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궁 #경복궁 #창경궁 #올스테이
서울은 우리를 닮았다. 우리처럼 바쁘고 스마트하며 잠을 자지 않는다. 반면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이 서울엔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고궁이다. 담장 하나를 두고 현대와 중세가 공존하는 아름다움이 서울엔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고궁을 따분하게 생각한다. 외국인이나 가는 곳이라 여기는 것 같기도 하다. 안타깝다. 이에 필자는 단호하게 말하고자 한다.
“당신은 가장 멋진 축제를 놓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가더라도 고궁은 저마다 매력이 있지만 필자는 특히나 겨울 고궁을 좋아한다.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북악산과 처마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겨울 고궁이 가장 조용하고 고즈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필자는 고궁의 고요함을 좋아한다. 땅 밟는 소리까지 들리는 이 고요함이 좋다. 정신없는 서울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좋다. 대체 이곳이 아니면 길 잃은 내 영혼이 쉴 곳이 어디란 말인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고궁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다. 필자는 그것이 퍽 아쉬운데, 조금만 발품을 팔고, 관심을 기울이면 고궁은 두 배, 세 배로 즐겁기 때문이다! 그것만 하면 고궁은 따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고궁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냐고? 대한민국 대표 고궁인 경복궁에서 특별한 고궁 음미법을 실습해보자.
첫째, 가이드북을 구매하라. 가이드북은 매표소에서 구매할 수 있고 단돈 500원이다. 카드결제는 천 원부터 되기 때문에, 현금이 없으면 가이드북을 두 개사는 비극을 겪게 된다. 아무튼 우리가 이 녀석을 사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보물 찾기’를 위함이다. 어릴 때 한 번쯤은 해봤을 보물 찾기, 우리는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 그 기억을 더듬어보자. 보물 찾기에 필요한 건 무엇인가? 바로 보물지도와 찾아야 하는 보물이다.
따라서 이번 여행에선 가이드북이 우리의 보물지도가 될 것이다. 그럼 우리가 찾을 보물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고궁 구석구석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이다. 재미없을 거 같다고? 천만에,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창경궁도 가게 될걸? 그동안 우리가 고궁을 지루하게 여겼던 것은 보물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지 고궁에 별 게 없어서가 아니다.
가이드북을 가지고 고궁을 다녀보면 알겠지만, 가이드북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생각해보자, 이전의 우리는 고궁을 어떻게 즐겼는가? 정처 없이, 목표 없이, 그저 길이 있으면 걷고 사람이 모여있으면 구경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물 흐르듯 흐르다 어떤 전각과 마주친대도, 여기가 뭘 하던 곳인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전혀 모르니, 감흥을 못 느낀 게 사실이 아닌가? 그나마 성실한 사람이라면 전각 앞에 세워진 설명문을 읽겠지만 그렇게 해선 고궁을 제대로 음미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고궁이 재미없는 것이다.
자, 이번엔 우리의 보물지도를 가지고 고궁을 즐겨보자. 첫 장을 보면 경복궁 지도가 나와있다. 그리고 뒤로 넘기면 전각 하나하나의 설명이 나오는데, 그 순서를 따르다 보면 어느새 경복궁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우리에게 목표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가이드북에는 이곳이 뭘 했던 곳인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각각의 전각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복궁에는 연회가 열렸던 경회루가 있다. 경회루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워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잡는 곳인데 가이드북에는 이런 사연이 소개된다. 본래 궁인들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던 경회루에 구종직이란 자가 몰래 숨어 들어가 풍치를 즐겼다. 그런데 이게 웬걸, 세종과 마주친 것이 아닌가. 이에 깜짝 놀란 구종직은 경회루가 너무 구경하고 싶어 미관말직의 몸으로 죄를 저지렀다고 고했다. 그러자 세종은 그에게 벌주긴커녕, 풍류를 아는 자라 여겨 정 9품이던 그에게 정 5품 을 하사했다.
