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기만의 윤리와 거리두기의 딜레마

⌜애매한 영화 애호가의 왜 좋냐면⌟ 토니케이의 디태치먼트

by Aha

내 취향의 기준이 무엇인가 생각해봤는데, 내게 자국 남기기 힘든 것은 친절하고 착한 영화다. 이건 내 못된 성격과도 맞닿아 있겠지만, 취향은 어디서나 그 뿌리가 매한가지라 소설이든 영화든 미술이든 늘 같다.


언제나 불편한 것들이 좋다. 오래 ⌟ 남고 개운하지 않은 것들. 불편한 것들은 왜 불편할까. 불편함에는 이유가 있다. 감상에서 끝나서야 불편한 것은 기분 나쁜 것뿐이다. 불쾌함과 불편함을 구별하는 사람이 되기.


기형도의 시를 패배자의 시라고 성내던 어느 어른처럼, 나는 어느 것에 나를 비추어 불편해지나. 어른이 아직 되지 못한 것의 절망된 시간들과 유년기를 거쳐 살아남은 자들의 평온을 가장한 무관심이거나 외면, 혹은 자기 기만. 불편함을 차마 잊지 못하는 어른됨의 무력함.


희극과 비극은 모래와 흙처럼 도처에 병존하고, 기만의 기술을 터득하고 살아남은 자는 비극을 걸러내고 평온을 가장하는 법과 무력한 감각에의 마비를 터득한다. ‘자기 기만이 잘 기능하지 않는 사람은 우울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것을 자주 생각한다.


유년기와 성인기는 한 사람의 서사에서 연속되지만, 타인의 유년기는 성인된 나의 부분이 아니다. 우리는 교집합의 가능성을 갖지만, 망각된 과거는 화석일 뿐이고 그것은 교집합이 될 수 없다.


타인의 고통. 차라리 지난 유년기를 타인인 셈 치는 것이 그나마 위선과 거리가 멀 것이다. 그래봐야 이기적인 것은 매한가지지만, 이기적인 것은 살아남는 것에 중요한 덕목이니까.


목격자가 되겠다는 마음가짐. 불편한 것을 없는 셈 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 타인의 고통이거나, 그 사람 자체여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디까지 해야 하나. 거리두기를 필사로 익혀야만 무너지거나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더라며 생존법을 익힌다던 어느 복지가와 상담사의 닫힌 얼굴들이 생각났다.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쉽게 답할 수 없었던 전쟁터 같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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