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도 손으로 그리고, 만드는 일이 즐거웠다.
칭찬은 이를 거둬 손재주가 뛰어난 아이가 됐다.
중학교 때부터 부엉이였던 나는
방학만 되면 아빠의 TV가 애국가를 부를 때까지
혼자 사부작사부작
좋아하는 과학, 수학 문제집을 푼다든가
십자수, 뜨개질을 한다든가
모두가 잠든 시간, 나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했다.
나에겐 사고뭉치 6살 많은 오빠가 있다.
오빠는 지금 9살의 아이가 있는데
현재 27살인 나에게 "내가 니 나이 땐 말이야~ 애를 나았어~"부터 "내가 너를 똥기저귀 다 갈아주고 업어 키웠어~"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고 있다. (9살 조카는 오빠와 달리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오빠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고2병에 잔뜩 홀린 상태였다.
집에서 말끝마다 욕을 붙여 대화했고
초등학교 4학년 비교적 내성적이었던 나는
반전으로 친구들보다 욕을 선진적으로 배워썼다가
짝꿍이 선생님께 일러 꿀밤을 자주 맞았다.
고2병 오빠는 일찍이 인문고에서 직업학교로 방향을 바꿔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집을 나갔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밤늦게까지 일하셨고
자연스레 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오빠가 워낙 사고도 많이 치고, 공부도 바닥을 많이 쳐서 나에게 공부, 학원의 부담은 없었고
비교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칭찬받는 아이였다.
그래서 혼자,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새벽까지 하는 일이 많았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공부에는 크게 흥미가 없었고
잠깐잠깐 입시 설명회로 들은 예술고, 과학고 같이 전공이 있는 학교가 홀린 듯이 끌렸다.
중 3이 돼서야 알았다.
예고는 갑자기 가고 싶다고 가지는 게 아니란 걸
좋은 내신과 실기 준비도 미리해야 한다는 걸.
나는 하고 싶은 공부만 편식해서..
내신을 잘 가꾸진 못했고, 미술 학원이 비싸 아이클레이, 종이접기 학원만 다녀 본 나에게
벼락치기 실기 시험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당시 미술은 나에게 잘 사는 친구들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대신 오빠가 없어진 집에서 온통 내 차지였던 컴퓨터로
"코비하우스"라는 실내 인테리어 프로그램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커뮤니티 카페에서 작은 공모전 같은 걸 열었었는데
"미래건축가"라는 닉네임으로 처음 참여한 공모전에서 2등으로 수상했고,
다음 공모전엔 1등까지 수상해 아이패드까지 받았다!
내 생의 첫 공모전이었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건축의 꿈이 타오르기 시작한 게.
그렇게 나는 건축을 배우기 위해
남성성이 강한 공고보단 여성성이 강한 디자인고로(담임선생님의 조언)
수원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서울, 수서에 있는 곳으로 진학했다.
건축이라는 꿈이 내성적인 나를
집에서 서울, 세상으로 달려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