(작가 주 - 조선의 관직 체계는 총 18단계로 구분되었는데 그중 정 9품은 17단계로, 지금으로 치면 9급 공무원 정도의 관직이다. 그런데 구종직은 세종으로부터 정 5품을 하사받았으니 이는 9급 공무원이 5급 공무원으로 파격 승진을 한 것이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한 거라곤 단지 가이드북을 들고 경복궁을 본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이로써 우리는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구종직이란 자가 경회루 연못에 몰래 들어가 달빛에 수영하는 모습을, 그러다 세종에게 들켜 벌벌 떨며 죄를 고했을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이드북이 있고 없고에 따라 고궁이 살아 움직이는지가 정해진다. 그래서 고궁여행에는 가이드북이 중요하다.
둘째, 프로그램을 놓치지 마라. 경복궁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가이드 해설부터 수문장 교대의식, 파수 교대의식까지 경복궁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한다면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경복궁을 만나볼 수 있다. 그중 수문장 교대의식은 볼거리가 많아 기다리는 관광객도 있을 정돈데, 수많은 군졸과 뒤따르는 취타대의 위용은 웅장하다 못해 감동스러울 정도다. 따라서 15C의 교대 의식을 그대로 재현한 이 프로그램을 놓친다면 경복궁을 반 밖에 즐기지 못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문장 교대 의식은 10시와 14시에 광화문과 궁궐 담장 사이에서 이뤄진다.
셋째, 고궁박물관을 활용하라. 경복궁 옆에 자리한 고궁박물관은 우리 여행의 마침표를 찍기에 제격이다. 먼발치에서나 봐야 했던 궁궐의 곳곳이나 미처 알지 못했던 자세한 내용을 이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는 방금 전까지 경복궁을 거닐다 오지 않았는가? 지금처럼 몰입하기 좋은 때도 없다. 뿐만 아니라 입장료도 무료라 사양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특히나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을 고궁으로 계획한다면, 고궁박물관을 지나치지 말자 이곳이야말로 살아 숨 쉬는 교육의 장이기 때문이다.
앞서 필자는 겨울 고궁이 사계절 중 가장 조용하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그 이유는 겨울엔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기 때문이다. 그나마 근정전이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기 때문에 제일 붐비지만 조금만 안으로 들어가면, 일찍이 서울에서 맛보지 못했던 고요함을 만날 수 있다. 얼마나 고요한고 하니 인적이 드문 경복궁 안뜰에선 자동차 경적은커녕 사람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다. 오직 들리는 것은 까치의 깍깍 소리와 내가 땅을 밟는 소리뿐. 그런 의미에서, 정신없이 휘둘려온 우리의 영혼이 잠시 쉬기에 이곳처럼 좋은 곳은 없다. 따라서 구석구석을 살피는 스타일이 아닌 사람에게도 겨울 고궁은 놓쳐선 안 될 필수코스다.
고궁은 결코 지루하고 따분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이고, 고요한 영혼의 쉼터다. 생각해보자, 정신없이 굴러가는 21C의 도시에서, 중세의 고요함을 품고 있는 도시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행운아고, 고궁은 값진 선물이다. 그러니까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고궁을 놓치지 말고 노닐어보자. 최근엔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하나의 유행이니, 다양한 방식으로 고궁을 음미하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고요한 그곳에서 땅 밟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래서 필자의 영혼은 고궁을 그리워하나 보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의 영혼도 머지않아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Additional tips
- 고궁의 관람시간은 09:00~17:00이며 관람시간 1시간 전까지 입장해야 한다.
- 경복궁·종묘는 매주 화요일, 창덕궁·창경궁·덕수궁은 매주 월요일에 쉰다.
- 가이드 해설은 10:00(금·토·일)/11:00/13:00/14:00/15:00/15:30에 이뤄지며 수문장 교대의식은 - 10:00/14:00, 파수 교대의식은 11:00/13:00에 이뤄진다.
- 입장요금은 어른 3,000원이며만 24세 이하는 무료다.
글/사진 - 박영욱(45arm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