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여행기록-부산
부산으로 홀로 여행을 떠났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마침 내가 퇴사를 해서 백수였어서, 전 직장 동료가 대구에서 결혼식을 해서. 뭐 그런 이유를 둘러대며 내려오긴 했지만 사실은 그저 잠시 떠나 있고 싶었다.
퇴사를 한 이후에 내 삶은 평범하게 돈을 날려대며 시간을 버리는 삶이 되었다. 그것은 순간의 기쁨과 그 기쁨을 위한 하루 전의 설렘정도로만 치환되었고 일들이 지난 뒤에는 또 막연한 공허함으로 찾아왔다. 공허함을 이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서 잠깐 떠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글은 제 여행한 동선을 따라 다시 여행하듯 적은 것입니다. 코스나 맛집 추천과는 관계없어 도움이 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대구에서 KTX를 타고 부산역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시간은 6시 정각. 늦은 시간이었지만 일정을 생각하고 온 건 딱히 아니었기에 시간의 압박을 느끼지는 않았다. '여기가 부산역이구나'하며 서울깍쟁이 티를 내며 두리번대다가 문득 에어팟을 빼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외에 가면 그곳의 소리를 듣는 것을 선호하는데 나에게 부산은 처음인지라, 부산에게도 그런 예우를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에어팟을 빼고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했다. 새삼 부산이구나 싶었던 것이 이제 주변에 사투리가 만연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군생활할 때 이후로 사투리를 이렇게 옆에 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나는 경상도 사람들을 꽤 좋아한다. 감사하게도 내 곁을 스쳐간 경상도 사람들의 80퍼센트는 나에게 좋게 기억되기에 당연히 연결고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투리는 해외의 외국어처럼 그 지역만의 분위기에 나를 편승하게 만든다. 소리에도 향이 있다고 해야 하나.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정이 있다고 해야 하나. 중간중간 버스 정차에서 좀 멀어진 손님을 기사님이 태워주시는 모습을 봤다. 위 쪽에도 예전엔 이런 정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거짓말 없이 최근 3년 안에는 이런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아서 이색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부산과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상냥한 기사님의 운전은 역시 부산스러웠다. 첫출발부터 안전봉을 느슨히 잡았다가 넘어질뻔하고, 서 있는데 멀미를 한 버스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부산 풍경만을 눈에 담겠다고 창문 너머만 보다가 혹시 자리가 났나 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제야 알았다. 이 버스는 인형에 뒤덮여있는 버스라는 걸.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디즈니, 카카오와 산리오 캐릭터 등등 온갖 캐릭터들이 있는 버스였다. 처음 탄 버스가 이런 특별한 버스라니. 또 기분이 업 되는 느낌이었다. 처음 탔을 때부터 알 수 있었을 텐데 밖에만 정신이 팔려서... 이렇듯 밖만 보면 안을 못 보는 법이다. 세상 삶과 똑같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해서 체크인을 했다. 내가 예약한 곳은 4인실이었는데 다행히 사장님의 배려로 한 명이 방을 모두 쓸 수 있었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비수기여서 그런가. 손님이 없을 건 알았지만 그래도 운이 좋았다. 나에게 숙소는 잠만 자고 씻기만 하는 곳이기에 싼 값에 이걸 해결한 셈이었다.
부산에 사는 군동기를 만나기 위해 택시를 잠깐 타고 이동했다. 탄 택시의 기사님은 35살의 젊은 기사님이었는데 여행이라고 말씀드리니 야경 명소나, 내가 가는 서면의 맛집이나 이런 것들을 추천해 주셨다. 여행이 즐거웠으면 한다며. 새삼 또 따뜻한 선의를 받아 기분이 좋았다. 나도 언젠가 여행온 타인에게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이 호의를 갚는 법이겠다 생각하며 택시를 내렸다.
동기와 만나서는 아직 연락하는 군대시절 인연들 얘기와 요즘 사는 얘기를 짧게 하고 해어졌다. 뭐 짧다기엔 왕갈비도 잘 먹고 맥주집도 잠깐 들렀다. 와중에 자기 구역이라는 서면에서 길을 잃은 동기덕에 또 땀을 잔뜩 빼며 이동했다. 이런 녀석이 우리 동기들을 본다고 서울을 세 번 넘게 혼자 왔으니. 새삼 동기의 마음을 느꼈다. 그래도 길을 잃어버린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 부산의 습도를 이렇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는데.
