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호주로 갈래요”
이것도 부탁 좀 한다, 수고해라
편의점 알바를 하던 당시, 매일같이 사장이 한 말이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으면 다음 근무자가 그 일을 모조리 하게 된다. 고로 늘 나는 사장의 뒷 일을 감당해 가며 나의 업무도 동시에 완료해야 했다. 연장 근무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매대 안을 청소하다가 컵라면 탑이 우르르 무너졌다. 늘 있던 일인데 웬일인지 마음에 화가 불같이 일어났다.
‘아이씨… 이렇게 안 살고 싶은데’
진심이었다. ‘이렇게’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몰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나는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살다가 이렇게 죽을 것 같았다.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전공이 나와 맞지 않았고, 늘 마음에 염원했던 해외살이는 내가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 더 이상 막연해서는 안될 나이가 된 것이었다.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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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부터 나는 꿈을 탐색했다. 정확히 하자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였다. 꿈이 직업이 될 순 없었다. 직업은 어떻게 해도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여행과 글쓰기를 사랑해서 여행작가가 된다고 해도, 돈벌이가 되는 순간 그 분야에 몰입해야 하고 능력을 드러내야 한다. 입에 풀칠은 하고 살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능력이 없어서 성취감을 잃는 순간부터 스트레스이다. 직업은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나는 자유로운 삶을 갈망했다.
종종 여행을 다니며, 남의 삶에 깊게 개입하지도 누군가 나의 삶에 깊게 개입하지도 않으며, 느긋한 여유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삶.
그 당시 나로서는 한국은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였던 것일까,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외국에 나가 살 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엄마는 젓가락을 길게 잡는 나를 보고는 얼마나 멀리 시집을 갈 거 기에 그렇게 멀리 젓가락을 잡느냐고 훈수를 두셨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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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다면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곳으로 갈 테야. 지구상에 하나쯤은 있지 않겠어? 나는 아직까지 나에게 해외살이의 막연한 꿈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나님이 아직 거두어가지 않으신, 그 분만의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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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직장인 브이로그를 검색했다. 각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눈에 들어온 나라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대자연을 품은 나라,
호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