했지만, 여행에서조차 좋아하는 것을 참아야 하냐며 은근 현지식을 기대했는데, 첫입에 실망하고 말았다. 작고 얇은 호스같이 생긴 면을 썰어 넣고 간신히 색깔만 낸 크림소스가 곁들여졌는데, 니맛도 내맛도 없이 밍밍했다. 우리나라의 부드럽고 고소한 소스가 베인 면의 매끄러운 맛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K푸드의 위력을 새삼 짐작할 수 있는 식사였다. 

  오후엔 사막에서 모래 썰매를 타는 일정이었다. 사막은 아니고 사막을 닮은 사구(砂丘)였다. 언젠가 사막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소원을 푸나 했더니 다음을 기대해야 했다. 모래 썰매가 재미가 없어서 또 망했구나 했는데, 언덕 위에서 인생샷 찍으며 놀기가 위로해 줬다. 렌즈는 사람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못할 때도 있지만 때론 별것 아닌 것을 보이는 것 이상으로 진짜처럼 잘 포장해 주기도 한다.  

 4.(셋째 날)

  우리는 지금 쇼핑 홀릭으로 힐링을 하며 사는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고있다. 기분이 우울하고 심심하면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하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며, 결재하고 택배를 기다리는 것으로 위로받을 때가 있다. 그런데 패키지로 다녀오는 해외여행도 비슷한 경우지만 규모면에선 좀 다르다. 인터넷 쇼핑과는 비교가 안되게 갈등을 조장하고 때론 자신이 왜소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수년 동안 목돈을 모아 어렵게 여행길에 올랐기에 건강식품이나 유명 상품 따위는 절대 사지 않겠다고 다짐 하지만 막상 몸에 좋은 건강식품이나 유명 물건을 보면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설득의 상술에 혹하고 넘어가 버린다. 수 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카드 명세서 생각과 언제 다시 와서 이 좋은 것들을 살 수 있겠냐는 마음 사이에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한다.    

  시드니 동물원에서 코알라와 켕거루를 보고 블루마운틴으로 향했다. 유칼립투스의 수액이 강한 햇빛에 반사되어 산 전체가 푸른빛을 띤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블루마운틴은 멀리 하늘과 맞닿아 곧게 뻗은 산이 지평선을 그었다. 뾰족하고 때론 부드러운 능선의 우리나라 산봉우리와 달라 호주 어린이들은 산을 지평선으로 곧게 그린다고 한다. 비가 내린 직후라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슬픈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세 자매봉이 웅장하게 다가왔다. 스카이웨이를 타고 내려가 원시림 속을 잠시 걸은 후 옛날 석탄을 실어 나르던 궤도열차로 다시 올라와 케이블카를 타고 협곡을 건넜다. 

  블루마운틴 인근의 로라마을은 제주의 종달리처럼 한적한 시골마을인데 그곳에서 쇼핑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1920년 같이 년도가 적힌 건물이 보이는 데 백 년이 넘는 건물은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하기 때문에 맘대로 손을 못댄단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먹은 고풍스러운 호텔도 낡아 보였지만 기품이 느껴졌었다. 물론 우리도 천 년이 넘은 고택들이 잘 보존되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문화재로 지정돼 삶과 동떨어졌지만, 호주인들은 생활 속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오래도록 보존하는 문화가 우리와 달랐다. 


5.

  내친김에 가이드로부터 전해 들은 부러운 몇 가지를 더 소개해 보겠다. 

  호주엔 안전불감증이란는 말 자체가 없다고 한다. 느리지만 시스템 적용이 철저하고 국민들이 잘 따른다고 한다. 버스에서는 안전벨트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우리와 같지만 물 이외에 음식물 섭취가 절대 금지고, 두 시간에 한 번씩을 반드시 휴식을 하며 운행일지를 기록해야 한다. 어디선가 레인저가 나타나 수시로 감독을 한단다. 

  운전면허를 따는데 보통 4년이 걸린다고 하니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우리에겐 낯선 시스템인 듯한데 안전운행 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이라고 하니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우리가 그 절반의 과정만이라도 도입하면 어떨까? 