군동기와 헤어지고 나서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주최하는 술자리에 잠시 참석했다. 어색한 모임자리에는 나름 익숙한지라 괜찮겠지 하고 참여했으나, 솔직히 말해서 재미없었다. 중간부터는 나가서 놀려고 하길래 남자사람들과 빠져서 노래방이나 들렸다. 자꾸 질 안 좋게 놀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마저도 보냈고 말이다. 그나마 순박해 보이던 막 전역했다는 동생 한 명과 빠져 근처 혼술바로 이동해서 두 잔 정도 마시고 바로 게스트 하우스로 복귀했다. 그렇게 피곤한 여행의 첫날을 종료했다.
혼자 사용하는 4인실은 역시나 최고였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씻고 대자로 뻗어서 오늘의 계획을 생각했다. 밖을 보니 오늘의 날씨는 꽤나 좋았다. 숙소 앞으로 보이는 광안대교는 꽤나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랜드마크의 힘이란 이렇게 무시할 수 없다.
일단 계획은 간단했다. 국밥을 먹고 부산에 유명한 절에 한 곳 들러보는 것. 예전부터 같이 살던 할머니가 부산에 그렇게 멋있는 절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왕이면 그곳을 가고 싶었다. 문제는 할머니가 치매로 인해 그런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지만. 그래도 내가 오늘 멋진 절을 본다면 나중에 할머니에게 '할머니 말 대로 정말 그랬더라!'라고 얘기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일단 절은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도 하고.
나가는 길에 어제 같이 마신 전역한 동생을 문 앞에서 만났다. 이왕 인연인 거 같이 국밥집으로 향했으나 도착한 국밥집은 웨이팅이 26팀이나 됐었다.
'뭔 놈의 국밥집이. 아니 이거 프랜차이즈라며?'
놀라긴 했지만 나나 이 동생이나 시간이 남아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웨이팅을 하기로 결정한 후 근처 공차로 들어섰다.
'어제 칵테일을 사주셨으니 오늘은 제가 살게요.'
동생이 말하며 키오스크 앞에 섰다. 잠깐 생각해 보니 내가 전 날 그랬었다. 뭐 고생해 주신 분한테 한잔 산다고 했던가 뭐라고 그랬더라. 기억도 잘 안 났는데 이렇게 보답을 받으면 뭔가 기분이 더 좋은 법이다. 어찌 됐던 내가 선으로 대한 것이 선으로 돌아온 것이니. 이럴 때 느낌이란 늘 감사하다.
그렇게 감사한 카페모카를 들고 공차에 2층으로 이동했다. 바다를 정면에 볼 수 있는 다찌자리였는데 새삼 여기는 카페마저 사기구나 싶었다. 실물 바다를 배경으로 걸어둘 수 있다니. 절대 망할 수 없는 사유 아닌가. 내가 시간을 되돌린다면 반드시 바다 앞 땅을 살 것이다.
그렇게 바다를 보며 멍을 때리고, 진로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니 금세 웨이팅이 사라졌다. 역시 최고의 회전율과 마진의 국밥이라고 해야 할까. 빠르게 이동하고 국밥을 시켜서 먹었다. 둘 다 전날에 꽤나 마셨다 보니 속이 상해 있었기에. 나름 여유를 갖고 먹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빠르게 그릇을 비웠다. 굳이 맛을 비교하자면 서울 국밥보다는 고기 잡내가 심하다. 비위 약한 사람은 먹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나는 꽤나 마음에 들었다. 콜라를 한 잔 시켜서 나눠 마시며 동생과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고 나중에 강남에서 보자며 헤어졌다.
'이제 어느 절로 가지. 해동 용궁사? 범어사?'
고민되는 두 절의 위치는 거진 비슷했다. 용궁사는 남쪽으로 한 시간. 범어사는 북쪽으로 한 시간 반. 그래도 부산이니까 바다에 있는 절인 용궁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해운대 방향이기도 해서 추천받은 해운대 열차를 타기에도 좋아 보였다.
