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행복한 중입니다

아빠는 육아휴직 중

by gt

오늘이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2주일이 지났다. 똑같은 생활이 2주간 반복되니 아이들의 하교 시간과 스케줄이 몸에 익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우리 방으로 와서 안겨있는 아이들과 5분을 뒹굴거리다가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처음엔 아내의 식사도 챙겨주었지만 이제 점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아내와는 얼굴 인사도 거른 채 저녁에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부분은 아내에게 조금 미안하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이고 어제 준비한 옷을 아이들에게 권한다. 아이가 커 갈수록 점점 부모가 골라 준 옷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어 한다. 괜히 아침부터 아이와 다투면 곤란하다. 아이의 등교 기분은 항상 좋아야 한다. 교사로서 아침 기분이 안 좋은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주고 잘 달래야 한다. 학교 교문까지 아이들 손을 잡고 가서 인사를 하면 이제 나는 자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설거지하고, 집 청소하는 일상. 패턴이 되어버린 일상이 주는 무료함에 소파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엔 나에 대한 생각으로 수렴된다.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남자 나이 30대 후반, 친구들과 가끔 만나면 승진을 준비하는 얘기로 서로의 일상을 물었다. 그들의 삶이 틀린 건 아니기에 내 삶을 강요할 수도 없어 그런 대화에서 나는 조용히 듣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기는 막연한 불안함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 말이다. 그 불안함은 나를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닌 다른 사람이 가고 있는 삶의 방향을 따라가야 한다고 압박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승진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교감선생님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일처리에 선생님과의 업무 갈등 해결, 학부모 민원에 대한 처리에 대한 고민들에 정신이 없었다. 교장선생님과의 관계에서는 상관인 교장선생님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렇게 교장 선생님이 되면 내 삶은 행복할까?’

‘모두들 승진했다고 축하해주고 교장 선생님 위치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것이 진짜 나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교장인 나를 위한 것일까?’

‘고작 이런 자리에 오기 위해 애를 쓴 내 모습에 허무해지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불안함을 감소시켜주었지만 대신 내 깊은 마음속에서 부터 상처를 주고 있었다. 답답하고 초조했다. 속옷에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듯한 불편함이 나를 찔러댔다. 그렇게 많이 아픈 다음 생각했다. 막연하게 다른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따라 살아가고자 한다면 지금의 내가 그만큼 불행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임을...

결국 나는 다시 내 삶의 방향을 정해야 했다. 이리저리 요동치는 내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내 삶에서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그게 내가 나로 살기 위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사형 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권하는 친구 크리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유가 중요한 것이지. 어영부영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거야" 황광우 <철학콘서트>, (생각정원, 2007)


그래서 지금 글을 쓴다. 글을 쓰며 내 안에 숨어있던 내 생각을 종이 위에 끄집어내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하루하루 내가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살아보려 노력한 삶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다. 그 종이 위에 적은 삶이 조금씩 나를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만들어 갈 것을 믿는다.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지금 행복한 중이야.'

이전 18화극한 직업: 생존수영 인솔 도움 교사