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영화 애호가의 왜 좋냐면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영화에 대한 악동 같은 짝사랑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오디션 장면을 보다가 레오 까락스가 떠올랐다. 데이비드 린치와 레오 까락스 - 두 감독은 겉보기엔 전혀 다른 스타일이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공유한다.
이들은 영화를 폭로하고, 답답해하고, 삐딱하게 보면서도 사실은 너무 사랑해서 영화를 손에 쥐고 이랬다 저랬다 뒤집었다 온갖 짓을 하는 남자애 같다. 영화의 문법을 '반항적으로' 비틀면서도, 그 이면에는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오디션 장면이나 「홀리 모터스」의 모션캡처 장면 - 영화 산업을 비틀고 조롱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장면들 자체가 너무나 아름답게 찍혀있다. "난 이걸 미워해!"라고 외치면서도 실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두 감독은 배우를 다루는 방식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린치는 배우를 악기처럼 연주한다. 표정은 디렉팅을 통해 통제와 연출이 가능한, 감독의 통제권 안의 영역이다. 클로즈업이라는 통제된 프레임 안에서 배우의 표정을 자신의 비전에 맞게 조율한다.
나오미 왓츠의 표정 변화는 마치 감독이 연주하는 악기처럼 정교하게 제어된다. 오디션 장면에서 베티가 보여주는 표정의 전환 - 순진함에서 관능으로, 취약함에서 강렬함으로 - 은 린치가 원하는 정확한 순간들을 포착한 결과다. 나오미 왓츠가 아니었어도 대체 가능했을 것이다(물론 누구나는 아니지만).
린치에게 배우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도구다. 물론 이것이 배우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배우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되, 그것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까락스는 다르다. 그는 드니 라방을 페르소나로 앞세운다. 드니 라방은 몸을 아주 잘 쓰는 배우이고, 그의 이상하고 낯선 걸음과 몸짓은 까락스가 언어로 포획하는데 실패를 경험했던 감정과 에너지, 기분들을 표현할 최고의 동료이자 수단이다.
몸의 움직임은 광각으로 담아야 하고, 감독이 카메라나 연출, 디렉팅을 통해 통제하기 쉽지 않다. 배우 자체가 몸을 잘 써야 한다. 감독은 때를 기다려 사진을 찍는 작가처럼, 기적처럼 만난 이 페르소나가 재현해주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까락스의 영화는 어떤 의미에서 '드니 라방이라는 현상을 기록하는 작업'에 가깝다. 마치 자기 경험에 근접한 재현을 타인의 몸으로 처음 성공해본 사람 같다. 그래서 까락스가 드니 라방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두 감독은 '연기'라는 개념 자체를 반대 방향에서 탐구한다.
까락스는 드니 라방을 통해 끊임없이 변신하는 연기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홀리 모터스」에서 드니 라방은 한 영화 안에서 수많은 인물로 변신한다. 거지, 모션캡처 배우, 아코디언 연주자, 괴물, 노인. 연기는 무한한 변신의 예술이며, 배우는 그 변신을 통해 존재한다.
반면 린치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완벽한 연기'의 순간(베티의 오디션 장면)이 실은 가장 비현실적인 환상일 수 있다고 제시한다. 그 완벽한 연기는 다이앤의 꿈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현실의 다이앤은 실패한 배우였고, 베티의 눈부신 오디션은 그녀가 자신에게 허락한 위로였다.
하나는 움직임으로, 다른 하나는 응시로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연기란 무엇인가. 배우란 무엇인가.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는가.
두 감독은 모두 영화 산업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공유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젊은 감독 캐릭터(아담 케셔)는 60년대 젊은 시절의 고다르를 닮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제작사와 갈등하며, 자기 비전을 고집하면서도 산업 시스템 안에서 좌충우돌한다.
"댓츠 더 걸!" 장면은 할리우드의 비합리성과 결정권의 부재를 보여준다. 젊은 감독의 의견이나 예술적 비전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갑자기 누군가가 "댓츠 더 걸!"이라고 선언하면 그걸로 끝나버린다. 개인의 실력이나 노력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현실.
까락스 역시 「홀리 모터스」에서 영화 제작의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측면을 모션캡처 장면으로 풍자한다. 배우의 몸짓은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고, 인간의 감정은 기술적 신호로 환원된다. 이 장면이 아름다우면서도 소름끼치는 이유는, 그것이 영화 산업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감독 모두 도시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로 그려낸다.
린치의 로스앤젤레스는 낮과 밤,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미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도로는 꿈과 악몽의 경계이며, 헐리우드는 희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도시는 인물들의 내면을 반영하고, 때로는 잠식한다.
까락스의 파리는 아름다움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순의 공간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다리는 사랑의 무대이자 광기의 현장이고, 「홀리 모터스」에서 파리는 무수한 역할들이 펼쳐지는 거대한 무대가 된다.
두 감독에게 도시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규정하고 변형시키는 힘이다.
다음 편에서는 까락스와 드니 라방의 관계, 그리고 '신성한 오해'에 대해 이야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