다행히 용궁사로 바로 가는 주황색 버스가 근처 지하철 역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금방 식곤증이 몰려봤다. 역시 빠른 회전율의 국밥. 몸에서 회전율도 빠르다. 그 덕분에 잠시 졸고 일어나니 어느새 내릴 정거장이었다.
정거장에서 용궁사는 약 12분 정도 걸어서 안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동하다 보니 점점 더 많은 서양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관광지라 그런가 싶어 하는 와중 든 생각.
'아니 서양인 드글거리는 절? 이거 내가 교토 갈 때랑 똑같잖아...!'
나는 사실 일본여행의 확장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멍청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다 말도 안 되는 부산의 습도 때문이다. 이젠 나는 부산 시민들의 화나있는 모습은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절 안으로 이동하면서 걷는 그 파도 바람을 맞으면서도 땀이 났다. 나도 나름 항구도시인 인천사람이지만 부산에는 감히 비할 수가 없었다. 부산이 응당 불쾌지수가 가장 높은 도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찾아보지는 않았다)
어찌 됐던지 용궁사에 도착해서 여러 사진을 찍고 걸었다.
괜히 찾아왔나 싶은 순간이 저 습도덕에 있었지만 그래도 더 깊게 들어오니 와. 고생할만한 풍경을 갖고 있는 해동 용궁사가 있었다.
바다 위 암석들에 올려진 전각들과 바다내음. 파도소리 그리고 웅장한 불상들. 기대했던 모습들이 그대로 있었다. 다만 절 내부는 들어가기 부담스러웠다. 보통 나는 절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절에 들리면 가장 큰 불상 앞이던 작은 불상 앞이던 꼭 내부로 들어가 절을 올리고 나오는 편이다. 그런데 내부에 돈을 받는 사람이 있지 않나, 소원 종이나 소원 목판이 너무 과하게 있지 않나... 세속적이다 못해 속물적인 느낌이 들었다. 더 좋은 절을 만드는데 드는 돈은 필수인 것을 알기에 뭐라 할 수는 없으나 분위기가 마음을 마음에 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다 보이는 불상에 간단한 목례만 하고 절에 있는 해안 산책로를 따라 이동했다.
어떻게 담느냐는 내 마음에서 정해지는 거니 이것들을 좀 멀리서 보면 더 좋게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움직였던 것 같다.
앉을만한 큰 암석들이 있는 장소가 곧 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여기저기 앉아서 쉬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아하니 여기가 대표적인 쉼터 같아 보였다.
나도 사온 오이오이녹차(일본녹차)를 들고 가방을 풀어 앉아 조금 쉬어가기 위해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바다를 보며 내음을 느끼고,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에 멍을 때리는 건 요즘 내 내륙지방 삶에는 귀한 사치이기에 그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잠시 멍을 때리고 있는데 옆에 일본 가이드 분이 일본 할머니와 할아버지분들을 데려와서 일본어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여기 보이시는 절은 옛날 언제 세워졌고, 보시는 저 절이 아기를, 저 절은 어른을 상징합니다."
모두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적당한 해석은 할 수 있었다. 은근슬쩍 그 옆에 가이드분이 하는 말씀을 들으며 있는데 문득 아까 든 생각이 떠올랐다. 일본어로 가이드를 듣고, 서양인들이 많으며 절 투어를 하고 있다?
'역시 난 교토여행 중이었나.'
녹차를 먹어도 빠져나간 땀들이 내 정신을 가져간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웃긴 일본 영상도 떠올랐다. 하... 와라에루.
땀을 식히고 돌아가려 했으나 높은 습도 덕에 땀이 식고 나고를 반복했다. 마시던 물이 동이 나기도 했기에 이젠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 소 띠 염주를 하나 샀다. 전부터 사고 싶었는데 이왕이면 지금 사면 좋을 것 같았다. 볼 때마다 용궁사 생각도 날 것 같았고.
설렁설렁 왔던 길을 돌아가며 해운대 블루라인. 해운대 열차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또 땀을 잔뜩 뺐지만 군동기한테 코스를 설계받은덕에 마음은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송정역에 도착하고 열차를 기다렸다가 탑승했다. 역시 이곳도 오직 외국인들만이 가득했다.
