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너를 집요하게 어여뻐하겠다

⌜애매한 영화 애호가의 왜 좋냐면⌟ 에릭로메르의 녹색광선

by Aha

제일 좋아하는 영화를 대답할 때마다 사랑하는 영화가 자주 달랐으나 그 대답에는 늘 확신이 없었다.

그 시절의 대답은 사실 이런 의미를 가진다; 요사이에는 개중 그 영화를 제일 인상 깊어하는 듯하다.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에서 닉네임으로 Delphine을 사용하겠다고 덤벼서는 각종 악의 없는 모멸을 당하였으나 (델파인, 돌핀 등 창의적으로 불렸다.) 그마저 영화에 대해 떠들 기회로 여길 만큼 최애 영화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으니, 에릭로메르 감독의 녹색광선이다.


녹색광선은 어떤 영화인가. 이것은 애착 트라우마로 사람이 싫은데 동시에 좋아서 돌아버리는 사람을 위한 영화다. 내향인이지만 외향인 세계를 동경하는 사람. 군중 속 고독을 느낄 때마다 등골 타고 오르는 아웃사이더 기질을 재발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157분간 공감성 수치를 느끼며 마조히스트적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한, 자기 고행적이고 변태적인 영화다.


내향적이고 조심스러우며 소심한 구석이 있는 델핀은 일상의 에피소드에 상징을 부여하며 자신만의 미신을 믿는다. 외로움을 두려워하며 조심스러운 와중에도 소속과 교류를 희구하면서 막상 집단과 잘 어우러지지 못하고 반복하여 좌절하는 동시에 그 좌절 가운데서도 자아의 윤곽선과 이상을 타협하지 않고 차라리 또다시 외로워 찌질하게 우는, 용맹하진 못하나 비겁하지도 않은, 평생 출세는 글러먹은 용사와도 같은 여성이다.


녹색광선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주인공 델핀 역을 맡은 마리 리비에르가 당시 30대였다는 점도 포함된다. 무릇 사람의 찌질함은 나이를 먹으며 세련되게 관리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20대 초반 설정이라지만 설정상 그녀가 20대이든 30대이든 상관없다. 공감성수치를 느낄 당신에겐 그저 당신의 또래로 보일 것이다.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마치 동화와도 같은 꽉 닫힌 희망적이고 상징적 해피 엔딩이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만나는 연이은 사람들에게 때로는 모멸감을 느끼고 소외감을 느끼며 기다리던, 마치 고도와도 같이 오지 않을 것 같던 델핀의 이상에 딱 맞는 결말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런데 사실 그 순간까지 영화는 델핀의 이상이나 가치관, 그녀 자아의 윤곽선에 대해 그다지 정성스럽거나 중요하게 주목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델핀은 꿈꾸는 자기만의 이상이 있었는데, 마침내 결국은 우연히 만나서 행복해졌답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내도록 무엇을 보여주나. 소외감을 느끼는, 모멸감을 느끼는, 좌절하는, 외로워하는, 또래 성인과 어울리지 못해 어린아이들과 구석에서 어울리며(아이들이 델핀을 놀아주는 것에 가깝다) 그 와중에도 어린애한테 우습게 보이기 싫어 없는 남자친구 많다고 거짓말을 하는, 찌질한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고 영화인지 내 기억인지 혼란스러운 그녀의 망신살 돋는 좌절의 사슬을 집요하다 못해 고약하게 느껴지는 집요한 시선으로 눈도 깜박이지 않고 따라간다.


가족과 커플 관광객뿐인 여행지에 당도한 아웃사이더가 가까스로 평정을 가장하는 미시적 비극을 원경과 근경을 번갈아가며 괴롭도록 들여다보는 집요한 시선- 중간중간 그 시선의 짓궂음에서 홍상수 감독이 손을 흔들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 시선은 잔소리가 없다.


그 시선은 조언도 의견도 없다. 그저 집요하고 고약하게, 너무 가깝게, 지긋이 모든 것을 누락 없이 지켜보는 것뿐이다. 당신은 델핀을 싫어할 수도 없다. 그 시선은 나를 놀리거나 우스워할 생각도 없다. 델핀의 사랑스러움도, 쉬이 고난을 겪는 작은 우아함도, 귀여운 데가 있는 어설픔과 순진성도, 전부 묵묵하고 집요하게 지켜보기 때문이다. 당신은 불완전한 델핀에게 복잡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것은 나체로 찍힌 자화상을 한낮에 보는 기분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그 시선은 좌절의 한가운데, 혹은 좌절 후의 뒷모습 정도에서 퇴장하여 하나의 극을 각색하지 않는다. 연이은 좌절의 에피소드를 지나 맥없이 끝나가는 여정의 끝마저 여전히 지켜볼 뿐이고, 우연히 마침내 맞이한 이상과의 조우도 그 만남의 시시하고 거짓말 같은 해피엔딩도 끝까지 지켜본다. 델핀이, 당신이, 내가, 모든 불완전하고 외로우며 창피하고 어설픈 좌절과 그 와중에도 비추는 사랑스러운 구석과,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끝나 어딘가에 도달하는 자그마한 완결까지. 왜곡도 각색도 없이 꼼꼼히, 한낮 태양 아래 적나라한 자화상의 정수리부터 비추어 노을이 질 때 마침내 새끼발톱까지 도달하여. 아, 저 시선이 델핀을 얼마나 어여뻐했는가.


세상에는 찌질한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종종 사람은 드러내본 적 없는 파편처럼 부스러진 자신의 바닥들을 두려워한다. 어제와 내일의 초라하고 창피하고 사소하고 영원한 순간들을 고스란히 어여삐 목격하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지난날과 앞으로의 그런 것들이 모두 괜찮을 거라 느껴진다.


나는 에릭로메르를 좋아한다. 그가 사람을 어여뻐하기 때문이다. 그가 나를 편집하고 오독하지 않고도 나를 어여뻐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닉네임을 Delphine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