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컵이 있다.
작은 컵에는 물이 담겨있다.
작은 컵에는 여러 가지 색의 물이 담겨있다.
작은 컵에는 색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색의 물이 담겨있다.
물을 처음 들였을 때, 작은 컵은 매우 기뻤다.
무언가가 채워진다는 기분은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아름다운 색으로 감출 수 있었다.
처음에는 노란색으로 그다음에는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작은 컵은 욕심과 자만심이 생겼다.
“나는 여러 색을 담을 만큼 크고 깊어.”
작은 컵은 여러 색을 담고 또 담았다.
작은 컵의 색은 계속 바뀌었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섞인 어둡고 탁한 색이 되어버렸다.
작은 컵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작은 컵은 불안했다.
자신이 작다는 것
자신이 깊지 않다는 것
자신이 비어있다는 것
들킬까 봐 불안했다.
그런 작은 컵은
불안을 숨기기 위해서 많은 색을 담고 싶어 했다.
작은 컵은 자신의 크기와 깊이를 알았어야 했다.
비울 줄 알아야 담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비어있다는 것은 많은 색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미 여러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당당하고 자신있게
작고 투명한 나의 모습을 보여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