외국인들 사이에 홀로 있는 내국인의 기분은 사실 좀 특별하다. 익숙하면서도 미지의 두려움이 공존한다고 해야 하나. 아마 장담하는데 꽤 많은 사람이 느껴보지 못하는 그런 오묘한 기분을 갖게 한다.
송정역에서 30분 정도 기다린 뒤 열차를 탑승했다. 특이하게도 이 열차는 바다를 보면서 이동하는 열차였는데, 부산에서 올라온 친한 동생이 강력 추천해서 이번 여행에서 루트에 넣었었다. 미리 후기를 말하자면 꼭 가는 것을 추천한다. 다행히 나는 줄을 미리 서서 나쁘지 않은 자리에 앉아갈 수 있었다. 미리 앉지 않는다면 좁게 서서 가야 하는데 그렇게 갔다면 감동이 분명 반감됐을 것이다.
달리는 열차 앞 창문 방면에는 시원하게 보이는 바다와 나무로 깔아 둔 산책길이 있었다. 산책길이 꽤 길어서 그런가 여러 사람들이 러닝을 하고 있었다. 젊은 커플, 건장하고 멋지게 태닝 한 남성. 연배가 꽤 많아 보이지만 몸만은 건강을 뽐내는 어르신 등등. 특히 딱 봐도 밝고 건강해 보이시는 어르신이 계셨는데, 밝게 웃으시며 전철에 손을 흔들며 뛰어가셨다. 그 미소가 기억에 이렇게 남는 것을 보면 이 열차에 있는 여행객은 어르신덕에 특별한 추억이 늘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번에는 결혼식을 다녀오느라 러닝화를 신지 못하고 왔는데 만약 다음에 온다면, 나도 한 번 뛰어봐야지 생각이 절로 드는 그런 열차 여행이었다. 물론 바다는 말할 필요 없이 아름다웠다. 살짝 노을이 지기 시작한 시간대였는데 만약 노을 시간대를 알고, 그 시간대로 예약하고 온다면 분명 환상적인 경험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혹시 읽고 있는 분들 중 커플이 있다면 유념하고 잘 써먹길 바란다.
열차의 종점은 해운대역이었다. 이왕 해운대까지 온 거 해안선을 따라 일단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해는 더 넘어가고 있어서 걷는 맛이 늘어났다. 노을 지는 풍경을 보며 인파를 피해 걷는데 괜스레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을 하다 이렇게 걷다 보면, 가끔 실소가 나오곤 한다. 지금처럼 이렇게 말이다. 이때 나오는 웃음은 행복함이 기반되어 나오는 웃음이다. 이 웃음 때문에 내가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이렇게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
이렇게 기분이 고조되어 걸을 때 꼭 듣는 곳은 녹황색사회의 "Mela!" 이번에도 어김없이 틀었으나 여긴 한국인지라, 뭔가 다른 곡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택한 곡은 하이키의 "여름이었다". 선곡이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이때 기록해 둔 내 메모가 있는데 이렇게 써져 있다. '걷기만 해도 행복한 것. 이게 내 여행이다.'
해운대에서 다시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하기 위해 광안리를 찾았다. 급하게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서 이동하다 보니 사장님이 예약과 돈은 받았는데 안내가 오지 않았다. 입구에서 다행히 스탭이 도와주어 안으로 이동하게 됐는데 이럴 수가. 아침에 국밥 먹고 해어진 동생이 내가 쓸 방에 있었다. 우연이란 이렇게 무섭다. 잘해주고 해어진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광안리에 더 있을 거라고 들어서 설마 그럴까 하기는 했는데 오늘 옆 침대에서 잘 줄이야.
그렇게 잠깐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일단 샤워를 했다.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내 부산 여행은 땀과의 사투였다. 안 젖어있는 순간은 오직 숙소에 들어와서 잘 때뿐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숙소부터 급하게 들어온 이유 또한 어떻게든 씻고 싶어서였다.
잠깐 개운해진 후 이제 저녁에 뭘 할지 생각할 시점이었다. 게스트 하우스 인원들에게 아래층 뮤직바를 열어준다고 하는데, 이미 이전날 게스트 하우스에서 정이 떨어진 바, 나는 다른 곳을 차라리 가고 싶었다.
