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하고도 어리석었던 나의 그녀
할머니란 별명이 지금까지 붙어있는, 어린 시절 애어른이란 타이틀이 자랑이었던 나는 단 한 번도 엄마가,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유복하지 못했던 내 삶을, 내 자리를 비관해서가 아니다. 그저 나의 엄마가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아주 어린 내게도 보였고, 그런 엄마가 내겐 참 대단하고도 어리 석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애어른이란 타이틀에 걸맞게도 늘 약삭빨랐던 내 머리 한구석, '나는 그렇게 우직하게 살아낼 수 없다'는 자아성찰이었다. 연약한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념이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그것을 '지혜'라 불렀다. 삶에서 당연스레 넘어야 할 산들을 지레짐작하고, 수월하게 피해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나를 그녀는 '지혜로운 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이 지혜가 아님을 안다. 그저 두려움이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