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은 돌아오지 않는다

⌜애매한 미술 애호가의 왜 좋냐면⌟ 잭슨 폴록과 비명들

by Aha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 무엇을 봐야 하나


잭슨 폴록은 왜 그러한 방법으로, 혹은 그러한 방법으로 무엇을, 하려고 했나. 결과물은 우연적 부산물이고, 그가 전시하고 전달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던 힘과 감정과 욕구는 물감통에 몸을 부딪히던, 이미 지난 과거의 시간에 있다. 사람들은 벽 하나를 채운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서 무엇을 보는가. 무엇에 놀라는가. 거기에 잭슨 폴록이 남아 있나? 곰이 나를 따라오라고 앞장선 길 위에 모두가 커다란 발자국을 보며 멈춰서 있다. 그 앞에 꽃을 둔다. 곰은 결국 홀로 간다.


개념 미술과 수행 미술. 언어가 선행하는 것과 언어로 치환할 수 없는 것. 후자는 언어에 싣기에는 언어의 체망이 너무나 성글어 전달해야 하는 것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언어에서 태어난 개념에 근거하는 작품들은 태생이 체망 구조 안이므로 개념으로 이미 자체 완성적이다. 이러한 개념 미술은 시각자료와 변주에 지나지 않으며 작가 자신의 유희가 동 주제 연작의 본질이 될 수 있다. 수행 미술 또한 동주제 연작인 경우가 허다하니 무엇이 다른가. 수행 미술은 개별 작품 하나하나가 스스로를 가리키는 사건의 기록이다. 단색추상화에서 구도자의 시간을 읽는 것은 그것이 응축된 시간성을 지닌 독립적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듯이 두 개의 수행 미술은 서로 같지 않다. 사건과 시간 그 자체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술이 폐쇄적 코드와 배타적 문맥을 가지게 된 배경은 미술가들이 미술가와 미술 평론가와 자본가로 구성된 이너서클을 만들기를 원해 구별 짓기를 시도한 결과인가?


웃다. 울다. 말하다. 듣다. 쓰다.

알려진 언어와 표현 체계로 전달할 수 없는 것. 무엇이 춤이 되는가? 통용된 지시가 되지 못하는 몸짓. 말이 되지 못한 소리. 내용은 있으나 알려져 약속된 적 없으므로 전달할 기표를 찾지 못하는 것이며, 즉 비명이다.


개념은 언어에서 태어나므로 언어로 자체 완성적이다. 그것의 최상은 언어 안에 있다. 무엇이 미술 이어야 하는가. 오염된 언어로 공명할 수 없는 것. 언어로 약속된 바 없는 것. 알려지지 않은 것. 말이 되지 못한 소리. 지시가 되지 못하는 몸짓. 비명이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을 알아본다. 비슷한 정서적 민감도를 지닌 사람들이 서로의 비명을 알아듣는다. 언어의 발달 과정처럼 비명을 따라 지르고 비명에 화답하는 비명들. 닿은 찰나가 있는 비명과 닿은 적 없는 비명들.


적록색맹의 남자친구와 노을을 보고 있다. 같은 사과에서 각자 다른 색을 보는 고립된 우주들의 사회에서 한 번도 공명이 증명된 적 없는- 배반을 품은 언어와, 그 언어마저 되지 못한 비명들이 고독을 떨치기 위해 머리 위의 하늘과 벽면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그 비명은 불충분한 화답들과 예쁜 비명을 소장하기 위한 사람들에 의해 액자에 걸릴 것이다. 고독 해질 것이다. 잭슨 폴록은 지나갔고, 사람들은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발자국 곁에서 그 발자국의 미학적 평가에 대해 말한다. 곰은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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