부산에서 상경한 동생에게 저녁 먹을 곳을 찾아 이동하며 근처 술집을 찾았는데 마침 또 근처에 혼술바가 있었다. (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제주도에 있던 혼술바들이 대거로 부산 광안리에 가게를 차리고 있다. 2호점, 3호점 이렇게 말이다.)
대충 저녁을 때우고 동생에게 추천받은 바로 이동해서 한잔을 했다. 다만 방금 저녁을 먹었는데 내가 갔던 바는 메인메뉴를 반드시 하나 이상 선택해야 했었던 것이 패착이었다. 참치 크래커와 러스티네일 한 잔을 마셨는데 바로 직전에 밀면으로 배를 채웠던지라, 내 복부는 커비가 됐다. 바에 분위기는 좋았지만 뭐랄까, 혼자 마시기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
원래는 바로 혼술바로 이동할까 싶었는데 도저히 지금 복부의 상태로는 더 마실 자신이 없었다. 내 몸에게도 소화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후에는 해운대를 그렇게 걸었으니 저녁은 광안리를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밤의 광안리를 해안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광안대교와 해안선 주변의 가게들에서 나오는 화려한 불빛이 방금 전 해운대를 걸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게 했다. 대교 아래 배에서는 폭죽도 연달아 쏘는 모습을 봤는데 뭐랄까. 해방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소화가 좀 된 거 같다 싶어서 숙소 근처에 봐둔 혼술바로 이동해서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두 잔 정도만 마시고 돌아가서 자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과히 놀아버려서 돈을 좀 많이 썼다. 마신 기록으로는... 올드 패션드, 카타르시스, 데낄라 밤, 아드백, 갓파더, 히비키... 양주를 좋아하는 것은 그리 괜찮은 취미가 아니라고 늘 생각이 든다.
변명을 좀 하자면 일단 어제 갔던 혼술바는 굉장히 실망했었다. 칵테일에서 마치 물 탄듯한 맛이 날 정도였으니까. 이번에 간 곳은 칵테일 종류도 훌륭했으며, 위스키 종류 또한 알짜베기들이 많았다. 사장님도 술을 좋아하는 분이라 그런가 일단 칵테일의 맛이 꽤나 좋았다. 좀 속된 말로는 긴빠이 친 맛이 나지 않았다.
자리에 있던 분들도 너무 좋은 분 들 이어서 꽤나 잘 놀기도 했고 말이다. 그분들이 모두 돌아가신 후 나도 마지막 잔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분이 다른 혼술바에 가서 놀자고 했으나 나는 내일도 돌아다닐 예정인지라, 굳이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분만 배웅했다.
숙소에 들어가 누우니 룸메이트인 동생은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조용하게 '행복한 하루였다.'라 말한 뒤 나는 바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왼쪽 눈이 너무 아파왔다. 최근 이런 아픔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바로 동공에 상처 났을 때가 이랬는데 느낌이 똑같았다. '그럴만한 행동은 따로 하지 않았는데' 어찌 됐던지 혹시 모르니 바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후다닥 씻고 룸메였던 동생에게 인사도 못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왔다. 문자로 덕분에 여행동안 편했다는 감사인사만 남기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광안역 근처에 안과가 있어 1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약 만원 정도 검진비와 약값을 주고 얻은 정보는 실제로 동공에 작은 상처가 났다는 것. "시력이 떨어지거나 하나요?"라고 물으니 그 정도 아니니까 3일이면 나을 것이라고 했다. 간단한 항생제와 연고만 얻고 나는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얼떨떨하긴 했지만 나는 오늘도 시간을 보내야 했다. 왜냐? KTX표를 예매하지 않고 있다가 어제 혼술바에서 지금 예약 안 하면 자리 없을 거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표를 구매했기 때문이다. 우매한 나는 그렇게 20시까지 부산에 위치해야 되는 운명이 돼버린 거다.
시간을 보낼 계획이 필요했다. 약국에서 나온 나는 일단 광안리 바다 쪽으로 걸었다. 다시 바다가 보고 싶었다.
어제 갔던 공차로 똑같이 와서 똑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었다.
'일단 점심을 먹어야겠다. 뭐 먹지.'
