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슬픔을 넘어 절망이 생겼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봄을 봄.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장면으로 웃음을 자아내고, 현실보다 더 큰 절망과 좌절감으로 아픔이 전해지고,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이뤄지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는 것. 바로 영화다.
영화는 타 문화예술 장르보다 훨씬 더 큰 몰입감으로 관객(독자, 화자)을 끌어안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더 생생하게 현실감이 느껴진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현실의 상황이 영화의 세심한 기교를 따라잡을 수 없다. 큰 주제부터 아주 작고 디테일한 장면 하나가 관객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실제 외교적 사실에 바탕을 둔 영화 모가디슈에서 반군의 공격을 피해 공관에 피신한 남, 북외교관들이 한 공간에서 식사를 하면서 깻잎을 잡아준다든지. 탈출 비행기에서 마중 나온 사람들이 보이자 서로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서 남처럼 외면하고 각자의 길로 가는 장면.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 장군이 아내가 챙겨 준 목도리를 두르고 반란군 진압에 나서는 장면은 관객의 희로애락과 같은 공감각 능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 수많은 장면들보다 그 한 장면이 더 오랫동안 기억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회자되게 한다.
또한 실제 사건의 인물을 바탕으로 했더라도 상상력과 창조적인 픽션이 가미된 전두광, 이태신 같은 인물들의 행동, 대사가 현실처럼 느껴지면서 몰입하게 되는 것도 영화적인 특징이다. 역사적 사실이 이미 결말을 스포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 얽힌 갈등과 욕망들이 지금 눈앞에서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잘 만든 영화 한 편은 한 사람의 인생, 한 시대의 흐름까지도 바꿀 만큼 파급력이 크다. 서울의 봄은 잘 만든 좋은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신군부의 쿠데타 사건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새롭게 정립시키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을 조금은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사욕을 채우기 위해 국민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도한 반란군 무리는 전두광의 대사처럼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길 바라며 그곳에 있었고, 실제 쿠데타 성공 이후 국가요직에 앉거나 국회의원을 지내며 권력을 쥐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반면 부당함에 항거하고 정의로운 군인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죽거나, 고문받고, 가정이 파괴되었으며, 본인은 물론 부모형제가 의문사하는 억울한 일들을 당했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와 광복군처럼 말이다.
역사에 눈 감는 순간 역사는 참 신기하게도 똑같은 모양으로 틈새를 파고든다. 서울의 봄을 천만 명이 관람한다면 신군부의 만행을 알았거나 관심 있었고, 다시 한번 분노하며 그때를 돌이켜 보기 위한 사람들이다. 관심 없는 나머지 대략의 이 천만 명의 사람들은 여전히 미동도 않기 때문에 세상이 아직도 부당하고, 아프게 반복되는 것이다. 정의롭지 못한 자들은 신기하게도 이런 요소들을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며 이용한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에 대해 눈 부릅뜨고 공부하고,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무관심이나 방조는 역설스럽게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협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MZ세대들에게 서울의 봄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이 희망을 이어가게 한다.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항거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며 항전을 이어가는 이태신 장군 같은 이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서울의 봄은 비록 짧고 실패한 봄이었지만 이를 반면교사로 다시는 슬프고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건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승자를 패자로, 패자를 승자로 새롭게 기록하는 역사적인 영화가 되길 희망해 본다. 한국 영화 최초 2천만 영화. 그럼 세상이 좀 바뀌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