  호텔이나 가정에서 소방시설의 작동은 소방서와 연결되고 오인출동이 확인되면 벌금이 부과된다고 한다. 모든 공사장에서의 안전관리는 철저하고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공사가 중지된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학교에서 공동체 생활습관을 익히고 토론하는 방법 등을 배우고 난 이후에 비로소 글을 가르치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모두 3시면 수업이 끝난다. 수능은 일주일에 걸쳐서 치러지는데 국영수 등 주요 과목에 집중하지 않고 잘하는 것 위주로 시험을 치른단다.

  술 집 앞에도 레인저가 서 있어 취객에게는 더 이상 술을 팔지 않고, 횡단보도 앞에서는 사람이 우선이라 차들이 철저히 멈췄다.  

  우리의 주민등록에 해당하는 서류를 발급받는 데 한 달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관공서에 민원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는데, 어안이 벙벙하고 믿기지 않았다. 그들도 사람인데 정말 그럴까? 의구심이 든다. 

  시스템이 느림에도 안전하고 철저하게 검증된 철차를 거치기 때문에 많은 노벨상을 수상자가 나왔고, 각종 생활용품의 발명이 호주에서 이루어졌으며, 의료비가 무료라서 국가 재정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국민들의 건강을 나라가 우선 챙긴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들은 가이드를 통해 들은 호주의 안전 등 문화에 관한 내용으로 개인적인 의견과 경험이 첨삭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부러운 게 있었다. 

6. 

  블루마운틴에서 내려와 저녁 식사를 하고 시내 야경투어를 했다.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야경이 근사한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고 하버브리지를 걸어서 건넜다. 

  도시의 야경이란 불필요하거나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완벽히 가려주고, 오직 보이고 싶은 것만 화려한 불빛으로 보여주는 마술 같은 풍경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이 야경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수년 전에 봤던 풍경 그대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걸쳐있는 그 불빛 그대로 호주의 시그니쳐 풍경이 거기 있었다.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오페라하우스 앞 노천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쉼표의 시간을 보냈다. 

7.(넷째 날)

  드디어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 시작되었다. 여행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집에 대한 그리움도 생길때가 됐다. 미세스 맥콰리 포인트에서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 전경을 보며 공원 내 즐비한 고목들을 보았다. 어마어마한 나무들이 이 땅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오페라 하우스 내부 투어를 했다. 명성에 비해 소박한 모습이었다. 소리에 관한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섬세했고, 하다못해 화장실의 세면기가 평면에 가깝게 부드럽고 유려한 곡선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약간의 기울기만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역시나가 느껴졌다. 

 한편 이곳을 시드니 사람들은 꽤나 편하게 이용하고 있어 놀랐다. 공연료가 수백만 원쯤은 되려나 했더니 공연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보통 십 몇만 원이며, 일정이 없을 때는 이곳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생각보다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호주인들에게 가까이 있는 듯했다. 

  130년 동안 짓어 완성한 세인트 매리 대성당의 웅장함과 섬세한 모습은 한편의 예술작품이었으며, 다시한번 종교의 경이로운 힘을 느끼게 했다. 긴 나무의자에 앉아 방문객으로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 

  하버프런트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언젠가 외국의 어느 노천식당에서 현지인인양 느긋하게 점심을 먹으리라 했는데, 로망을 이뤘다. 빡빡하지 않은 일정이라 커피까지 마시며 한참 떠들었다.  

  왓슨스베이와 갭파크 그리고 본다이 비치해변을 잠시 걷는 것으로 여행을 마쳤다. 

  저녁엔 호텔 펍에서 마지막 여정의 아쉬움을 달래는 뒤풀이를 했다. 무섭게 마시는 술. 그곳 사람들이 보기엔 마치 죽기 위해 마시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많이들 취했는데 들이붓듯 마셔댔다. 아쉬움을 달래려고 그랬나 보다. 돌아보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8. 

  적당한 여행의 시간속에서 낯선 문화와 자연환경 그리고 다른 생활방식을 접하면서 내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는 게 여행의 묘미라면 시드니의 일정은 비싼 돈 주고 온 여행치고는 꽤 한가한 편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가이드의 비유처럼 호주는 심심한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란다. 나는 어디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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