친한 동생에게 받아온 부산 맛집 리스트를 열었다. 로컬 한 음식들을 먹어도 좋지만 오늘 점심은 뭔가 그냥 먹던 걸 먹고 싶었다. 아파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때 마침 그제 만난 군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친구는 송도에 케이블카에서 근무하는데, 자기 일하는 곳에 오면 공짜로 태워줄 수 있다고...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공차에서 지도를 보면서 오늘 돌아볼 장소들을 빠르게 머릿속에 루트화 시켰다.
'그럼 서면에서 점심 먹고 송도 케이블카 갔다가, 자갈치 시장 쪽 갔다 오면 대충 돌아갈 시간 되겠다.'
어쩔 수 없는 사고의 흐름이다. J가 늘 90 퍼센트 이상 차지하는 사람은 응당 이렇게 살아야 할 수밖에 없다.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마음의 준비가 끝난 듯 공차를 나섰다. 가기 전 잠깐 바다와 가까이 다가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바다는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도 아프긴 했지만 말이다. 안녕 광안리.
추천 밥집 리스트 중 서면의 "격"이라는 일식집으로 갔다. 사실 물회를 먹고 싶었지만 일식 애호가 본능이랄까, 아쉬운 대로 카이센동을 먹자라고 생각해서 이동한 가게였다. 그래도 부산인데 수산물 질은 좋겠지.
이동하는 동안 하늘이 엄청나게 맑아졌다. 3일 중 가장 화창할 정도로. 위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너무 아름답게도 구름 한 점 없었다. 물론 나에게는 적당히 반가운 일이었다. 높은 습도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는 습식찜질방과 별로 다름이 없다는 것을 부산시민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비가 오지 않았지만 쫄딱 젖어서 가게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점심시간이 지난 2시 반. 가게에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다. 나 또한 다찌자리에 앉아서 카이센동과 콜라를 한 잔 주문했다. 맥주가 간절했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라 눈이 덧날까 봐 눈물을 머금고 콜라를 시켰다. 진짜 아파서일까, 눈물이 나왔다.
카이센동은 '역시 부산!'이라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특히 신선도가 말이 안 됐다. 나오는 반찬들도 괜찮았지만 역시 메인이 되는 해산물의 신선도가 높아서 그런가. 앵간한 한국 카이센동집은 따귀 때려도 되겠다 싶을 정도.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너무나 기분 좋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반찬과 함께 나오는 일본식 계란찜이 굉장히 좋았다. 만드는 게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 걸 알기에 더 그랬다. 그렇게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군동기에게 연락한 후 이제 오늘의 두 번째 목표. 송도 케이블카로 향했다.
케이블카로 가기 위해 남포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거장에 그늘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차도 중앙에 있는 정거장이었는데, 어르신들의 양산을 보니 집에 두고 온 양산이 간절히 그리웠다. 두 번 다시는 부산의 열기를 얕보지 않으리.
겨우 겨우 버티다가 버스를 타고 케이블카 근처로 내렸다. 도보로 또 10분 정도를 가야 했는데 그런 지도의 안내를 보자 또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는 오늘도 푹 젖은 상태로 다녀야 할 것 같았다.
길을 좀 걷기 시작하려는데 엠뷸런스가 소리를 켜고 횡단보도로 다가왔다. 보행자들이 꽤 많았는데 모두가 출발하지 않고 엠뷸런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 모습에 괜히 기분이 좋은 건 다른 이들도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이 감정이 그나마 죽어가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몇 안 되는 에너지원이었다.
그렇게 케이블카에 도착하니 동기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딴에 일한다고 무게 잡고 척척 설명해 주면서 게스트권을 줬다. 새삼 고마웠다. 이따 보자고 말하고 위로 올라가 줄에 서 있었는데 안내해 주시는 분이 다가왔다.
"just one person?"
"아, 저 한국인..."
"아, 네... 혼자시죠? 다음 거 타실게요."
중국인처럼 보였나. 친구가 예전부터 "우린 일본 나가면 한국인으로 안 봐. 중국인으로 보지."라고 했는데 난 내국에서 중국인으로 보였다. 이건 참 마음이 아픈데.
어찌 됐던지 케이블카는 혼자 탔다. 꽤 넓은 공간을 혼자 차지하고 있으니 난 꽤 어린애처럼 신났다. 특히 처음 출발할 때 가속이 확 붙으며 바다 바람이 케이블카 안으로 들어오는데. 이건 도파민을 강제로 끌어올리기 충분했다.
