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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관조일기

신년에도 삶과의 겨루기를.

지난 1년의 회고와 혼자 다짐하는 신년사

by 이우

1월 1일. 또 새해가 밝았다.

이제 28살의 나는 사라지고 29살. 30대(진)인 내가 등장했다.

27살의 나는 무난했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름의 직업적 고비를 막 넘기며 1월을 맞았고 어느 정도의 안정감, 열정을 품은 상태로 1년의 절반을 살아갔다.

나머지 절반은 작은 심리적 방황이 있었으나 금방 길을 찾았고, 그 길은 24년 중반까지 꽤 유효한 안내자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28살의 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지난 24년의 전반기는 그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행복기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부담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 나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회사가 공중분해되며 나는 실업급여라는 무기와 함께 자유를 얻었다.


취업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정말로. 난 나를 믿었다. 회사에서 약 2년 동안 일을 하며 느낀 건, 적어도 내가 가려는 직군이라면 어디든 내 한 몸은 누울 수 있겠구나였다.

자신감을 기반으로 나는 실업급여를 탕진하며 놀았다. 가깝지만 일본도 자주 가보고, 사고 싶은 것들도 많이 사보며 지금까지 살았던 것과 조금씩은 다른 삶을 살아봤다.


매일 자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을 기대하며 살았고, 심지어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던 4월에도 뿌듯함을 느끼며 살았다. 정말 오랜만에 남에게 나를 증명하지 않음에도 안정적인. 그런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너무 행복한 삶을 사니 오히려 걱정을 안고 살았다. 도대체 이 행복이 끊기면 어떤 고난이 오길래. 내가 이렇게까지 행복해본 적이 없는데, 겪어본 적 없는 불행이 덮칠까 봐 오지도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며 살기도 했다.


하반기는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감정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안내자 역할로 잘해주던 가치관에도 많은 흔들림이 있었고, 스트레스로 공황이 살짝 오기도 했다. 오늘 버스 안에서 당시 내가 남긴 메모를 봤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올라와 있던 행복에서 다시 평지를 찾아 헤매고 있다. 분명 평지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은 있으나, 나는 어떤 곳에서 힘을 얻어 평지까지 가야 하는가.'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내리막길의 각도에 기대어 흐르듯 내려갔다. 주변에서는 좋은 곳에 취직했다며 축하를 건넸지만 그 말이 마음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취직한 것은 내가 관리해야 할 귀찮은 것들에 하나가 추가된 것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내리막길의 각도는 점점 높아져서 내 중심을 잡고 걷지 못하게 만들었다. 중심을 놓지는 않았다. 내 주변의 세상이 날 흔들어도 꾸준히 나를 지켜야 했다.



너무 높게 오르고 너무 낮게 내려간 한 해였다.

세상이 나를 악하고 약하게 만들 때마다 나는 세상에 빚을 지워두려고 한다.

내가 선하고 강하게 행동하면 언젠가 녀석이 빚을 갚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가끔 그렇게 다가오는 삶이. 내 주변이라는 세상이 그 생각과 행동은 다르지 않았다 보여주는 순간이 있다.


빚을 언제 갚을지는 모른다. 여름에 도운 누군가가 겨울에 감사를 말하며 다가올 때도 있었고. 출국할 때 도와드린 외국인 아주머니 무리가 정말 우연하게, 같은 시간. 같은 비행기를 타고 내가 헤맬 때 등장해서 길을 찾아줄 때 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면 세상은 나에게 이런 도움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세상에게 증명하기 위해 내 삶을 관철한다면, 분명 삶도 나에게 악착같이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을까.


다가오는 한 해에도 삶과 내가 경쟁하며 빚을 지워두기를.
그 속에서 더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나와 내 삶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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