새파란 바다가 발 밑에, 좌우에 만연하고 하늘도 새파랗게 내리쬐고 있었다. 바람은 강렬하게 나를 때리고 있었고.
문득 '군청'이라는 노래가 떠올라서 노래를 크게 켜고 들었다. 소리를 질러도 됐고 노래를 크게 틀어도 상관없는 공간이라는 게 말이 안 되게 기분이 좋았다. 바다 위에서 이런 자유감을 느낄 수 있다니. 여기 온 것이 너무나도 잘 한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참고 있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동기가 예쁘게 해 놨다고 하던데 얼마나 그런가 보자. 싶은 심정도 있었고 말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들고 유리창 근처 자리를 잡았는데, 바다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는 뷰였다. 그때쯤 문득 든 생각.
'부산 여행은 사실 바다를 여러 방면으로 보는 여행이 아닐까.'
바다는 그대로 있다. 나만 위치가 변했다. 어떨 때는 장소가 변했고 어떨 때는 보는 각도가. 또 어떨 때는 보는 높이가 달랐다. 같은 것을 보고 있는데 모두 다른 기분이었다. 좋다는 기분도 제각기 다른 좋음이었다.
그런 공(空)적인 생각을 하다가 슬슬 카페 밖으로 나갔다. 더위를 생각하면 정말 큰 마음을 먹고 나가야 했다. 심지어 고도가 높아져서 실제로 더 태양이 뜨거워졌다. 동기가 올라가기 전에 엄청 더울 거라고 경고했는데, 경고할만했다. 바다 바람이 그렇게 심한데도 땀이 비처럼 내리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동기가 구름다리는 꼭 가보라고 권유해서 한 번 들렸는데, 정말 너무 예뻤다. 뭔가 원초적인 도파민이 나오는 느낌이랄까. 폭풍 치듯 바람이 날아왔는데, 실제로 여기서 양산 들고 가려던 사람들은 다 양산이 뒤집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바람이 땡 볕에 바위 하나를 두고 나를 두들겨댔다. 와중에 절벽에 위태롭게 내려가 낚시를 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저게 진짜 바다사나이지.' 나는 바다 사나이는 될 수 없는 몸이었다.
그렇게 구름다리에서 잠깐 머물며 바람을 느끼다가 이제 곧 날아가겠다 싶을 때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이번에도 여전히 혼자 타고 내려오며 도파민 넘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어를 듣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부산을 떠나는 느낌이 들어 살짝 아쉬움이 담겼다. 실제로는 앞으로도 몇 시간은 있어야 했지만 말이다. 내려오니 동기가 실실 웃고 있었다.
"왜. 뭔데. 왜 웃는데?"
"니... 니 안 되나?"
"디? 뭐가 디... 아 안 되냐고?"
"어. 니 지금 쫌 디 보이는데..."
여기서 되다는 힘들다의 방언이다. 위에서 잔뜩 땀에 쩔고 와서 기력이 쪽 빨린 모습이었나 보다. 실제로 되긴 엄청 됬다.
"아...죽겠다. 빨리 저녁 먹고 집가고 싶다."
동기와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이제는 슬슬 저녁을 먹으러 가야겠다 싶어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했다. 저 더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또 큰 마음을 먹게 했지만 배고픔이 더 컸던지라, 이제는 근처 시장인 자갈치 시장으로 발을 옮길 시간이었다. 물회나 생선구이를 먹으려 했는데 또 고새 조금 걸었다고 생선구이는 왜인지 땡기지 않았다. 시원한 물회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가는 동안 열심히 검색해서 깔끔하게 장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곳을 찾아가서 물회를 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감흥 넘치는 맛은 아니었는데 배가 너무 고팠는지 너무 잘 먹고 나왔다. 그리고 분명 반찬이 간이 엄청 짰는데 이상하게 손이 자주 갔다. 음식을 못하는 집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얼마나 배고팠으면 사진도 안찍어뒀다.
저녁을 먹고 보니 예매한 KTX의 시간까지 애매하게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어디 근처 잠깐 들러도 될 것 같은데.'
남은 시간은 약 2시간 반 정도 됐고 역까지는 30분이면 충분히 여유롭게 갈만한 곳. 그런 곳이 필요했다. 찾아보니 흰여울 문화마을이 근처에 있길래 고민을 더 하지 않고 빠르게 향하는 버스를 타러 갔다.
자갈치 시장을 나가는 길, 어떤 서양인이 수산물이 담긴 빨간 다라이를 슥슥 스케치북 위에 그리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할머니들은 "야~잘그리네!" 하며 모여 계셨고 말이다. 저건 저 서양인 만의 여행을 즐기는 방식일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니, 각자 기억을 남기는 방법은 세삼 다르다 싶었다. 나는 이렇게 메모한 것들로, 사진으로 기억을 추억하고 그는 저 그림으로 추억하겠지.
버스로 흰여울 문화마을은 금방 도착했으나 난관이 있었다. 꽤 많은 곳이 공사중이었다. 해안가를 따라가는 길이나 계단을 막아둔 것이 많아서 내려서 바다를 보는 길을 찾는데도 한참 헤맸다. 10분 정도 헤매고 나서야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것 같은 코너가 있어 내려갈 수 있었다.
내려가는 골목에는 긴 의자가 하나 있었는데 누가 봐도 현지 주민이신 할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셨다. 내려오던 나를 지긋이 바라보시더니 말을 걸어오셨다.
"뭐 하러 오셨어?"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 여행이라서요."
"구경이면 저~기 계단 아래 내려가서 바다 따라가야지. 여기는 잠깐 보고 가는 게 나아."
"저도 그러고 싶은데 공사 중이라고 다 막아 놓았더라고요."
"그 당연히 막혔는데, 옆으로 돌아가면 되지! 우리들도 맨날 다 돌아가는데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못해?"
하지만 할머니 거긴 방파제인데요. 파도가 올라오고 있고요.
당연히 뒷 말은 참고 난 어색한 웃음만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경상도 여성분들이 이토록 강인하시다.
이후에도 잠깐 노을 지는 바다를 보며 할머니와 담소를 나눴다. 어디서 왔냐, 서울에서 왔으면 멀리서 왔네. 누구랑 왔냐. 왜 혼자야.
그때 마침 여자 세 분이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할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분이셨다.
"저 처자들이랑 낑겨 놀면 되겠네."
나는 순간 봤다고 생각한다. 제일 앞에 계신 분의 표정을 말이다. 빠르게 금방 갈 거라고, 감사하다고 할머님에게 인사를 하고 화들짝 멀어지며 걸었다. 잠깐의 휴식은 그렇게 끝났다.
마을의 난간과 같은 길을 걸으며 파도소리를 따라 계속 걸어갔다. 사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카페도 문을 닫았고 내가 그곳에서 건진 것은 노을 지는 쾌청한 하늘과 바다밖에 없었다. 이거면 더 필요한 게 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못내 아쉬워서 공사 중 표시에 가장 가까운 곳까지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계단은 꽤나 가팔랐다. 그것도 한 번 넘어지면 이승하직 최단코스인지라 긴장될 정도로 말이다.
'아니 어르신은 여길 오르락내리락하신다고? 우리 할머니랑 연배가 비슷해 보이셨는데.'
새삼 놀라며 방파제가 있는 곳까지 다가오니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더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르신의 응원과 달리 방파제는 넘을 수 없었다. 나는 역시 바다사나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파도소리를 듣다가 녹음했다. 왠지 다시 듣고 싶어 질 때가 있을 것 같았다. 멍하니 파도를 보면서 소리를 듣다가, 눈을 감고 소리만 듣다가 십여분을 보냈다. 정확히는 멍하지는 않았다. 이젠 진짜 돌아가는 전철로 이동할 거기에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용궁사에서 빈 소원은 이루어질까' 라던지 '녹음한 파도소리를 집 침대에 누워서 듣고 있는 내 모습' 이라던지. 이번 여행에서 얼굴을 맞대고 얘기한 사람들을 되새기기도 했다. 내 혼자 여행의 마무리는 늘 어딘가에 속으로 빌고 가기이다. 교토나 오사카 때는 떠나기 전 마지막 들른 절이나 신사에서 불상에, 신상에 빌었지만 여기는 며칠 내내 바다와 있었으니 바다에 빌고 떠나기로 했다.
'잘 놀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